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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지언 — 웃는 얼굴 하나와 꽃 두 다발

작가를 만나다 · 발행 2026년 9월 29일 · 씨앗페

씨앗페에 들어온 림지언의 작품 석 점 — 〈모먼트〉, 〈진달래진달래〉, 〈풀, 꽃!〉을 도판으로 읽습니다. 반복되는 화법과, 그 화법을 벗어나는 한 점을 함께 봅니다.

림지언 — 웃는 얼굴 하나와 꽃 두 다발

림지언, 〈모먼트〉, Digital painting, 60.6x72.7cm — 검은 배경 속에서 크게 웃는 얼굴을 그린 작품
림지언, 〈모먼트〉, Digital painting, 60.6x72.7cm — 검은 배경 속에서 크게 웃는 얼굴을 그린 작품

씨앗페에 들어온 림지언의 작품은 석 점입니다. 〈모먼트〉(2025), 〈진달래진달래〉(2018), 〈풀, 꽃!〉(2025). 전부 디지털 페인팅이고, 전부 짧은 문장 하나를 작가노트로 붙여 놓았습니다. 그런데 석 점을 나란히 놓고 보면 하나만 다른 방향을 보고 있습니다.

얼굴 — 〈모먼트〉

이 작품의 작가노트는 이렇습니다.

"많고 많은 고통 중에 찰나의 기쁨이 있고 / 고난과 역경에도 가장 찬란한 웃음은 살아있는 법"

문장만 읽으면 꽃 그림을 상상하기 쉽습니다. 실제 화면은 다릅니다. 검은 배경 한가운데, 동그란 철테 안경을 쓴 노년 남성의 얼굴이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눈은 완전히 감겼고 입은 크게 벌어져 이가 다 드러납니다. 정장 깃과 넥타이 매듭이 가슴께에 겨우 비칠 뿐, 그 밖의 화면은 전부 순수한 검정입니다.

빛은 얼굴에만 떨어집니다. 이마와 콧대는 거의 흰빛에 가깝고, 눈가와 목 아래는 급하게 그늘로 꺼집니다. 붓 자국을 번지듯 겹쳐 쌓은 화법이라, 웃음이 어딘가 과장돼 보입니다. 작가노트의 "찰나의 기쁨"이 정확히 이 얼굴 위에 있습니다. 고통 한가운데서 터진 웃음이라면, 그 웃음이 이렇게 크고 소란스러워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꽃, 두 번 — 〈진달래진달래〉와 〈풀, 꽃!〉

나머지 두 점은 제목부터 꽃을 말합니다. 그런데 같은 소재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다룹니다.

림지언, 〈진달래진달래〉, Digital Painting, 33.4x45.5cm, ₩300,000
림지언, 〈진달래진달래〉, Digital Painting, 33.4x45.5cm, ₩300,000

〈진달래진달래〉는 화면 전체가 꽃입니다. 진분홍 진달래 무더기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배경은 채도 높은 초록입니다. 꽃잎 가장자리는 또렷한 선 대신 번진 자국처럼 풀어져 있고, 그 안에서 흰 꽃술이 가늘게 뻗어 나옵니다. 붙어 있는 작가노트도 짧습니다.

"진달래꽃 피었네 / 초록이 번진 진달래"

제목을 두 번 겹쳐 부르는("진달래진달래") 방식 그대로, 화면도 같은 색을 겹겹이 풀어 놓았습니다. 망설임 없는 그림입니다.

림지언, 〈풀, 꽃!〉, Digital painting, 72.7x50cm, ₩500,000
림지언, 〈풀, 꽃!〉, Digital painting, 72.7x50cm, ₩500,000

〈풀, 꽃!〉은 정반대입니다. 화면 대부분이 짙은 초록에서 검정으로 가라앉은 어둠이고, 꽃은 화면 오른쪽 구석에 작게 몰려 있습니다. 흰 꽃잎에 노란 꽃술을 가진 들꽃 여섯 송이, 그 아래로 나무 널빤지 같은 갈색 면이 화면 하단을 가로지릅니다. 어두운 배경을 가로지르는 대각선 빛줄기가 꽃 쪽으로 시선을 몰아줍니다. 작가노트는 이렇습니다.

"사람이 붙인 이름으로는 너무 넘치게 아름다운 꽃"

이 문장은 이름 없이 흔히 지나치는 작은 들꽃을 두고 쓴 것으로 읽힙니다. 화면 크기에 비해 꽃이 차지하는 자리가 작다는 것 자체가, 이 문장이 말하는 "이름의 부족함"을 그림으로 옮긴 선택으로 보입니다. 크게 그려 화려하게 만드는 대신 작게 두고 어둠으로 감싸, 오히려 눈이 그 자리에 오래 머물게 만들었습니다.

세 점을 같이 보면

석 점을 나란히 놓으면 반복되는 것과 갈라지는 것이 같이 보입니다. 반복되는 것은 방식입니다. 붓 자국을 번지듯 남기는 화법, 화면에 짧은 글 한 줄을 작가노트로 붙이는 습관, 빛이 닿는 자리와 그늘을 분명히 가르는 구도. 갈라지는 것은 대상입니다. 두 점은 꽃이고 한 점은 사람의 얼굴이며, 그 얼굴은 이 세 점 중 가장 소란스럽게 웃고 있습니다. 〈모먼트〉라는 제목이 그 자리에 놓인 것도 우연으로 읽히지 않습니다. 나머지 두 점이 계절이 피워 낸 꽃을 그렸다면, 이 한 점은 지나가는 찰나 하나를 붙잡은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림지언은 일상의 순간과 자연의 결을 회화로 옮겨 가는 작가입니다. 2018년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2025년 서울의 한 단체전에 참여했습니다. 석 점의 그림에는 저마다 석 줄의 문장이 붙어 있습니다.

씨앗페에서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림지언도 그 구조에 석 점의 그림으로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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