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우연히 받은 책 한 권을 읽고 아리랑을 필생의 소재로 정했습니다. 그 뒤 40여 년, 다른 것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아리랑 전문 작가' 두시영의 화업을 따라 읽습니다.
두시영 — 40년을 한 단어로, 아리랑만 그린 화가

1987년, 두시영은 불우이웃돕기 자선전에 작품 한 점을 냈습니다. 그 작품이 팔렸고, 산 사람이 답례로 책 한 권을 보내왔습니다. 아리랑 연구가 김연갑이 쓴 『아리랑』이었습니다.
그 책을 읽고 그는 화가로서의 남은 생을 어디에 쓸지 결정했습니다. 가톨릭신문(2023년 7월 16일)에 그는 그때의 일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당시 아리랑이 3000수가 넘는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우리 민족사에 명맥이 흐르고 있는 아리랑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작가적 깨달음을 얻고 아리랑이야 말로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40년 가까이 다른 것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포춘코리아는 그를 "40여년 동안 아리랑을 화두로 활동"해온 작가로 소개하고, 일요시사는 "반평생을 '아리랑'과 살았다"고 적었습니다. 매체가 그에게 붙이는 수식은 하나로 모입니다 — 아리랑 전문 작가.
씨앗페에 들어온 그의 작품 세 점도 예외가 아닙니다. 〈금강산 아리랑〉(2009), 〈아리랑- 생명의 노래-〉(2022), 〈한겨레 아리랑〉(2024). 제목 셋에 모두 아리랑이 들어 있습니다.
한 단어를 40년 쓴다는 것
한 가지 소재로 40년을 그린다는 말은 두 가지로 읽힙니다. 하나는 고집이고, 다른 하나는 그 소재가 40년을 견딜 만큼 넓다는 뜻입니다. 두시영의 경우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그는 아리랑이 좁은 소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숫자로 설명합니다.
"아리랑에는 민족의 정서와 애환이 담겨 있어요. 굴곡진 우리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게 아리랑입니다. 어떤 면에선 한국인이 살아온 삶을 대변한다고도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재밌는 게 전국에 있는 아리랑이 모두 얼마인지 아십니까? 대략 4800수 정도인데 들춰낼수록 새로워요." — 일요시사(강현석 기자), 2013년 8월 16일
4800수. 1987년 처음 책에서 본 숫자가 3000수였는데, 2013년 인터뷰에서 그가 말한 숫자는 4800수입니다. 26년 사이에 그가 직접 들춰낸 만큼 숫자가 늘어난 셈입니다. "들춰낼수록 새로워요"라는 문장이 그래서 실감납니다. 이 작가에게 아리랑은 하나의 노래가 아니라 수천 편의 문헌이고, 그 문헌을 뒤지는 일이 곧 작업의 일부였습니다.
아리랑이라는 단어의 뜻에 대해서도 그는 자기 해석을 갖고 있습니다.
"아리랑에는 우리 민족의 애환과 한이 있고, 난관을 극복하려는 희망과 의지가 담겨 있어요. 또 '아리랑'이라는 말에는 '하늘의 뜻을 세상에 펼친다'는 뜻이 담겨 있죠." — 가톨릭신문(최용택 기자), 2023년 7월 16일
주목할 것은 이 문장의 구조입니다. 애환과 한이 먼저 나오고, 곧바로 "난관을 극복하려는 희망과 의지"가 따라붙습니다. 아리랑을 슬픔의 노래로만 두지 않겠다는 뜻이고, 40년치 작업이 한(恨)의 정서에 머무르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의 화업 전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 말도 남아 있습니다.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은 아리랑을 만난 것" — 일요시사(강현석 기자), 2013년 8월 16일
작가가 자기 소재를 두고 '축복'이라는 단어를 쓰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보통 소재는 고르는 것이고, 고른 것에는 책임이 따르지 축복이 따르지는 않습니다. 이 단어를 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아리랑을 고른 것이 아니라 아리랑이 그에게 왔다고 여기기 때문일 겁니다. 자선전에 낸 그림 한 점이 팔렸고, 산 사람이 책을 보냈고, 그 책이 40년을 결정했으니까요.
이력 — 교육대학원, 그리고 민미협
두시영은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해 졸업했습니다. 일요시사와 포춘코리아가 함께 전하는 학력입니다.
2004년에는 문화·예술 부문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습니다. 가톨릭신문은 이를 "2004년 문화·예술 부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으로 기록합니다.
작업 바깥의 자리에서 그의 이름이 오래 등장하는 곳은 사단법인 한국민족미술인협회, 줄여서 민미협입니다. 그는 민미협 이사장을 역임했고 지금도 원로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그를 "민미협의 원로인 두시영 작가"라고 부릅니다. 한국 민중미술의 조직적 기반을 만들어온 단체에서 대표직을 지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민중미술의 흐름을 따라 읽어온 분이라면, 민미협이라는 이름이 1980년대 이후 한국 미술의 어느 자리에 놓이는지 아실 겁니다. 두시영이 아리랑을 고른 시점이 1987년이라는 점도 그 맥락에서 읽힙니다. 한국 사회가 크게 움직이던 해에, 그는 가장 오래된 민요를 붙잡았습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과 국회의사당 등에 소장돼 있습니다.
전시와 자리 — 아리랑이 서는 곳
두시영이 참여해온 전시의 목록을 보면, 아리랑이라는 소재가 어떤 자리로 불려 나가는지가 보입니다.
2020년 11월 11일부터 17일까지 경기 남양주시 와부·조안 행정복지센터 내 와부갤러리에서 〈2020, 새로운 독립운동의 원년, 진정한 독립은 통일이다〉展이 열렸습니다. 사단법인 공공예술들로화집단과 한국민족미술인협회가 함께 주최한 전시였습니다. 독립과 통일을 제목에 건 자리에 아리랑을 그려온 작가가 서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아리랑은 남과 북이 함께 부르는 몇 안 되는 노래 가운데 하나이고, 씨앗페에 나온 그의 작품 중 한 점의 제목도 〈금강산 아리랑〉입니다.
2025년 2월 14일부터 23일까지는 서울 명동 갤러리1898에서 제52회 서울가톨릭미술가회 정기전 《희망의 순례자들》이 열렸고, 그도 참여했습니다. 가톨릭신문과 뉴시스가 함께 전하는 전시입니다.
2026년 8월 3일에는 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옛 상업은행 건물 앞에 섰습니다. 오윤의 테라코타 벽화가 있는 자리에서 열린 '오윤 테라코타 무사해체 기원제'였고, 오윤 구의동 테라코타 보존추진위원회와 한국민족미술인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했습니다. 두시영은 이 자리에서 기원문을 낭독했습니다.
"멸실 위기에 놓인 이 기념비적인 공공미술 작품이 오윤 작가의 정신과 가치를 온전히 담아 안전하게 해체·복원되기를 바란다. 더 많은 시민이 작품을 함께 향유하고, 이번 작업이 한국 공공미술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복원 사례가 되었으면 한다." — 오마이뉴스(김유미 시민기자), 2026년 8월 4일
오래 그려온 화가가 다른 작가의 벽화 앞에서 기원문을 읽는 장면입니다. 자기 작업이 아니라 남의 작업이 남기를 바라는 자리이고, 미술을 개인의 성취가 아니라 공동의 자산으로 보는 사람의 자리입니다.
씨앗페 출품작 세 점 읽기
씨앗페에 들어온 두시영의 작품은 세 점입니다. 2009년, 2022년, 2024년. 15년의 간격 안에 세 점이 놓여 있고, 세 점 모두 제목에 아리랑이 들어 있습니다. 화면 크기와 값은 셋이 각각 다릅니다.
〈금강산 아리랑〉 — 2009년, 캔버스에 혼합재료, 27x76cm
가로 76cm, 세로 27cm의 긴 가로 화면입니다. 세 점 가운데 가장 이른 작업이자 화면 비율이 가장 특이한 작품입니다. 제목의 금강산은 남쪽 작가가 직접 가기 어려운 산이고, 아리랑은 남과 북이 함께 부르는 노래입니다. 두 단어가 한 제목에 붙어 있는 이유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 27x76cm · 캔버스에 혼합재료 · ₩6,000,000
- 작품 페이지 →
〈아리랑- 생명의 노래-〉 — 2022년, 캔버스에 아크릴릭, 45.5x53cm
제목에 '생명의 노래'라는 부제가 붙었습니다. 앞서 읽은 작가의 말 — 아리랑에 "난관을 극복하려는 희망과 의지가 담겨 있다"는 문장 — 을 그대로 제목으로 옮긴 것처럼 보입니다. 세 점 중 가장 작은 화면입니다.

- 45.5x53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 ₩4,000,000
- 작품 페이지 →
〈한겨레 아리랑〉 — 2024년, 캔버스에 혼합재료, 46.5x61.7cm
세 점 중 가장 최근작입니다. '한겨레'는 한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고, 앞서 읽은 그의 문장 — "한국인이 살아온 삶을 대변한다"는 말 — 이 제목으로 압축된 형태입니다. 40년 가까이 아리랑을 그려온 작가가 2024년에 붙인 제목이 결국 '한겨레'였다는 점은, 이 연작이 어디를 향해 왔는지를 알려줍니다.

- 46.5x61.7cm · 캔버스에 혼합재료 · ₩5,000,000
- 작품 페이지 →
세 점을 나란히 놓으면 15년이 한 소재 안에서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입니다. 금강산에서 생명으로, 생명에서 한겨레로. 두시영 작가 페이지에서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미술사에서의 자리
두시영의 자리는 두 좌표로 잡힙니다. 하나는 조직이고, 하나는 소재입니다.
조직 쪽에서는 한국민족미술인협회입니다. 이사장을 역임했고 지금도 원로 임원으로 활동합니다. 1980년대 이후 한국 민중미술이 개인의 작업을 넘어 단체의 형태로 이어지는 데 관여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소재 쪽은 더 특이합니다. 40년을 한 단어에 쓴 작가는 한국 현대미술에 많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 단어가 아리랑처럼 이미 모두가 아는 것일 때는 난도가 더 올라갑니다. 아무도 모르는 소재는 소개만 해도 새롭지만, 모두가 아는 소재는 매번 다르게 보여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4800수를 들춰가며 작업한 것도 그래서일 겁니다. 아리랑을 그리는 일이 아니라 아리랑들을 그리는 일이었으니까요.
민중미술이 흔히 현장과 사건의 미술로 이야기된다면, 두시영의 아리랑은 그 계보 안에서 조금 다른 자리에 섭니다. 특정한 사건이 아니라 사건들이 쌓여 만들어진 정서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그가 "굴곡진 우리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말한 것이 정확히 그 지점입니다. 아리랑은 한 사건의 기록이 아니라 수백 년치 사건이 남긴 자국입니다.
작품이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과 국회의사당에 소장돼 있다는 점도 그 성격과 맞물립니다. 둘 다 특정 개인이 아니라 공적 기관이 공유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두시영은 그 구조에 작품 세 점으로 참여했습니다.
시작이 자선전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이 참여가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1987년 불우이웃돕기 자선전에 낸 한 점이 지금의 화업을 열었고, 40년 뒤 그는 다시 동료를 위한 자리에 작품을 냅니다. 그때는 받은 사람이 책을 보내와 인생이 바뀌었고, 이번에는 그가 보내는 쪽입니다.
두시영을 처음 만나는 분께는 순서를 이렇게 권합니다. 먼저 세 작품의 제목만 읽으십시오. 금강산 아리랑, 아리랑-생명의 노래, 한겨레 아리랑. 같은 단어가 세 번 나오는데 뒤에 붙는 말이 매번 다릅니다. 그 차이가 이 작가가 40년 동안 해온 일입니다. 그다음 가장 긴 가로 화면인 〈금강산 아리랑〉부터 보시길 권합니다. 세 점 중 가장 오래된 작업이라, 이후 두 점이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알려줍니다.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은 아리랑을 만난 것"
작가의 말입니다. 그 축복을 40년 동안 어떻게 썼는지는 작품 세 점에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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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두시영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1987년부터 40여 년째 '아리랑' 하나만을 화두로 삼아 그려온 화가입니다. 매체들이 '아리랑 전문 작가'로 소개합니다.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해 졸업했고, 사단법인 한국민족미술인협회(민미협)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도 원로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왜 아리랑만 그리나요? A. 1987년 불우이웃돕기 자선전에 출품한 작품이 팔린 뒤, 구매자가 답례로 보낸 아리랑 연구가 김연갑의 저서 『아리랑』을 읽은 것이 계기였습니다. 작가는 "그 당시 아리랑이 3000수가 넘는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며 "아리랑이야 말로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가톨릭신문, 2023년 7월 16일)고 밝혔습니다.
Q. 아리랑을 어떻게 해석하나요? A. "아리랑에는 우리 민족의 애환과 한이 있고, 난관을 극복하려는 희망과 의지가 담겨 있어요. 또 '아리랑'이라는 말에는 '하늘의 뜻을 세상에 펼친다'는 뜻이 담겨 있죠"(가톨릭신문, 2023년 7월 16일)라고 말했습니다. 2013년 일요시사 인터뷰에서는 전국의 아리랑이 "대략 4800수 정도인데 들춰낼수록 새로워요"라고 밝혔습니다.
Q. 수상 이력과 소장처는? A. 2004년 문화·예술 부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습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과 국회의사당 등에 소장돼 있습니다.
Q. 최근 활동은? A. 2025년 2월 서울 명동 갤러리1898에서 열린 제52회 서울가톨릭미술가회 정기전 《희망의 순례자들》에 참여했고, 2026년 8월 3일에는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서 열린 '오윤 테라코타 무사해체 기원제'(오윤 구의동 테라코타 보존추진위원회·한국민족미술인협회 공동 주최)에서 기원문을 낭독했습니다.
Q. 두시영 작품 가격대는? A. 씨앗페에 나온 세 점은 〈금강산 아리랑〉(2009, 27x76cm) ₩6,000,000, 〈한겨레 아리랑〉(2024, 46.5x61.7cm) ₩5,000,000, 〈아리랑- 생명의 노래-〉(2022, 45.5x53cm) ₩4,000,000입니다.
Q. 두시영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두시영은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씨앗페에 참여했습니다.
Q. 씨앗페에 나온 두시영 작품은 몇 점인가요? A. 세 점입니다. 〈금강산 아리랑〉(2009, 캔버스에 혼합재료, 27x76cm), 〈아리랑- 생명의 노래-〉(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45.5x53cm), 〈한겨레 아리랑〉(2024, 캔버스에 혼합재료, 46.5x61.7cm)입니다. 작가 페이지에서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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