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소집단 임술년의 창립 동인으로 출발해 쓰러진 권투 선수를 그려온 민중미술 화가 박흥순. 승자가 아니라 패자를 택한 그 선택의 뜻과 씨앗페 출품작 두 점을 안내합니다.
박흥순 — 링 위에 쓰러진 사람을 그린 화가, 임술년에서 오늘까지

씨앗페에 들어온 박흥순의 작품은 두 점입니다. 〈가을 바람 2〉(2013)와 〈몽골의 길〉(2016). 두 점 모두 73x53cm의 같은 화면 크기이고, 제목만 놓고 보면 계절과 길을 말하는 조용한 그림처럼 읽힙니다.
그런데 한국 미술사가 이 작가를 기억하는 이름은 다릅니다. 복서의 화가. 그것도 이긴 선수가 아니라 링 위에 쓰러진 선수를 40년 넘게 그려온 사람입니다. 이 글은 그 두 이름 사이를 잇습니다. 쓰러진 복서를 그리던 손과 가을 바람을 그리는 손이 왜 같은 손인지를 보려면, 이 작가가 1982년에 어디에 서 있었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1982년, 임술년의 일곱 사람
박흥순은 1952년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1982년, 그는 소집단 '임술년'의 창립 동인이 됩니다. 전준엽, 이종구, 이명복, 송창, 천광호, 황재형과 함께였습니다. 임술년은 비판적 리얼리즘을 내걸고 동시대의 모순과 사회적 현실을 화면에 드러내는 일을 과제로 삼은 그룹이었고, 1980년대 민중미술의 한 축이 됩니다. 박흥순의 이름은 그 출발점부터 이 흐름 안에 놓입니다.
한 사람의 화가가 어떤 그룹의 창립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 시점에 그가 무엇을 하지 않기로 했는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1982년의 한국 화단에서 '비판적 리얼리즘'을 내건다는 것은 미술이 다룰 수 있는 소재의 목록에서 당대의 현실을 빼놓지 않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함께 출발한 이름들 가운데 이종구는 쌀부대 위에 농민의 얼굴을 그렸고, 박흥순은 링 위의 복서를 택했습니다. 같은 문제 의식이 서로 다른 소재로 갈라진 자리가 그해입니다.
이후의 이력은 작업과 조직 양쪽에 걸쳐 있습니다. 그는 사단법인 민족미술인협회 회장을 지냈고, 서울민족미술인협회 대표도 역임했습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 데이터베이스에는 〈복서 10〉(1982), 〈복서 26〉(1985), 〈타향〉(1991)이 올라 있습니다.
왜 이긴 선수가 아니라 진 선수인가
박흥순의 작업을 한 단어로 옮기면 '복서'입니다. 링에서 쓰러진 권투 선수를 통해 군부독재 시대 서민의 고단한 삶과 사회의 모순을 은유한 연작으로,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이 연작을 이해하는 열쇠는 작가 자신의 회고에 있습니다.
"당시 프로복싱은 가난한 청년들이 성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성공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죠. 저는 승리한 선수가 아닌 패배한 선수의 모습을 그림으로써, 우리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세 문장이 하나의 논리로 이어집니다. 통로가 하나뿐이었다는 사실, 그 통로를 통과한 사람이 극소수였다는 사실, 그러니 그 나머지를 그려야 한다는 결론. 링 위에서 이긴 사람을 그리면 그림은 성공담이 되지만, 쓰러진 사람을 그리면 그림은 그 성공담의 분모가 됩니다. 소수의 승자 뒤에 있는 다수를 화면에 올리는 일 — 민중미술이 1980년대에 붙들었던 시선의 방향이 이 한 문장에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프로복싱의 인기가 절정이던 시기에 그 인기의 이면을 그렸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소재를 고를 때 그는 당대에 가장 뜨거운 장면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장면 안에서 카메라가 잘 비추지 않는 쪽으로 화면을 돌려놓았을 뿐입니다.
서울시립미술관에 남아 있는 세 제목의 연대가 이 작업의 지속을 보여줍니다. 〈복서 10〉이 1982년, 〈복서 26〉이 1985년입니다. 임술년을 결성한 해에 이미 열 번째 복서가 있었고, 3년 뒤에는 스물여섯 번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1991년의 〈타향〉이 뒤를 잇습니다. 링 안에서 링 바깥으로 시선이 옮겨가던 시기의 기록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1994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과천)의 《민중미술 15년》전에 참여합니다. 1980년대의 미술 운동을 국가 미술관이 처음으로 정리해 되돌아본 자리였고, 박흥순은 그 15년의 당사자로 그 안에 있었습니다.
링 바깥으로 — 쇠똥구리, 2003년
박흥순의 시선이 1980년대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 있습니다. 2003년작 〈쇠똥구리〉입니다.
이 작품은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을 쇠똥구리 두 마리가 지구를 굴리는 모습으로 형상화한 사회비판 작업입니다. 2008년 인터뷰에서 시인 홍해리는 이 작품을 두고 "영국 쇠똥구리와 미국 쇠똥구리 두 마리가 지구를 굴리고" 있다고 설명했고, 21년 뒤인 2024년 6월 춘천에서 열린 '과거에서 현재로'전에도 이 작품이 다시 걸렸습니다.
쓰러진 복서에서 지구를 굴리는 쇠똥구리로. 소재는 멀어 보이지만 방법은 같습니다. 큰 사건을 큰 화면으로 재현하는 대신, 그 사건의 성격을 드러내는 하나의 비유를 찾아 화면 전체를 거기에 거는 방식입니다. 권투는 링 안에서 벌어지는 합법적 폭력의 제도이고, 쇠똥구리는 무언가를 굴려 옮기는 곤충입니다. 두 비유 모두 설명 없이 한눈에 읽히면서, 읽고 난 뒤에 불편함이 남습니다.
21년 뒤에 같은 작품이 다시 전시된다는 것도 이 작가의 작업이 시효를 어떻게 다루는지 보여줍니다. 2003년의 전쟁을 그린 그림이 2024년에도 유효한 그림으로 걸린다면, 그것은 그림이 낡지 않았다는 뜻이거나 세상이 그만큼 바뀌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대개는 둘 다입니다.
시와 그림 사이에서 — 2008년의 대담
박흥순이 자기 작업 바깥에 대해 말한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이 주간한국이 2008년 8월 27일 시인 홍해리와 화가 박흥순을 나란히 앉혀 진행한 인터뷰('시와 그림의 동거… 강산이 세번 변했네', 이윤주 기자)입니다.
학창 시절을 회고하는 대목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미화부장이라서 졸업하면서 공로상을 받았었죠. 1학년 때는 우등상도 받았는데 3학년 때는 결석을 많이 해서 우등상은 못 받았어. 그때 선생님은 꽤 무서운 분이셨죠." — 주간한국, 2008년 8월 27일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시인과의 관계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전 시인을 오랜 세월 봐왔지만, 정작 시를 잘 몰라요. 선생님의 시는 그야말로 모범적인 형태를 갖고 있고, 시인 정신을 지키고 있죠. 주변에서 어떻게 몇 십년을 사제지간으로 지낼 수 있냐고 물어보시는데 은사로서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선생님과 주변 시인들을 존경하는 마음이 컸죠. 이분들과 여러 인생경험을 많이 합니다." — 주간한국, 2008년 8월 27일
그리고 그 관계에서 손해 본 것이 없느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 남아 있습니다.
"내가 없었으면 더 좋은 제자 만나서 더 좋은 분위기에서 지낼 수도 있지 않았나. 내 입장에서는 그런 생각을 하죠. 개인적으로 한번 뵙기도 어려운 분들을 가까이서 모시고 정신적인 양식을 얻은 거야. 그걸 젊은 사람이 계산 한다고 해도 손해라고 볼 수 있겠나, 싶죠. 유익하고 남들이 부러워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 주간한국, 2008년 8월 27일
'계산한다고 해도 손해라고 볼 수 있겠나.' 오래 곁에 있는 일을 손익으로 따져보고, 따져본 결과가 이익이라고 말하는 방식입니다. 40년 넘게 한 연작을 이어온 사람의 시간 감각이 이 대답에 배어 있습니다.
씨앗페 출품작 두 점 읽기
씨앗페에 들어온 박흥순의 작품은 두 점입니다. 〈가을 바람 2〉(2013)와 〈몽골의 길〉(2016). 제작 연도는 3년 차이이고, 화면 크기는 73x53cm로 같습니다. 가격도 두 점 모두 ₩5,000,000입니다. 크기와 값이 같으니 고르는 기준은 제목과 연도뿐입니다.
〈가을 바람 2〉 — 2013년, 73x53cm
제목에 붙은 '2'가 이 작품이 연작의 일부임을 알려줍니다. 복서에서 시작해 사회비판으로 확장해온 작가의 목록 안에서, 계절의 이름을 제목으로 올린 화면이 어떤 자리에 놓이는지를 직접 확인하고 싶은 분께 권합니다.

- 2013년 · 73x53cm · ₩5,000,000
- 작품 페이지 →
〈몽골의 길〉 — 2016년, 73x53cm
제목이 장소와 길을 함께 부릅니다. 두 점 가운데 나중의 작품이고, 한국의 링과 한국의 거리를 그려온 화가가 제목에 다른 나라의 이름을 올린 화면입니다.

- 2016년 · 73x53cm · ₩5,000,000
- 작품 페이지 →
두 점을 나란히 두면 2010년대 중반의 박흥순이 보입니다. 박흥순 작가 페이지에서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미술사에서의 자리
박흥순의 자리는 두 개의 좌표로 표시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1982년 임술년 창립 동인이라는 좌표이고, 다른 하나는 사단법인 민족미술인협회 회장이라는 좌표입니다. 앞의 것이 작업의 출발점이라면, 뒤의 것은 그가 개인 작업 바깥에서 맡았던 몫입니다.
미술 운동은 작품만으로 굴러가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전시를 꾸리고, 회의를 열고, 조직의 이름으로 발언해야 합니다. 협회의 회장과 대표를 지낸 이력은 박흥순이 그 몫을 오래 맡았다는 기록입니다. 그리고 그 시기에도 복서 연작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 그중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에 1982년과 1985년의 '복서'가 나란히 들어 있다는 사실은 이 연작이 동시대의 기록으로 공적인 자리에 남았음을 뜻합니다. 1994년 국립현대미술관 《민중미술 15년》전 참여도 같은 맥락에 놓입니다.
민중미술의 흐름 전반에서 박흥순을 읽을 때 눈여겨볼 지점은 소재의 선택입니다. 1980년대 민중미술이 농민과 노동자와 광장을 화면에 올릴 때, 그는 프로복싱이라는 대중 스포츠의 한복판을 골랐습니다. 대중이 열광하는 장면을 그대로 가져와 그 안의 패자를 앞에 세우는 방식은, 관객에게 다른 그림을 보여주는 대신 이미 보고 있던 것을 다르게 보게 만드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박흥순이 씨앗페에 두 점을 낸 이유는 자신의 사정 때문이 아닙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40년 넘게 링 위에 쓰러진 사람을 그려온 화가가 이 구조에 참여한다는 사실에는 따로 붙일 설명이 없어 보입니다. 성공한 소수가 아니라 그 뒤의 다수를 화면에 올리던 방식과, 담보도 소득 증빙도 마련하기 어려운 예술인 쪽에 서는 일은 같은 방향을 봅니다.
박흥순을 처음 만나는 분이라면 순서를 이렇게 잡아보시길 권합니다. 먼저 '복서' 연작이 무엇을 그린 것인지 위의 작가 회고를 다시 읽으십시오. 그다음에 〈가을 바람 2〉와 〈몽골의 길〉의 제목을 나란히 놓으십시오. 계절과 길이라는 두 단어가, 링 위의 패배를 40년 그려온 사람의 목록 안에 들어갔을 때 어떻게 읽히는지가 이 두 점의 관전 포인트입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함께 읽으면 좋은 글들을 소개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박흥순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1952년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난 민중미술 화가입니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1982년 소집단 '임술년'의 창립 동인으로 참여했고, 링 위에 쓰러진 권투 선수를 그린 '복서' 연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Q. '임술년'은 무엇인가요? A. 1982년 결성된 소집단으로, 박흥순은 전준엽·이종구·이명복·송창·천광호·황재형과 함께 창립 동인으로 참여했습니다. 비판적 리얼리즘을 내걸고 동시대의 모순과 사회적 현실을 화면에 드러내는 일을 과제로 삼았으며, 1980년대 민중미술의 한 축을 이뤘습니다.
Q. 왜 쓰러진 복서를 그렸나요? A. 작가 본인의 회고가 있습니다. "당시 프로복싱은 가난한 청년들이 성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성공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죠. 저는 승리한 선수가 아닌 패배한 선수의 모습을 그림으로써, 우리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군부독재 시대 서민의 고단한 삶과 사회의 모순을 링 위의 패자로 은유한 연작입니다.
Q. 작품은 어디에 소장되어 있나요? A.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 데이터베이스에는 〈복서 10〉(1982), 〈복서 26〉(1985), 〈타향〉(1991)이 올라 있습니다.
Q. '복서' 말고 다른 작업도 있나요? A. 2003년작 〈쇠똥구리〉가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을 쇠똥구리 두 마리가 지구를 굴리는 모습으로 형상화한 사회비판 작업으로, 2024년 6월 춘천 '과거에서 현재로'전에도 출품됐습니다.
Q. 협회 활동 이력은? A. 사단법인 민족미술인협회 회장과 서울민족미술인협회 대표를 역임했습니다. 1994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과천)의 《민중미술 15년》전에 참여했습니다.
Q. 박흥순 작품 가격대는? A. 씨앗페에 나온 두 점은 모두 ₩5,000,000입니다. 〈가을 바람 2〉(2013)와 〈몽골의 길〉(2016) 두 점 다 73x53cm로 크기도 같아, 제목과 제작 연도로 고르시면 됩니다.
Q. 박흥순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박흥순은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씨앗페에 참여했습니다.
Q. 씨앗페에 나온 박흥순 작품은 몇 점인가요? A. 〈가을 바람 2〉(2013, 73x53cm)와 〈몽골의 길〉(2016, 73x53cm) 두 점입니다. 작가 페이지에서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관련 매거진
씨앗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