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담양으로 옮겨간 뒤 농사짓듯 그림을 그려온 수묵화가 박문종. 연진회미술원 1기생에서 허백련미술상까지, 먹과 흙으로 남도의 땅을 그려온 길을 따라 읽습니다.
박문종 — 그림으로 농사짓는 화가, 남도의 논에서 자란 수묵

씨앗페에 들어온 박문종의 작품 석 점 가운데 가장 나중의 것은 〈호박〉입니다. 2022년, 종이에 먹, 48x37.5cm. 제목이 호박입니다. 밭에서 나는 것의 이름입니다.
2024년 광주시립미술관과 의재미술관이 함께 연 그의 수상작가전 제목은 〈그림으로 농사짓는 화가, 박문종〉이었습니다. 미술관이 붙인 그 한 줄이 이 작가를 가장 짧게 요약합니다. 농사와 그림이 비유의 관계가 아니라 같은 일의 두 이름이라는 뜻입니다.
씨앗페에 나온 석 점은 2017년과 2022년, 5년 간격을 두고 찍힌 두 개의 지점입니다. 사람을 그린 두 점과 밭의 것을 그린 한 점. 이 배치 자체가 박문종이 담양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무안에서 연진회로
박문종은 1957년 전라남도 무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림에 들어선 자리는 연진회미술원이었고, 그는 그 1기생입니다.
연진회미술원이 어떤 곳인지를 알아두면 이 작가의 출발점이 선명해집니다. 연진회는 1938년 설립돼 1944년 문을 닫은 단체였습니다. 그로부터 한참 뒤인 1978년, 의재 허백련의 제자들이 스승의 뜻을 잇고자 그 이름을 이어 미술원을 세웠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과 광주광역시가 함께 만든 디지털광주문화대전은 "연진회는 1944년경에 문을 닫았으나 1978년 고 허백련의 유지에 따라 연진회미술원이 연진회의 뒤를 이었다"고 기록합니다. 박문종은 그 첫 기수로 들어갔습니다.
본인의 기억은 이렇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78년 연진회에 들어갔다." — 광주일보, 2024년 11월 12일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그곳의 수업 방식도 함께 말했습니다.
"도제식 교육으로 진행됐는데 난초 그림을 많이 그렸던 기억이 있다." — 광주일보, 2024년 11월 12일
도제식 교육, 그리고 난초. 남종화의 전통이 스승에게서 제자에게로 손으로 건네지던 자리입니다. 뒷날 그가 논과 밭을 그리게 된다는 것을 알고 나면, 이 출발점은 더 흥미로워집니다. 문인화의 사군자에서 시작해 농사의 현장으로 걸어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그는 호남대학교 미술과와 조선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합니다. 제도 교육과 도제 교육을 모두 거친 셈입니다.
전환 — 1997년, 담양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박문종이 그린 것은 시대의 상황이었습니다. 그 시기를 설명하는 말은 '필묵에 담은 현실주의 수묵화'입니다. 먹과 붓이라는 전통 재료로 당대의 현실을 다룬 작업이라는 뜻입니다.
전환은 1997년에 옵니다. 그해 그는 담양으로 옮겨갔고, 그 뒤로 작업의 방식 자체가 달라집니다. 여러 매체가 이 시기 이후의 그를 한 문장으로 반복해 설명합니다 — 농사짓듯 그림을 그리고, 그림 그리듯 농사를 짓는다.
이 문장이 수사가 아니라는 것은 그가 쓰는 재료에서 확인됩니다. 먹과 흙을 함께 씁니다. 그림의 재료 목록에 흙이 들어가면, 그 그림은 땅에서 무언가를 가져온 물건이 됩니다. 캔버스 위에 흙을 얹는 것이 아니라, 흙이 있는 곳에서 그림이 나온 것에 가깝습니다.
논밭이 소재였을 뿐 아니라 작업의 무대이기도 했습니다. 담양의 논에서 그는 모내기 퍼포먼스를 벌였습니다. 그림을 그리러 논에 간 것이 아니라 논에서 그림이 된 일입니다.
작가 본인의 말은 이 지점에서 가장 단순합니다.
"인간이 씨를 뿌리고 가꾸고 거두는 일,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다." — 광남신문, 2024년 11월 4일
미술에 대한 말이 한 마디도 없다는 점이 이 문장의 특징입니다. 씨를 뿌리고 가꾸고 거두는 일이 가장 가치 있다고 말한 사람이 그 일을 그립니다. 그러면 그림은 그 가치의 기록이 되지, 그 가치를 빌려온 소재가 되지 않습니다.
작업의 문법 — 신문자도, 그리고 'ㅛ'
박문종의 작업을 미술사 쪽에서 구별해 부를 때 자주 나오는 이름이 '신문자도(新文字圖)'입니다. 기호와 글자를 화면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입니다.
가장 자주 인용되는 예가 논 기호입니다. 지도에서 논을 표시하는 기호는 'ㅛ' 모양입니다. 박문종은 그 기호를 그대로 가져와 모내기 풍경 같은 장면을 표현합니다.
이 선택이 왜 중요한지는 한 번 풀어볼 만합니다. 지도 기호는 땅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압축한 표기입니다. 실물을 닮게 그리는 대신, 약속된 부호 하나로 '여기는 논'이라고 말하는 방식입니다. 그 부호를 그림 안에 되돌려놓으면, 화면은 풍경이면서 동시에 지도가 됩니다. 보는 사람은 논을 바라보는 동시에 논이 놓인 자리를 읽게 됩니다.
문자도라는 전통 장르의 이름을 빌려온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글자가 곧 그림이 되는 형식이 이미 한국 회화에 있었고, 박문종은 그 형식의 자리에 현대의 기호를 넣었습니다. 연진회미술원에서 난초를 그리며 배운 전통의 문법이, 지도 기호를 다루는 자리에서 다시 쓰이는 셈입니다.
평론가 김정락은 그의 작업을 이렇게 평했습니다.
"진정한 예술은 삶의 밑바닥을 훑어서 건져낸 삶의 절박함이라 하겠다. 이 절박함이 폐부를 꿰뚫을 때에 비로소 공감과 연대가 공명한다. 그런 떨림을 주는 화가가 박문종이다." — 광남신문, 2024년 11월 4일
'공감과 연대'라는 말이 나온다는 점을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이 글의 마지막 장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근작이 놓인 자리 — 최근 몇 해
박문종의 최근 활동을 시간순으로 놓으면, 그가 어떤 자리에 불려 다니는 작가인지가 드러납니다.
2022년 8월, 담양 담빛예술창고의 '전남지역 중견작가 4인 초대전'에서 그는 신작 〈나는 논에서 났다〉를 발표했습니다. 제목이 다시 논입니다. 1인칭 문장으로 자기 출처를 밝히는 제목입니다.
2023년에는 허백련미술상을 받았습니다. 연진회미술원이 그 뜻을 이어 세워진 바로 그 화가의 이름을 딴 상입니다. 도제식으로 난초를 그리던 1기생이 45년 뒤 스승의 이름이 붙은 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한 줄의 이력 이상으로 읽힙니다.
이듬해인 2024년 11월 1일부터 12월 25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과 의재미술관이 공동주최한 수상작가전 〈그림으로 농사짓는 화가, 박문종〉이 열렸습니다. 초창기작부터 최근작까지 65점이 나왔습니다. 한 작가의 시작과 지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게 짠 구성입니다.
2026년 5월에는 광주 남구 이강하미술관의 5·18민주화운동 46주년 특별전 〈새로운 창작, 미래의 유산〉에 노순택·이정기와 함께 참여했습니다. 이 전시에 그가 낸 작품은 〈미륵불〉·〈그림농사〉·〈자화상〉·〈연화동자〉 등입니다. 제목들만 나란히 놓아도 그의 관심이 어디에 걸쳐 있는지 보입니다. 불교적 도상과 농사와 자기 자신이 한 목록 안에 있습니다.
2026년 9월에는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 교보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 〈하늘의 빛, 땅의 빛〉에 참여했습니다. 박경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대하소설 『토지』를 그림으로 옮긴 전시로, 길현·김선두·박세진·박영근·안중경·이동환·홍승희 등 화가 8인이 30점을 냈습니다. 『토지』를 그리는 자리에 땅을 그려온 화가가 불린 것입니다.
씨앗페 출품작 석 점 읽기
씨앗페에 들어온 박문종의 작품은 석 점입니다. 2017년의 두 점과 2022년의 한 점. 매체는 모두 종이에 먹이고, 2017년의 두 점에는 호분이 함께 표기돼 있습니다.
〈인물 1〉 — 2017년, 종이에 먹 호분, 57x40cm
제목이 '인물'입니다. 이름도 사연도 붙이지 않은 제목입니다. 담양으로 옮겨간 지 20년째 되던 해의 작업이고, 석 점 중 큰 쪽에 속하는 화면입니다.

- 57x40cm · 종이에 먹 호분 · ₩4,000,000
- 작품 페이지 →
〈인물 2〉 — 2017년, 종이에 먹 호분, 57x40cm
같은 해, 같은 재료, 같은 크기의 두 번째 인물입니다. 번호로만 갈라놓은 제목이라 두 점을 나란히 거는 쪽이 자연스럽습니다. 짝으로 들이려는 분께 권합니다.

- 57x40cm · 종이에 먹 호분 · ₩4,000,000
- 작품 페이지 →
〈호박〉 — 2022년, 종이에 먹, 48x37.5cm
석 점 가운데 가장 최근작이자 가장 작은 화면이고, 호분 없이 먹만 쓴 유일한 작품입니다. 제목이 밭에서 나는 것의 이름이라는 점에서, 앞의 두 점과 나란히 놓으면 이 작가가 담양에서 무엇을 곁에 두고 사는지가 드러납니다. 사람과 소출이 같은 목록에 있습니다.

- 48x37.5cm · 종이에 먹 · ₩2,000,000
- 작품 페이지 →
석 점을 함께 보시려면 박문종 작가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미술사에서의 자리
박문종을 한국 미술의 지형에 놓을 때 짚어야 할 좌표는 둘입니다.
하나는 남도 수묵의 계보입니다. 의재 허백련의 뜻을 이어 1978년 문을 연 연진회미술원의 1기생이고, 2023년 그 화가의 이름이 붙은 허백련미술상을 받았습니다. 시작과 인정이 같은 이름 안에서 이뤄진 드문 경우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가 그 계보 안에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1980~1990년대에 그는 시대의 상황을 필묵에 담는 현실주의 수묵을 그렸습니다. 전통 재료로 당대를 다루는 일은, 재료의 계보와 주제의 현재성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작업입니다. 2026년 5·18민주화운동 46주년 특별전에 불린 것도 이 이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1997년의 담양행이 세 번째 좌표를 만듭니다. 그는 현실을 그리는 자리에서 현실을 사는 자리로 옮겼습니다. 농사를 소재로 삼은 화가는 여럿이지만, 농사를 짓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스스로 말하고 미술관이 그 문장을 전시 제목으로 채택한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나는 논에서 났다〉라는 제목이 가능해지는 자리가 그곳입니다.
민중미술의 흐름을 따라 읽어온 분이라면, 박문종의 경로가 그 흐름의 한 변주로 보일 것입니다. 광장에서 논으로, 구호에서 소출로. 장소와 어휘가 바뀌었을 뿐 질문은 남아 있습니다 — 지금 이 땅에서 무엇이 자라고 있으며, 그것을 기르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박문종이 씨앗페에 석 점을 낸 이유는 자신의 사정 때문이 아닙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박문종은 그 구조에 작품으로 참여했습니다.
앞에서 읽은 평론가 김정락의 문장에 '공감과 연대'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씨를 뿌리고 가꾸고 거두는 일보다 가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한 화가가, 동료의 다음 계절을 위해 작품을 내놓는 일. 이것도 같은 문법 안에 있습니다. 심는 사람이 거두는 사람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박문종을 처음 만나는 분이라면 순서를 이렇게 잡아보시길 권합니다. 먼저 〈호박〉의 제목을 보십시오. 왜 이 화가가 밭의 것에 이름을 붙여 그리는지를 묻는 순간, 1997년 담양행의 의미가 열립니다. 다음으로 〈인물 1〉과 〈인물 2〉를 나란히 놓으십시오. 이름을 붙이지 않은 인물 제목이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냈는지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말을 다시 읽으시면 됩니다.
"인간이 씨를 뿌리고 가꾸고 거두는 일,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다."
박문종의 작품을 컬렉션의 한 자리에 둔다는 것은, 남도의 수묵이 문인화의 난초에서 담양의 논까지 걸어온 길을 한 점 안으로 들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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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박문종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1957년 전라남도 무안에서 태어난 수묵화가입니다. 1978년 문을 연 연진회미술원의 1기생으로 그림에 입문했고, 호남대학교 미술과와 조선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1980~1990년대에는 시대 상황을 필묵에 담은 현실주의 수묵화를 그렸고, 1997년 담양으로 옮겨간 뒤로는 농사짓듯 그림을 그리고 그림 그리듯 농사를 짓는 방식으로 작업해 왔습니다.
Q. '연진회미술원'은 무엇인가요? A. 1938년 설립돼 1944년 해체된 연진회를 이어, 1978년 의재 허백련의 제자들이 스승의 뜻을 잇고자 세운 미술원입니다. 박문종은 그 1기생입니다. 본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78년 연진회에 들어갔다", "도제식 교육으로 진행됐는데 난초 그림을 많이 그렸던 기억이 있다"(광주일보, 2024년 11월 12일)고 회고했습니다.
Q. '신문자도'는 어떤 작업인가요? A. 기호와 글자를 화면 안으로 끌어들이는 박문종의 작업 방식입니다. 대표적으로 지도에서 논을 표시하는 기호 'ㅛ'를 활용해 모내기 풍경 등을 표현합니다.
Q. 수상 이력과 주요 전시는? A. 2023년 허백련미술상을 받았고, 2024년 11월 1일부터 12월 25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의재미술관 공동주최로 수상작가전 〈그림으로 농사짓는 화가, 박문종〉이 열려 초창기작부터 최근작까지 65점이 전시됐습니다. 2022년 8월 담양 담빛예술창고 '전남지역 중견작가 4인 초대전'에서 신작 〈나는 논에서 났다〉를 발표했고, 2026년 5월 광주 이강하미술관의 5·18민주화운동 46주년 특별전 〈새로운 창작, 미래의 유산〉에 참여했습니다.
Q. 박문종 작품 가격대는? A. 씨앗페에 나온 석 점은 〈인물 1〉과 〈인물 2〉가 각각 ₩4,000,000(57x40cm), 〈호박〉이 ₩2,000,000(48x37.5cm)입니다.
Q. 박문종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박문종은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씨앗페에 참여했습니다.
Q. 씨앗페에 나온 박문종 작품은 몇 점이고 어떤 것인가요? A. 〈인물 1〉(2017, 종이에 먹 호분, 57x40cm), 〈인물 2〉(2017, 종이에 먹 호분, 57x40cm), 〈호박〉(2022, 종이에 먹, 48x37.5cm) 석 점입니다. 작가 페이지에서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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