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제11회 박수근미술상을 받은 판화가 손기환. 분단과 이산가족의 상처를 목판화와 팝아트 회화, 만화적 이미지로 다뤄온 작가의 작업과 씨앗페 출품작 세 점을 안내합니다.
손기환 — 45년 만에 받은 상, 분단을 만화의 언어로 새긴 판화가

2026년 5월, 손기환은 제11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로 발표됐습니다. 그때 그가 한 말이 이 작가의 45년을 한 문단으로 요약합니다.
"45년 작가 인생에서 제대로 주목받아 본 건 처음입니다. 주변에선 '아직도 똑같은 거 그리고 있냐. 캔버스가 아깝다'고도 했죠. 하지만 분단이 남긴 상흔을 자꾸만 이야기하는 것, 그건 내 존재 방식이에요. 그간의 고생을 박수근 선생에게 위로받는 기분입니다." — 동아일보, 2026년 5월 13일
'아직도 똑같은 거 그리고 있냐.' 45년 동안 같은 주제를 놓지 않은 사람이 들어온 말입니다. 그리고 그 말에 대한 대답이 "그건 내 존재 방식"입니다.
씨앗페에 들어온 그의 작품은 세 점입니다. 〈홍길동1〉, 〈홍길동2〉, 〈한강〉. 모두 2026년작이고, 모두 목판입니다.
45년의 이력, 그리고 2026년
손기환은 2026년 기준 만 70세입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그의 작업은 분단과 이산가족, 한반도 현대사의 상처를 다룹니다. 다루는 방법이 독특합니다. 목판화와 팝아트 회화, 그리고 만화적 이미지 언어. 무거운 주제를 무겁게 다루는 대신 대중 이미지의 문법을 빌려옵니다.
색에 대한 설명이 그 방법을 잘 보여줍니다.
"채도, 명도가 떨어지는 걸 좋아하지 않아 노란 물감을 가장 많이 쓴다" · "원색이 주로 쓰이던 고전 만화를 즐겨 본 영향이 있다" — 동아일보, 2026년 5월 13일
분단을 그리는 화가가 가장 많이 쓰는 물감이 노랑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이유가 고전 만화라는 사실. 이 두 문장은 이 작가를 다른 분단 작가들과 구별 짓는 지점을 정확히 가리킵니다.
2026년의 주목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점도 그는 짚어둡니다.
"아직도 수상 사실에 얼떨떨하다" · "1985년 공수부대원의 훈련 장면을 그린 '타타타타!!'가 경찰에 압수돼 뉴스에 난 뒤로 세간의 관심은 처음"이라며 "보람과 부담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 동아일보, 2026년 5월 13일
1985년의 압수와 2026년의 수상. 41년 사이에 세간의 관심이 두 번 있었고, 첫 번째는 경찰이 그림을 가져간 사건이었습니다. 이 한 줄이 1980년대 한국에서 그림이 놓여 있던 자리를 설명합니다.
지금 그가 붙들고 있는 방향도 같은 인터뷰에 나옵니다.
"한반도 최남단이라는 장소성과 분단의 문제를 연결 지어 보려 노력 중" — 동아일보, 2026년 5월 13일
분단을 다루는 작업은 대개 휴전선 쪽을 봅니다. 최남단에서 분단을 보겠다는 것은 거리를 뒤집어 보는 방법입니다. 가장 먼 곳에서도 그 문제가 작동하고 있다면, 그것은 선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의 문제라는 뜻이 됩니다.
박수근미술상, 2026년 5월 28일
제11회 박수근미술상 시상식은 2026년 5월 28일 강원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 야외행사장에서 열렸습니다. 부상은 창작지원금 3,000만 원과, 박수근 화백의 유화 '아기 보는 소녀'를 조각으로 제작한 상패였습니다.
수상 소감에서 그는 먼저 고마움을 말했습니다.
"젊은 시절 미술 활동을 하면서 겪은 고생과 아픔을 박수근 화백이 위로해 주는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수근 선생님, 고맙습니다." — 동아일보, 2026년 5월 28일
그리고 곧바로 부담을 말했습니다.
"나의 화업(畫業)이 박 화백의 정신을 잘 담아내고 있는가에 대한 부담이 없잖다" · "내년 이 자리에서 더 좋은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상에 보답하고, 이 상이 권위를 유지하도록 앞으로도 좋은 작업을 하는 작가가 되겠다" — 동아일보, 2026년 5월 28일
상을 받은 자리에서 그 상의 권위를 걱정하는 어법입니다. 70세의 작가가 '내년 이 자리에서 더 좋은 작품을'이라고 말합니다.
양구라는 장소도 그에게는 우연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양구는 군 생활을 했던 곳이자 고향 다음으로 오래 살았던 기억에 남는 장소" · "박수근 화백의 미학과 진실한 삶의 태도를 오래 고민해온 만큼 이번 수상이 더욱 뜻깊다" — 강원일보, 2026년 5월 28일
양구는 강원도 북부의 접경 지역입니다. 분단을 45년 그려온 화가가 군 생활을 했던 곳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작업의 문법 — 칼과 만화 사이
손기환의 작업을 읽는 열쇠는 매체의 조합입니다. 목판화, 팝아트 회화, 만화적 이미지 언어. 셋은 출신이 다릅니다.
목판화는 가장 오래된 복제 매체 가운데 하나이고, 나무를 파낸 자리만큼만 표현이 가능한 제약의 매체입니다. 팝아트는 대량생산된 이미지를 미술로 끌어들이는 20세기 후반의 어법입니다. 만화는 대중이 매일 읽는 그림입니다.
셋의 공통점은 '여럿에게 가도록 만들어진 그림'이라는 점입니다. 한 점뿐인 원화가 아니라 찍어내고 퍼뜨리는 이미지의 계보입니다. 분단과 이산가족이라는 주제를 이 계보 위에 올린다는 선택은, 그 이야기가 소수의 감상자가 아니라 여럿에게 닿아야 한다는 판단으로 읽힙니다.
색의 선택도 같은 방향입니다. 채도와 명도가 떨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 노란 물감을 가장 많이 쓴다는 말, 원색의 고전 만화를 즐겨 봤다는 말. 상처를 다루면서도 화면을 어둡게 가라앉히지 않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그 결과가 공적인 자리에도 남았습니다. 그의 목판화는 영국 대영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한국 목판화가 대영박물관 소장품 목록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은, 이 매체가 한국 현대미술의 한 계보로 바깥에서도 읽힌다는 뜻입니다.
2026년 5월 23일부터 6월 13일까지 헬로우뮤지움에서 개인전 《판도라의 상자 : 같은 달을 보고 있을까》가 열렸습니다. 제목의 뒷부분이 이 작가의 주제를 그대로 말합니다. 같은 달을 보고 있을까 — 갈라진 두 곳에서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상황을 묻는 문장입니다.
씨앗페 출품작 세 점 읽기
씨앗페에 들어온 손기환의 작품은 세 점이고, 모두 2026년작입니다. 〈홍길동1〉과 〈홍길동2〉는 45.9x45.9cm의 정사각형이고 재료는 Relief, Woodcut(볼록판, 목판)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한강〉은 56.3x45.7cm로 조금 더 크고, 재료는 종이에 목판입니다. 세 점 모두 ₩900,000입니다.
제목의 조합이 흥미롭습니다. 홍길동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 속 인물이고, 한강은 서울을 가로지르는 강의 이름입니다. 만화적 이미지 언어로 분단을 다뤄온 작가가 고른 제목으로는 자연스러운 한 쌍입니다.
〈홍길동1〉 — 2026년, Relief, Woodcut, 45.9x45.9cm
정사각형 화면입니다. 목판화를 처음 들이는 분께 권할 만한 크기이고, 〈홍길동2〉와 나란히 걸면 한 쌍이 됩니다.

- 2026년 · 45.9x45.9cm · Relief, Woodcut · ₩900,000
- 작품 페이지 →
〈홍길동2〉 — 2026년, Relief, Woodcut, 45.9x45.9cm
〈홍길동1〉과 같은 크기, 같은 재료, 같은 해의 작업입니다. 두 점을 함께 들이면 같은 인물을 두 번 새긴 화면을 나란히 볼 수 있습니다.

- 2026년 · 45.9x45.9cm · Relief, Woodcut · ₩900,000
- 작품 페이지 →
〈한강〉 — 2026년, 종이에 목판, 56.3x45.7cm
세 점 가운데 가장 큰 화면이고, 재료가 '종이에 목판'으로 표기된 유일한 작품입니다. 제목이 강의 이름입니다.

- 2026년 · 56.3x45.7cm · 종이에 목판 · ₩900,000
- 작품 페이지 →
세 점 모두 박수근미술상을 받은 해의 작업입니다. 손기환 작가 페이지에서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미술사에서의 자리
손기환의 자리는 매체의 계보와 주제의 계보가 만나는 지점에 있습니다.
매체 쪽에서 그는 목판화가입니다. 작품이 영국 대영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한국 현대 판화의 지형을 함께 읽으면, 목판화가 한국 현대미술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왔는지 그리고 손기환의 화면이 그 안에서 어디에 놓이는지가 보입니다.
주제 쪽에서 그는 분단 작가입니다. 다만 분단을 다루는 관습적 어법 — 비장하고 어두운 화면 — 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노란색과 원색, 만화적 이미지, 팝아트의 문법으로 이산가족과 현대사의 상처를 다뤘습니다. '아직도 똑같은 거 그리고 있냐'는 말을 들으면서도 45년을 그렇게 그렸습니다.
2026년 박수근미술상은 그 45년에 대한 평가입니다. 박수근은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을 두껍고 거친 화면에 담아온 화가이고, 그 이름을 딴 상이 분단을 만화의 언어로 새겨온 판화가에게 갔습니다. 손기환 본인이 "나의 화업이 박 화백의 정신을 잘 담아내고 있는가에 대한 부담이 없잖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손기환이 씨앗페에 세 점을 낸 이유는 자신의 사정 때문이 아닙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45년 작가 인생에서 제대로 주목받아 본 건 처음"이라고 말한 작가가, 주목받은 그해에 동료를 위해 작품을 내놓았습니다. 오래 주목받지 못한 시간을 통과해본 사람이 지금 그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동료 쪽에 서는 일입니다.
손기환을 처음 만나는 분이라면 순서를 이렇게 잡아보시길 권합니다. 먼저 "분단이 남긴 상흔을 자꾸만 이야기하는 것, 그건 내 존재 방식"이라는 문장을 기억하십시오. 다음으로 그가 노란 물감을 가장 많이 쓴다는 사실과, 그 이유가 고전 만화라는 사실을 나란히 놓으십시오. 그 뒤에 〈홍길동〉 두 점과 〈한강〉의 제목을 보시면 됩니다. 이야기 속 인물의 이름과 강의 이름이 같은 작가의 목록에 나란히 있다는 것 자체가, 이 화가가 무거운 것을 어떤 문으로 통과시키는지를 알려줍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함께 읽으면 좋은 글들을 소개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손기환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2026년 기준 만 70세의 판화가입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분단과 이산가족, 한반도 현대사의 상처를 목판화와 팝아트 회화, 만화적 이미지 언어로 다뤄왔습니다. (경남 창원에서 활동하는 동명의 사진작가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Q. 박수근미술상은 언제 받았나요? A. 2026년 제11회 박수근미술상을 받았습니다. 시상식은 2026년 5월 28일 강원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 야외행사장에서 열렸고, 부상은 창작지원금 3,000만 원과 박수근 화백의 유화 '아기 보는 소녀'를 조각으로 제작한 상패였습니다.
Q. 작품은 어디에 소장되어 있나요? A. 목판화가 영국 대영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Q. 왜 만화적 이미지를 쓰나요? A. 작가 본인의 설명이 있습니다. "채도, 명도가 떨어지는 걸 좋아하지 않아 노란 물감을 가장 많이 쓴다", "원색이 주로 쓰이던 고전 만화를 즐겨 본 영향이 있다"(동아일보, 2026년 5월 13일). 분단이라는 주제를 어두운 화면 대신 원색과 대중 이미지의 문법으로 다루는 방식입니다.
Q. 1985년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A. 작가는 2026년 인터뷰에서 "1985년 공수부대원의 훈련 장면을 그린 '타타타타!!'가 경찰에 압수돼 뉴스에 난 뒤로 세간의 관심은 처음"이라고 밝혔습니다(동아일보, 2026년 5월 13일).
Q. 최근 개인전은? A. 2026년 5월 23일부터 6월 13일까지 헬로우뮤지움에서 《판도라의 상자 : 같은 달을 보고 있을까》를 열었습니다.
Q. 손기환 작품 가격대는? A. 씨앗페에 나온 세 점은 모두 ₩900,000입니다. 〈홍길동1〉·〈홍길동2〉가 45.9x45.9cm 정사각형, 〈한강〉이 56.3x45.7cm입니다.
Q. 손기환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손기환은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씨앗페에 참여했습니다.
Q. 씨앗페에 나온 손기환 작품은 몇 점인가요? A. 〈홍길동1〉(Relief, Woodcut, 45.9x45.9cm), 〈홍길동2〉(Relief, Woodcut, 45.9x45.9cm), 〈한강〉(종이에 목판, 56.3x45.7cm) 세 점이며 모두 2026년작입니다. 작가 페이지에서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관련 매거진
씨앗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