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서학동예술마을에서 철판을 부식시켜 꽃을 피우는 한 숙. 동학농민군의 죽음을 소재로 삼은 개인전 《개남, 오늘 꽃으로 피어나다》와 씨앗페 출품작을 통해 그의 작업을 읽습니다.
한 숙 — 철이 삭아 꽃이 되는 자리, 동학의 넋을 불러 세우다

흰 저고리와 바지를 입은 사람이 등을 보이며 걷습니다. 머리에는 두건을 둘렀고, 두 손과 두 발은 녹슨 쇳빛 그대로 남았습니다. 옆으로 나란히 놓인 다음 조각에서는 같은 사람이 앞으로 고꾸라지듯 기울어, 몸의 절반이 청록빛 둥근 형체 속으로 스며듭니다. 세 번째 조각에는 사람의 형상이 완전히 사라지고, 녹슨 갈색 테두리 안에 청록빛 얼룩이 가득한 둥근 판만 남습니다. 걷던 사람이 스러지고, 스러진 자리에 꽃이 남는 순서입니다. 한 숙이 씨앗페에 낸 〈오늘 꽃으로 피어나다〉 3점입니다.
서학동예술마을에서 철을 삭히는 사람
한 숙은 전주 서학동예술마을을 중심으로 작업합니다. 지금까지 열 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전북민족미술인협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가 다루는 재료는 철판입니다. 캔버스에 붓을 대는 대신, 철판을 부식시키고 그 위에 채색하기를 거듭해 꽃의 형상을 만들어냅니다.
부식은 시간이 만드는 작업입니다. 철이 공기와 물을 만나 서서히 삭아가는 과정을 작가는 되돌리지 않고 그대로 끌어안습니다. 녹이 앉은 자리마다 색이 다르고 결이 다릅니다. 그 위에 채색을 더해 완성한 형상이 꽃입니다. 철이 삭는 시간과 꽃이 피는 시간을 나란히 놓는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학에 기대어
최근 서너 해 동안 한 숙은 동학에 기대어 작업해왔습니다. 우금치와 장흥, 구미란 — 동학농민운동의 격전지였던 지명들이 그의 근작에 반복해 등장합니다. 죽창과 곡괭이를 든 형상들을 철판 위에 사발통문처럼 둥글게 배치하고, 한지와 지푸라기로 엮은 우지게를 곁에 놓기도 합니다.
이 작업이 향하는 자리를 작가는 직접 밝혀 두었습니다.
"동학농민군이 학살의 총칼 앞에서 도망치지 않았던 이유는 다시는 그런 삶으로 돌아갈 수 없어서였다. 내가 그들을 알아보고 알아줬을 때 그 당시 그 죽음, 어느 골짜기 들판에서 콧노래가 들린다,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 전북도민일보, 2026년 5월 31일
죽음을 슬픔으로만 남겨두지 않으려는 태도입니다. 학살 앞에서 도망치지 않았던 이유를 먼저 알아보고, 알아본 뒤에야 그 죽음이 콧노래로, 꽃으로 옮겨간다고 말합니다. 순서가 있는 문장입니다. 알아주는 일이 먼저이고, 피어나는 일은 그다음입니다.
무대 위의 소품으로
2025년 12월 31일,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에서 무용극 '개남 우지게에 가려진 세상을 다시 열다'가 무대에 올랐습니다. 파사무용단이 공연했고, 황미숙 감독이 연출했습니다. 한 숙은 이 공연의 소품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한지와 지푸라기로 엮은 우지게가 그가 만든 소품 가운데 하나로, 무대 위에 실제로 올랐습니다.
짊어지는 도구가 무대 소품이 되고, 다시 철판 위의 형상 곁에 놓이는 작업 재료가 되는 순환입니다. 전시장 밖의 무대에서 시작된 이 소품이, 이듬해 개인전의 작품 곁으로 되돌아온 셈입니다.
개인전 《개남, 오늘 꽃으로 피어나다》
2026년 5월 22일부터 6월 3일까지, 전주 우진문화공간 1층 갤러리에서 한 숙의 개인전 《개남, 오늘 꽃으로 피어나다》가 열렸습니다. 전시 제목의 '개남'은 동학농민군 지도자 김개남을 가리킵니다. 역사 속에서 상대적으로 덜 호명돼 온 인물을 작품으로 불러 세우는 자리였습니다.
전시는 전북 지역 여러 매체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전북도민일보·전북일보·전라일보·전민일보·전북매일신문·새전북신문이 각각 전시 소식을 전했습니다.
전라일보는 이렇게 전했습니다.
"동학농민군의 고통과 희망을 꽃의 형상으로 풀어낸 한숙 작가의 개인전이 전주에서 열린다." — 전라일보, 2026년 5월 25일
같은 매체는 이 전시가 "최근 몇년 간 이어온 동학 관련 작업과 철판 위에 부식과 채색을 반복해 완성한 설치 작품들을 선보이는 자리"라고 덧붙였습니다. 전북매일신문 역시 "부식과 채색이 반복된 철판 위에 형상화된 꽃"과 "최근 3~4년간 진행했던 동학 관련 작업들"을 나란히 짚었습니다. 전민일보는 이 작업들을 두고 "역사 속 민중의 기억과 감정"을 다룬다고 전했습니다. 부식이라는 기법과 동학이라는 소재가 이 개인전에서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진문화공간이 공개한 작가노트에는 다음 문장이 있습니다.
"부드러운 콧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오늘 꽃으로 피어나 이마와 발끝에 부는 아린 바람결에 춤을 춘다." — 한 숙, 우진문화공간 작가노트, 2026년 5월
전시 제목과 씨앗페 출품작 제목이 같은 문장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이 노트로 확인됩니다. 새전북신문은 "작가는 10회의 개인전을 가졌다"고 전하며, 그를 전북민족미술인협회 회장으로 소개했습니다.
지역에서 오래 쌓아온 자리
전주의 소규모 갤러리에서 연 개인전 하나에 여섯 개 지역지가 각각 취재를 붙인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 열 번째 개인전이라는 이력, 서학동예술마을이라는 활동 거점, 전북민족미술인협회라는 소속이 겹쳐, 한 숙이 전주 지역 미술 현장 안에서 오래 자리를 쌓아온 작가라는 사실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 자리를 확인하는 작업의 방식도 한결같습니다. 마을 이름 대신 역사적 사건과 인물의 이름을 화면에 끌어들이고, 그 이름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서 전시를 엽니다. 우금치와 장흥, 구미란은 지도 위의 지명이자 동학농민운동의 전적지입니다. 동학농민군 지도자 김개남의 이름을 전시 제목에 그대로 올린 것도 같은 방식입니다. 역사 속 사건과 인물을, 그 일이 벌어졌던 땅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시의 전시장으로 불러들이는 작업입니다.
씨앗페 출품작 — 〈오늘 꽃으로 피어나다〉 3점
씨앗페에 들어온 한 숙의 작품은 〈오늘 꽃으로 피어나다〉 3점입니다. 각 30x23cm 크기의 철판 부식 채색 작업으로, 가격은 한 점당 매겨져 있습니다.

세 조각을 나란히 걸면 하나의 흐름이 보입니다. 첫 조각은 흰 옷을 입고 두건을 쓴 사람이 등을 보이며 걷는 모습입니다. 두 손과 신발은 녹슨 갈색 쇠 그대로 남겨 두었고, 옷자락만 흰빛으로 칠했습니다. 걸음을 옮기는 다리와 두 팔의 균형이 그대로 살아 있어, 살아 움직이는 사람의 뒷모습으로 읽힙니다.
두 번째 조각에서 그 사람은 앞으로 고꾸라지듯 기울어 있습니다. 머리와 상체는 여전히 사람의 윤곽을 하고 있지만, 몸의 절반이 청록빛으로 얼룩진 둥근 형체 속으로 밀려 들어갑니다. 달팽이가 몸을 접은 모습과도 닮아 있어, 사람이 스스로의 껍데기 속으로 되돌아가는 순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 조각에는 사람의 형상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녹슨 갈색 테두리가 둥근 판을 감싸고, 그 안을 청록빛과 흙빛이 뒤섞인 얼룩이 채웁니다. 테두리 양옆으로 뻗은 두 갈래의 녹슨 돌기만이, 앞선 두 조각에서 사람의 팔다리였던 자리를 짐작하게 합니다. 부식이 만든 질감이 도판 위에 그대로 드러나, 표면 전체가 오돌토돌한 마티에르로 덮여 있습니다.
걷던 사람에서 스러지는 사람으로, 스러지는 사람에서 사람의 흔적만 남은 둥근 꽃으로. 세 조각을 하나의 순서로 읽으면, 개인전 제목이자 작가노트의 문장인 "오늘 꽃으로 피어나다"가 그대로 형상이 됩니다.
- 각 30x23cm · 철판 부식 채색 · 각 ₩200,000
- 작품 페이지 →
[한 숙 작가 페이지](/artworks/artist/한 숙)에서 세 조각을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한 숙이 씨앗페에 작품을 낸 이유는 자신의 사정 때문이 아닙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한 숙은 그 구조에 작품으로 참여했습니다.
동학농민군의 죽음을 알아보고 꽃으로 돌려보내는 작업을 해온 작가가, 동료 예술인을 위해 작품을 내놓는 일 또한 같은 태도의 연장으로 보입니다. 밀려난 이들을 알아보는 일이 먼저이고, 그 뒤에야 다른 무언가가 피어난다는 순서가 여기에도 있습니다.
[한 숙 작가 페이지에서 작품 보기 →](/artworks/artist/한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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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한 숙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전주 서학동예술마을을 중심으로 작업하는 작가로, 철판을 부식시키고 채색해 꽃의 형상을 만드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지금까지 열 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전북민족미술인협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최근에는 어떤 작업을 하나요? A. 최근 3~4년간 동학농민운동을 소재로 삼은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우금치·장흥·구미란 등 격전지의 이름을 빌려, 죽창과 곡괭이를 든 농민군의 형상을 철판 위에 새기고 그 곁에 한지와 지푸라기로 엮은 우지게를 놓기도 합니다.
Q. 개인전 《개남, 오늘 꽃으로 피어나다》는 어떤 전시였나요? A. 2026년 5월 22일부터 6월 3일까지 전주 우진문화공간 1층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입니다. 제목의 '개남'은 동학농민군 지도자 김개남을 가리킵니다. 전북도민일보·전북일보·전라일보·전민일보·전북매일신문·새전북신문이 전시를 다뤘습니다.
Q. 무용 공연과도 연결점이 있다고요? A. 2025년 12월 31일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에서 열린 파사무용단의 무용극 '개남 우지게에 가려진 세상을 다시 열다'(황미숙 감독)에 소품 제작으로 참여했습니다. 한지와 지푸라기로 엮은 우지게가 그 무대에 올랐습니다.
Q. 씨앗페에 나온 한 숙 작품은 무엇인가요? A. 〈오늘 꽃으로 피어나다〉 3점입니다. 각 30x23cm, 철판 부식 채색이며 가격은 한 점당 매겨져 있습니다. 흰 옷을 입고 걷는 사람에서 청록빛 둥근 형체로 이어지는 세 조각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Q. 한 숙 작품 가격은? A. 〈오늘 꽃으로 피어나다〉는 한 점당 ₩200,000입니다.
Q. 한 숙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한 숙은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씨앗페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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