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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웅 — 칼로 새기고 붓으로 쓰다, 『한국근대판화사』를 쓴 목판화가

작가를 만나다 · 발행 2026년 9월 17일 · 씨앗페

1980년대 민중미술운동의 한복판에 있던 목판화가이자, 2014년 국내 최초로 근대판화를 집대성한 『한국근대판화사』의 저자 홍선웅. 새기는 일과 쓰는 일을 함께해 온 40여 년을 따라 읽습니다.

홍선웅 — 칼로 새기고 붓으로 쓰다, 『한국근대판화사』를 쓴 목판화가

홍선웅, 〈대평포구〉, 목판 다색, 79x51.5cm — 김포 문수산판화공방에서 작업해 온 목판화가의 근작
홍선웅, 〈대평포구〉, 목판 다색, 79x51.5cm — 김포 문수산판화공방에서 작업해 온 목판화가의 근작

한 작가의 이력에 저서가 두 권 있고, 그 두 권이 모두 판화에 관한 책이며, 그중 하나가 국내 최초로 근대판화를 집대성한 통사라면 — 그 사람을 작가로만 부르는 것은 절반의 호칭입니다.

홍선웅은 목판화가입니다. 동시에 『한국근대판화사』(미술문화, 2014)의 저자입니다. 칼로 나무를 파는 일과 그 일의 역사를 문장으로 정리하는 일을 한 사람이 함께 해왔습니다. 이 글은 그 두 가지가 어떻게 한 삶 안에서 이어졌는지를 따라갑니다.

씨앗페에 들어온 그의 작품은 다섯 점입니다. 목판 다색 두 점과 종이 위의 드로잉 계열 세 점. 판화가의 판과 붓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진도에서 중앙대로, 그리고 민중미술의 한복판

홍선웅은 1952년 전라남도 진도에서 태어났습니다. 1979년 중앙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고, 전공은 서양화였습니다.

목판화가의 출발점이 서양화였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한국 판화사의 한 국면을 보여줍니다. 판화를 처음부터 전공으로 삼을 수 있는 교육 경로가 넓지 않던 시절, 많은 판화가가 회화에서 건너왔습니다.

1980년대 그의 자리는 민중미술운동의 중심이었습니다. 목판화가로 작업하면서 민족미술인협회 창립에 참여했고 사무국장을 지냈습니다. 이후에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곧 민예총의 국제국장과 대변인을 맡았습니다.

이 이력을 한 번 뜯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무국장, 국제국장, 대변인 — 전부 조직의 실무와 바깥을 향한 말을 맡는 자리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이런 자리를 연이어 맡는다는 것은, 작업 시간의 상당 부분을 조직에 내어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1980년대 미술 운동이 개인 작업실이 아니라 회의실과 성명서에서도 굴러갔다는 사실이 여기 들어 있습니다.

전환 — 1992년, 김포 보구곶리

1992년, 홍선웅은 건강상의 이유로 문예조직활동에서 물러납니다. 그리고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에 문수산판화공방을 열고 정착합니다.

그가 그곳에서 시작한 일은 판화를 찍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근대판화 자료를 연구하고 수집하는 일에 매진했습니다.

조직 활동에서 물러난 사람이 자료 수집으로 옮겨간다는 것은 얼핏 후퇴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때 시작된 수집이 22년 뒤 국내 최초의 근대판화 통사로 묶였고, 30년 뒤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 자료가 됐기 때문입니다.

두 권의 책 — 새기는 일을 문장으로

홍선웅의 저서는 두 권입니다. 둘 다 미술문화에서 나왔습니다.

『홍선웅의 판각기행』(미술문화, 2001). 같은 해 그는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같은 제목의 개인전 《홍선웅의 판각기행》을 열었습니다. 전시와 책이 한 몸으로 나온 셈입니다. '판각기행'이라는 제목은 판을 새기는 일과 다니는 일을 한 단어로 붙여놓았습니다.

『한국근대판화사』(미술문화, 2014). 국내 최초로 근대판화를 전문적으로 집대성한 저서입니다. 그가 김포에서 22년간 모으고 읽은 것의 결산입니다.

이 책이 무엇을 다루는지는 그의 말에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근대판화는 일제 야욕을 비판·풍자할 때 사용되는 등 민족 자주적 의식과 저항정신을 깨우는 수단이었다." — 경인일보, 2021년 6월 27일

그리고 그는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 들었습니다.

"종합잡지 '조선지광'(1922) 창간호 표지에 실린 오일영의 목판화 〈백두산〉은 우리 언어를 못 쓰게 하던 시대에 두터운 각선으로 힘찬 기운을 느끼게 하는 백두산 천지를 떡 하니 새겨넣었는데 '조선 민중이여 독립의지를 잊지 말자'는 메시지가 읽힌다. 이때도 이미 민중판화가 있었던 것." — 경인일보, 2021년 6월 27일

이 한 문단 안에 그가 평생 해온 두 가지 일이 겹쳐 있습니다. 1922년 잡지 표지의 각선을 보고 새김의 두께를 읽어내는 것은 판화가의 눈입니다. 그 두께에서 시대의 메시지를 읽어 '이때도 이미 민중판화가 있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사가(史家)의 판단입니다. 1980년대의 민중판화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훨씬 앞선 계보를 갖는다는 주장이, 자기 작업의 뿌리를 스스로 파낸 결과로 나왔습니다.

700여 점을 내놓다 — 2020~2021년의 기증

2020년부터 2021년까지, 홍선웅은 평생 수집한 근현대판화·민중미술 관련 자료 700여 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습니다. 간행물과 전시인쇄물 같은 현물 자료입니다. 함께 자신의 판화 작품 41점도 기증했습니다.

왜 현물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슬라이드라든지 사진상 자료로는 역사를 더듬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기증한 현물자료들은 한국 판화사의 실제적인 사료가 될 것." — 경인일보, 2021년 6월 27일

판화가다운 말입니다. 판화는 종이와 잉크와 압력으로 이뤄진 물건이고, 그 물성은 사진으로 옮겨지지 않습니다. 각선의 깊이를 보려면 실물이 있어야 합니다.

다만 그 결정이 홀가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김포에서 여생을 보내는데 아카이브를 김포에 보관하지 못하고 국립미술관으로 보내야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 경인일보, 2021년 6월 27일

그리고 그 아쉬움은 곧바로 제안으로 이어집니다.

"지방자치의 발전으로 이제 미술도 중앙 중심에서 지역으로 분산이 뚜렷해지는 상황에서 김포 미술인들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시립미술관이 하루빨리 건립됐으면 좋겠다." — 경인일보, 2021년 6월 27일

자기 자료를 중앙으로 보내면서 지역 미술관의 필요를 말하는 순서가 인상적입니다. 아쉬움을 아쉬움으로 두지 않고 다음 사람을 위한 요구로 바꿔놓았습니다.

지금의 자리 — 인천, 김포, 그리고 유럽

홍선웅은 인천에 정착해 오래 살았습니다. 2023년 한 인터뷰 기사는 "인천문화재단 이사이기도 한 그는 35년 동안 인천에서 살고 있다"고 전합니다. 공방은 김포, 생활과 공적 활동은 인천. 한강 하구를 사이에 둔 두 도시가 그의 반경입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일민미술관, 그리고 독일 퀼른의 안파리나화랑에 소장돼 있습니다.

최근 몇 해의 활동은 국경 바깥으로 이어집니다. 2022년에는 김포아트빌리지 아트센터와 주프랑스한국문화원이 공동 주최한 한국·프랑스 현대목판화전 〈결의 만남〉에 참여했습니다. 2023년에는 독일 국제목판화협회 싸일론(XYLON)의 창립 70주년 기념전 〈오늘의 목판화-70년의 싸일론〉에 한국인 최초로 초청됐습니다. 독일 로이틸링엔 쿤스트미술관 등에서 열린 전시입니다.

한국인 최초 초청에 대한 그의 소감은 짧았습니다.

"이번 경험이 나에게는 영광." — 울산제일일보, 2023년 12월 3일

그리고 그 영광을 개인의 것으로 두지 않았습니다.

"창작 활동의 외연을 넓히고 목판화의 역사를 계승하는 계기가 될 것." — 울산제일일보, 2023년 12월 3일

'목판화의 역사를 계승한다'는 말이 다시 나옵니다. 『한국근대판화사』를 쓴 사람의 어휘가 70주년 기념전 소감에도 그대로 있습니다.

씨앗페 출품작 다섯 점 읽기

씨앗페에 들어온 홍선웅의 작품은 다섯 점입니다. 목판 다색 두 점과 종이에 오일파스텔·연필·수채를 쓴 작업들이 섞여 있어, 판화가의 판과 그 판 바깥의 손을 함께 볼 수 있는 구성입니다. 다섯 점 가운데 세 점은 이미 새 주인을 찾았습니다.

〈대평포구〉 — 2022년, 목판 다색, 79x51.5cm

다섯 점 가운데 가장 큰 화면이고, 목판 다색 작업입니다. 다색 목판화는 색의 수만큼 판을 따로 새기고 순서대로 찍어야 하는 방식이라, 한 장이 나오기까지의 공정이 길어집니다. 제목은 포구의 이름입니다.

홍선웅, 〈대평포구〉, 목판 다색, 79x51.5cm, ₩2,500,000
홍선웅, 〈대평포구〉, 목판 다색, 79x51.5cm, ₩2,500,000

〈선암사의 봄〉 — 2023년, 목판 다색(유성+수성), 60x45cm

다섯 점 중 가장 최근작입니다. 매체 표기에 '유성+수성'이 함께 적혀 있는 점이 눈에 띕니다. 성질이 다른 두 계열의 잉크를 한 화면에 쓰는 작업으로, 판화의 재료를 오래 다뤄온 사람의 선택입니다.

홍선웅, 〈선암사의 봄〉, 목판 다색(유성+수성), 60x45cm, ₩2,000,000
홍선웅, 〈선암사의 봄〉, 목판 다색(유성+수성), 60x45cm, ₩2,000,000

〈문수산성의 봄〉 — 종이에 오일파스텔 연필 수채, 29x39cm

제목의 문수산은 그의 공방 이름과 같은 이름입니다. 1992년 김포 월곶면에 문수산판화공방을 열고 정착한 작가가, 그 산의 이름을 작품 제목에 올렸습니다. 판이 아니라 종이 위에 직접 그린 작업입니다. 판매 완료.

홍선웅, 〈문수산성의 봄〉, 종이에 오일파스텔 연필 수채, 29x39cm
홍선웅, 〈문수산성의 봄〉, 종이에 오일파스텔 연필 수채, 29x39cm

〈봄의 향기〉 — 종이에 오일파스텔 연필 수채, 39x29cm

앞의 작품과 같은 재료, 같은 치수를 세로로 세운 화면입니다. 판매 완료.

홍선웅, 〈봄의 향기〉, 종이에 오일파스텔 연필 수채, 39x29cm
홍선웅, 〈봄의 향기〉, 종이에 오일파스텔 연필 수채, 39x29cm

〈창덕궁 자시문〉 — 39x29cm

제목이 궁의 문 이름입니다. 『홍선웅의 판각기행』이라는 책과 전시 제목이 다니는 일을 새김과 붙여놓았던 것을 떠올리면, 장소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는 방식은 이 작가에게 오래된 습관으로 보입니다. 판매 완료.

홍선웅, 〈창덕궁 자시문〉, 39x29cm
홍선웅, 〈창덕궁 자시문〉, 39x29cm

다섯 점을 함께 보시려면 홍선웅 작가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미술사에서의 자리

홍선웅의 자리는 두 겹입니다.

첫째, 1980년대 민중미술운동의 목판화가입니다. 민족미술인협회 창립에 참여해 사무국장을 지냈고, 민예총의 국제국장과 대변인을 역임했습니다. 작품을 만드는 동시에 그 운동의 조직과 대외 창구를 맡았습니다.

둘째, 그 시기의 역사를 쓴 사람입니다. 2014년 『한국근대판화사』(미술문화)는 국내 최초로 근대판화를 전문적으로 집대성한 저서로 기록됩니다. 미술사가 아니라 작가가 그 통사를 썼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판을 새겨본 사람만 알아볼 수 있는 것이 판화에는 있고, 그의 문장은 그 자리에서 나옵니다. 1922년 〈백두산〉의 '두터운 각선'을 근거로 삼는 방식이 그 예입니다.

셋째 자리를 덧붙이자면 아카이브입니다. 2020~2021년 국립현대미술관에 700여 점의 현물 자료와 판화 41점을 기증하면서, 그는 자기 서고를 공공의 사료로 바꿔놓았습니다. 한국 판화사를 연구하려는 다음 사람들이 김포의 개인 공방이 아니라 미술관에서 자료를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작가·사가·기증자. 이 셋이 한 사람 안에 있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한국 현대 판화의 지형을 살필 때 그의 이름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홍선웅이 씨앗페에 다섯 점을 낸 이유는 자신의 사정 때문이 아닙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홍선웅은 그 구조에 작품으로 참여했습니다.

평생 모은 자료 700여 점을 미술관에 내놓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함께 놓으면, 이 참여는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가 쥐고 있는 것을 다음 사람이 쓸 수 있는 자리로 옮기는 일을 이미 해봤습니다. 기증할 때 그가 한 말은 "한국 판화사의 실제적인 사료가 될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남기느냐가 아니라 그것이 누구에게 쓰이느냐를 기준으로 삼는 문장입니다.

홍선웅을 처음 만나는 분이라면 순서를 이렇게 잡아보시길 권합니다. 먼저 〈대평포구〉와 〈선암사의 봄〉을 나란히 보십시오. 다색 목판화가 어떤 공정을 거쳐 나오는 물건인지를 떠올리며 보시면, 이 작가가 40년 넘게 붙들어온 재료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다음으로 〈문수산성의 봄〉의 제목을 보십시오. 1992년 그가 정착한 자리의 이름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근대판화사』(미술문화, 2014)라는 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이 작가의 작품 한 점을 들인다는 것은, 자기 장르의 역사를 스스로 쓴 사람의 손을 들이는 일입니다.

홍선웅 작가 페이지에서 작품 다섯 점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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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홍선웅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1952년 전라남도 진도에서 태어난 목판화가입니다. 1979년 중앙대학교 회화과(서양화 전공)를 졸업했습니다. 1980년대 민중미술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하며 민족미술인협회 창립에 참여해 사무국장을 지냈고, 이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국제국장과 대변인을 역임했습니다.

Q. 『한국근대판화사』는 어떤 책인가요? A. 2014년 미술문화에서 펴낸 저서로, 국내 최초로 근대판화를 전문적으로 집대성한 책입니다. 홍선웅은 1992년 김포에 문수산판화공방을 열고 정착한 뒤 근대판화 자료 연구·수집에 매진했고, 그 축적이 이 책으로 묶였습니다. 또 다른 저서로 『홍선웅의 판각기행』(미술문화, 2001)이 있으며, 같은 해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같은 제목의 개인전 《홍선웅의 판각기행》을 열었습니다.

Q. 국립현대미술관 기증은 어떤 내용인가요? A. 2020년부터 2021년까지 평생 수집한 근현대판화·민중미술 관련 자료(간행물·전시인쇄물 등) 700여 점과 본인의 판화 작품 41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습니다. 본인은 "슬라이드라든지 사진상 자료로는 역사를 더듬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기증한 현물자료들은 한국 판화사의 실제적인 사료가 될 것"(경인일보, 2021년 6월 27일)이라고 밝혔습니다.

Q. 작품은 어디에 소장돼 있나요? A.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일민미술관, 독일 퀼른의 안파리나화랑에 소장돼 있습니다.

Q. 최근 활동은? A. 2022년 김포아트빌리지 아트센터와 주프랑스한국문화원이 공동 주최한 한국·프랑스 현대목판화전 〈결의 만남〉에 참여했고, 2023년에는 독일 국제목판화협회 싸일론(XYLON) 창립 70주년 기념전 〈오늘의 목판화-70년의 싸일론〉(독일 로이틸링엔 쿤스트미술관 등)에 한국인 최초로 초청됐습니다.

Q. 홍선웅 작품 가격대는? A. 씨앗페에 나온 다섯 점 가운데 판매 중인 것은 두 점입니다. 〈대평포구〉(2022, 목판 다색, 79x51.5cm)가 ₩2,500,000, 〈선암사의 봄〉(2023, 목판 다색, 60x45cm)이 ₩2,000,000입니다. 나머지 세 점(〈문수산성의 봄〉·〈봄의 향기〉·〈창덕궁 자시문〉)은 판매 완료됐습니다.

Q. 홍선웅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홍선웅은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씨앗페에 참여했습니다.

Q. 씨앗페에 나온 홍선웅 작품은 몇 점이고 어떤 것인가요? A. 〈대평포구〉(2022, 목판 다색, 79x51.5cm), 〈선암사의 봄〉(2023, 목판 다색(유성+수성), 60x45cm), 〈문수산성의 봄〉(종이에 오일파스텔 연필 수채, 29x39cm), 〈봄의 향기〉(종이에 오일파스텔 연필 수채, 39x29cm), 〈창덕궁 자시문〉(39x29cm) 다섯 점입니다. 작가 페이지에서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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