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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홍 — 잠든 거인의 살갗, 산하를 몸으로 그린 40년

작가를 만나다 · 발행 2026년 9월 17일 · 씨앗페

1958년 의정부에서 태어나 '거인의 잠'과 '대지' 연작으로 산하와 몸을 겹쳐 그려온 화가 김재홍. 홍익대 중퇴부터 분단과 평화의 화면까지, 한 화가의 40년과 씨앗페 출품작을 안내합니다.

김재홍 — 잠든 거인의 살갗, 산하를 몸으로 그린 40년

김재홍, 〈거인의 잠-220603〉, 캔버스에 유채, 80x53cm, 2022 — '거인의 잠' 연작의 근작
김재홍, 〈거인의 잠-220603〉, 캔버스에 유채, 80x53cm, 2022 — '거인의 잠' 연작의 근작

씨앗페에 들어온 김재홍의 작품은 한 점입니다. 〈거인의 잠-220603〉. 2022년, 캔버스에 유채, 80x53cm.

제목이 이 작가의 40년을 통째로 담고 있습니다. '거인의 잠'은 김재홍을 대표하는 연작의 이름이고, 뒤에 붙은 '220603'은 제작을 마친 날짜로 읽히는 여섯 자리입니다. 연작의 이름과 하루의 날짜가 한 제목에 붙어 있는 셈입니다.

이 연작은 이 땅의 산하를 잠든 거인의 형상으로 의인화해 그립니다. 풍경이면서 동시에 몸입니다. 화면 하나가 두 겹으로 읽히도록 짜인 구조이고, 그 이중구조가 40년 가까이 이 작가가 붙들어온 방법입니다.

학교를 그만둔 사람

김재홍은 1958년 경기도 의정부에서 태어났습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들어갔지만 3학년 재학 중 자퇴했습니다. 그의 약력에 '중퇴'가 적히는 이유입니다.

미술대학을 3학년에 그만두고 화가가 된다는 것은, 제도가 보증해주는 경로 바깥에서 출발한다는 뜻입니다. 1987년 서울 백송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엽니다. 1989년에는 그림마당 민과 한강미술관에서, 1991년에는 갤러리 인데코에서, 1994년에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가 이어집니다.

1993년, 그는 전업 작가로 전환합니다. 서른다섯 무렵의 일입니다.

작가 자신이 이 시기를 회고한 말이 남아 있습니다.

"격변의 시기에 현실에 참여하지도 못해 늘 사회에 빚진 마음이었죠... 저는 부끄럽게도 그렇지 못했죠. 나서지도 도망가지도 못한 채 구석진 작업실에서 작은 양심에 떠밀려 중얼중얼 궁시렁거리며 그 낯선 모습들을 끄적거릴 뿐이었죠" — 뉴시안

'나서지도 도망가지도 못한 채.' 1980년대를 통과한 화가가 자기 자리를 이렇게 말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광장에 섰다고 말하지도, 무관했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작업실에 남아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작업실에서 나온 것이 산하를 몸으로 그린 연작이었습니다.

1997년, 풍경과 몸이 겹치다

김재홍의 주제는 시기마다 옮겨갔습니다. 1993년까지는 사회와 정치의 문제를 다뤘고, 1994년부터 2000년까지는 역사와 환경으로 옮겼으며, 2001년 이후로는 분단과 핵, 평화를 그립니다.

그 중간에 방법의 전환이 있었습니다. 1997년 무렵부터 그는 풍경과 인체가 겹쳐 보이는 '몸풍경' 작업 계열로 넘어갑니다. 민중미술에서 출발한 화면이 환경과 자연 쪽으로 확산하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방법이 미술 바깥에서까지 알려진 계기가 1999년에 있었습니다. 그해 8월 27일부터 9월 12일까지 갤러리 사비나에서 개인전 《그림속의 숨은 그림》이 열립니다. 강원 영월 동강을 소재로 한 전시였고, 대표작 〈모자상〉은 화면을 90도로 돌리면 기도하는 어머니와 아이의 형상이 나타나는 구조였습니다. 이 작품은 뒷날 교과서에도 수록됩니다.

당시 작가의 말은 두 마디로 남아 있습니다.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는 생각을 담았다" — 동아일보, 1999년 8월 23일

"그림을 숨겼다" — 동아일보, 1999년 8월 23일

'그림을 숨겼다.' 화가가 자기 그림에 대해 할 수 있는 가장 짧은 설명이면서, 이 작업의 구조를 정확히 가리키는 말입니다. 보이는 것 안에 다른 것이 들어 있고, 보는 사람이 각도를 바꿔야 그것이 나타납니다.

같은 해 그는 미국 마이애미 아트페어에도 출품했습니다. 1998년 갤러리 사비나 개인전 《거인의 잠》이 그 직전 해의 일입니다. 연작의 이름이 전시 제목으로 처음 걸린 자리입니다.

작업의 문법 — 살갗을 만드는 재료

김재홍의 화면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재료입니다. 그는 캔버스에 모델링 페이스트와 질석을 섞어 살갗 같은 질감을 냅니다.

이것은 기법 이상의 문제입니다. 산하를 잠든 거인의 몸으로 그리겠다고 정한 순간, 화면의 표면은 풍경의 표면이면서 동시에 피부여야 합니다. 물감을 어떻게 칠하느냐가 아니라 표면을 어떤 물질로 만드느냐가 주제의 일부가 됩니다. 모델링 페이스트와 질석은 그 요구에 대한 대답입니다.

'대지' 연작도 같은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땅을 그리는 일과 몸을 그리는 일이 한 화면에서 분리되지 않는 구조입니다. 작가 자신은 이를 정치적 풍경이라 불렀습니다.

2004년 사비나미술관 개인전 《야만의 흔적》, 2006년 프랑스 라시오타의 La Chapelle des Penitents Bleus 개인전이 뒤를 잇습니다. 2009년에는 서울 코리아나미술관(스페이스씨)의 그룹전 《Ultra Skin》에 〈거인의 잠-길Ⅲ〉(333x162cm, 2004)을 출품했습니다. 3m가 넘는 가로 화면입니다. 전시 제목이 'Ultra Skin'이었다는 것도 이 작업이 피부라는 주제 안에서 읽혔음을 보여줍니다.

작업 바깥의 자리에서도 이 화가는 상을 받았습니다. 2004년 그림책 《동강의 아이들》로 스위스 에스파스 앙팡상을, 2006년 《고양이 학교》 삽화로 프랑스 앵코륍티블상을, 2007년 《영이의 비닐우산》으로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BIB) 어린이 심사위원상을 받았습니다. 어린이 책의 그림으로 세 나라에서 상을 받은 화가입니다.

동강을 그린 화가가 《동강의 아이들》로 상을 받았다는 순서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1999년의 동강 작업과 2004년의 그림책이 같은 강을 사이에 두고 이어집니다.

2001년 이후 — 분단과 평화

2001년 이후 김재홍의 주제는 분단과 핵, 평화로 옮겨갑니다.

2018년 2월 21일부터 3월 13일까지 서울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개인전 《살(생·사·육)》이 열렸고, 2021년에는 같은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2023년에는 정전 70주년을 기념한 한독작가교류전 《Utopia?!Peace》에 참여합니다. 독일 포츠담 쿤스트라움과 바벨스베르크궁전, 베를린장벽기념관에서 열린 전시였습니다.

장벽이 무너진 도시에서 아직 정전 상태인 나라의 화가가 전시를 여는 일. 2024년 3월 20일부터 4월 13일까지 서울 인사동 관훈갤러리와 나무아트에서 열린 그룹전 《제2회 무장지대》도 같은 주제였습니다. 분단 현실을 다룬 17인전이었습니다.

그리고 2026년, 경기 해움미술관에서 4월 30일부터 7월 30일까지 류연복과 함께 2인전 《보편적 실재를 향한 예술의 역주》가 열렸습니다. 이 전시를 두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종전이 아닌 정전 상태인데도 분단을 너무 당연한 환경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 경기일보, 2026년 7월 28일

"미래 세대가 전쟁 없는 곳에서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예술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 경기일보, 2026년 7월 28일

'너무 당연한 환경처럼.' 분단을 사건이 아니라 배경으로 받아들이게 된 상태를 지적하는 말입니다. 산하를 잠든 거인의 몸으로 그리는 방법이 왜 필요했는지도 여기서 설명됩니다. 매일 보는 풍경 안에 다른 것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화면의 구조로 만들어 보여주는 일이니까요.

2025년에는 서울 두나무 아트큐브에서 개인전 《FLOWER AND CANDIES(꽃과 캔디들)》를 열었습니다. 그 무렵의 인터뷰에 이 작가의 태도가 요약돼 있습니다.

"저는 늘 평등한 세상을 꿈꿉니다. '자연과 인간은 하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작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저의 예술 활동이 사회에 기여하고, 영향을 준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 없습니다. 다만 우리 사회의 모습은 저에게 많은 영감과 소재를 주고 있어 감사할 뿐입니다" — 뉴시안

1999년에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는 생각을 담았다"고 말한 화가가 20여 년 뒤에 같은 말을 합니다. 그 사이에 주제는 환경에서 분단으로 옮겨갔지만 전제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씨앗페 출품작 읽기

〈거인의 잠-220603〉 — 2022년, 캔버스에 유채, 80x53cm

씨앗페에 들어온 김재홍의 작품은 이 한 점입니다. 40년 가까이 이어온 대표 연작의 이름을 그대로 단 근작이고, 가격은 ₩7,500,000입니다.

한 점만 나온 작가의 작품을 고르는 일은 여러 점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일과 다릅니다. 이 작가를 들이기로 했다면 선택지가 이것 하나이고, 대신 그 한 점이 연작의 정본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앞에서 읽은 이중구조 — 풍경이면서 몸인 화면, 모델링 페이스트와 질석으로 만든 살갗 같은 표면 — 를 실물로 확인할 수 있는 크기입니다.

김재홍, 〈거인의 잠-220603〉, 캔버스에 유채, 80x53cm, ₩7,500,000
김재홍, 〈거인의 잠-220603〉, 캔버스에 유채, 80x53cm, ₩7,500,000

김재홍 작가 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미술사에서의 자리

김재홍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과 부산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경기문화재단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2019년 무렵 국립현대미술관(과천)의 《광장》전에도 참여했습니다.

그의 자리를 읽는 데는 두 개의 축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방법의 축입니다. 1997년 이후 그가 구축한 '몸풍경'은 한국 현대회화에서 드문 구조를 갖습니다. 풍경화도 인물화도 아니면서 둘 다인 화면,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그림이 나타나는 구성. 1999년 《그림속의 숨은 그림》전의 〈모자상〉이 교과서에 수록된 것은 이 구조가 설명 없이도 전달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주제의 축입니다. 1993년까지 사회와 정치, 2000년까지 역사와 환경, 2001년 이후 분단과 핵과 평화. 세 구간을 지나오면서 그림의 소재는 계속 바뀌었지만 방법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이중구조입니다. 사회를 그릴 때도, 동강을 그릴 때도, 분단을 그릴 때도 그는 하나의 화면에 두 개의 상을 겹쳐 놓았습니다.

민중미술의 흐름 전반에서 김재홍을 읽을 때 눈여겨볼 지점은 그 겹침의 성격입니다. 구호를 화면에 직접 쓰는 대신 풍경 안에 몸을 숨겨두는 방식은, 관객이 스스로 각도를 바꿀 때에만 완성됩니다. "그림을 숨겼다"는 한마디가 그 방법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김재홍이 씨앗페에 작품을 낸 이유는 자신의 사정 때문이 아닙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저의 예술 활동이 사회에 기여하고, 영향을 준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 없습니다"라고 말한 화가가 동료를 위해 작품을 내놓았습니다. 기여를 말하지 않는 사람이 실제로는 기여하는 자리에 서는 방식이 이 작가답습니다.

김재홍을 처음 만나는 분이라면 순서를 이렇게 잡아보시길 권합니다. 먼저 '거인의 잠'이라는 제목을 문자 그대로 읽으십시오. 산하가 잠든 거인이라면, 그 거인은 언젠가 깨어나는 존재입니다. 다음으로 화면의 표면을 보십시오. 모델링 페이스트와 질석으로 만든 질감이 왜 필요했는지가 제목과 붙습니다. 마지막으로 "종전이 아닌 정전 상태인데도 분단을 너무 당연한 환경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는 2026년의 말을 다시 읽으시면 됩니다. 잠든 거인은 그 문장의 다른 표현입니다.

김재홍 작가 페이지에서 작품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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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김재홍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1958년 경기도 의정부에서 태어난 화가입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3학년 재학 중 자퇴했고, 1987년 백송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연 뒤 1993년 전업 작가로 전환했습니다. 이 땅의 산하를 잠든 거인의 형상으로 그린 '거인의 잠' 연작과 '대지' 연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Q. '거인의 잠'은 어떤 작업인가요? A. 산하를 잠든 거인의 몸으로 의인화해 풍경과 인체를 이중구조로 겹쳐 그리는 연작입니다. 캔버스에 모델링 페이스트와 질석을 섞어 살갗 같은 질감을 냅니다. 1998년 갤러리 사비나 개인전 《거인의 잠》이 연작의 이름을 전시 제목으로 건 자리입니다.

Q. '몸풍경'은 무엇인가요? A. 1997년 무렵부터 그가 구축해온 작업 계열로, 풍경과 인체가 겹쳐 보이는 화면을 말합니다. 1999년 갤러리 사비나 개인전 《그림속의 숨은 그림》의 대표작 〈모자상〉은 화면을 90도로 돌리면 기도하는 어머니와 아이의 형상이 나타나는 구조였고, 뒷날 교과서에도 수록됐습니다.

Q. 주제가 바뀌어왔다고 들었습니다. A. 1993년까지는 사회와 정치의 문제를, 1994년부터 2000년까지는 역사와 환경을, 2001년 이후로는 분단과 핵, 평화를 다룹니다.

Q. 어린이책 작업으로도 상을 받았다던데요? A. 2004년 그림책 《동강의 아이들》로 스위스 에스파스 앙팡상, 2006년 《고양이 학교》 삽화로 프랑스 앵코륍티블상, 2007년 《영이의 비닐우산》으로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BIB) 어린이 심사위원상을 받았습니다.

Q. 작품은 어디에 소장되어 있나요? A. 국립현대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경기문화재단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Q. 최근 전시는? A. 2025년 서울 두나무 아트큐브에서 개인전 《FLOWER AND CANDIES(꽃과 캔디들)》를, 2026년 4월 30일부터 7월 30일까지 경기 해움미술관에서 류연복과 2인전 《보편적 실재를 향한 예술의 역주》를 열었습니다. 2023년에는 정전 70주년 기념 한독작가교류전 《Utopia?!Peace》(포츠담·베를린)에 참여했습니다.

Q. 김재홍 작품 가격대는? A. 씨앗페에 나온 작품은 〈거인의 잠-220603〉(2022, 캔버스에 유채, 80x53cm) 한 점이며 ₩7,500,000입니다.

Q. 김재홍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김재홍은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씨앗페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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