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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구 — 번호로 이름을 대신한 목판화, 50년의 칼자국

작가를 만나다 · 발행 2026년 9월 17일 · 씨앗페

1976년부터 50년 넘게 목판화만 새겨온 작가 김상구. 제목 대신 번호를 붙이는 방식과 대영박물관까지 이어진 소장 이력을 따라, 한 판화가의 일관성을 읽습니다.

김상구 — 번호로 이름을 대신한 목판화, 50년의 칼자국

김상구, 〈No 895〉, 한지에 목판화, 180x30cm — 제목 대신 번호를 붙여온 목판화가의 2005년 작업
김상구, 〈No 895〉, 한지에 목판화, 180x30cm — 제목 대신 번호를 붙여온 목판화가의 2005년 작업

씨앗페에 들어온 김상구의 작품은 한 점입니다. 제목은 〈No 895〉. 2005년, 한지에 목판화, 180x30cm.

제목에 대해 먼저 말해야 합니다. '895'는 작품에 붙은 번호입니다. 2021년 수원 해움미술관에서 열린 3인전에 그가 낸 작품의 제목은 〈No 1197〉이었습니다. 번호가 이어진다는 것은 목록이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제목을 짓지 않는 작가는 드물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제'가 아니라 일련번호를 쓰는 것은 조금 다른 태도입니다. 무제는 이름 붙이기를 거절하는 말이고, 번호는 순서를 기록하는 말입니다. 앞에 894개가 있었고 뒤로 계속된다는 사실 자체가 제목이 됩니다. 1976년경부터 50년 넘게 목판화 한 가지만 새겨온 작가에게, 이보다 정확한 제목 체계를 찾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1945년생, 그리고 1976년부터

김상구는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1967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의 교육대학원을 마쳤습니다.

전공은 서양화였습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목판 작업을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 1976년경입니다. 학부 졸업으로부터 10년 가까이 지난 시점입니다. 이후 50년 넘게 그 작업을 이어왔습니다. 한 매체는 그를 두고 "1976년부터 지금까지 목판화에 땀과 시간을 모두 바쳤다"고 썼습니다(중앙일보, 2021년).

한국 판화사에서 이 경로 — 회화에서 판화로 건너와 평생 돌아가지 않는 것 — 는 몇몇 작가에게서 반복해 나타납니다. 판화를 독립된 전공으로 배울 길이 넓지 않던 시절에 시작한 세대의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1981년, 상파울로

김상구의 이력에서 가장 이른 국제 무대는 1981년 제16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입니다.

상파울로 비엔날레는 베네치아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국제 비엔날레로, 1980년대 초 한국 작가가 참가한 국제전 가운데 무게가 큰 자리에 속합니다. 목판 작업을 시작한 지 5년 남짓 된 30대 후반의 작가가 그 자리에 섰습니다.

시점을 한 번 짚어둘 만합니다. 1981년이면 그가 목판 작업을 시작한 1976년경으로부터 5년 안팎입니다. 회화를 전공하고 뒤늦게 옮겨온 장르에서 그만한 시간 만에 국제 비엔날레에 나갔고, 그 뒤로 50년을 같은 장르에 머물렀습니다. 짧은 시작과 긴 지속이 한 이력에 함께 있습니다.

작업의 문법 — 판을 새기는 일

목판화가 어떤 작업인지를 한 번 짚어두면, 50년이라는 시간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목판화는 나무 판에서 남길 부분을 빼고 파낸 뒤, 남은 면에 잉크를 묻혀 종이에 찍는 방식입니다. 그린다기보다 덜어낸다에 가깝습니다. 붓으로 그리는 그림에서는 칠하는 만큼 화면에 무언가가 더해지지만, 판화에서는 파내는 만큼 찍히지 않는 자리가 생깁니다. 손의 움직임과 화면의 결과가 뒤집혀 있습니다.

되돌릴 수 없다는 점도 다릅니다. 한 번 파낸 자리는 메울 수 없습니다. 유화처럼 위에 덧칠해 수정하는 경로가 없습니다. 그래서 판화가의 시간은 판 앞에서의 결정으로 채워집니다.

여기에 다색이 붙으면 공정은 다시 길어집니다. 색의 수만큼 판을 따로 새기고, 종이의 위치를 정확히 맞춰 순서대로 겹쳐 찍어야 합니다. 한 장이 완성되기까지의 노동이 회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쌓입니다.

판화를 처음 들이는 분들이 자주 묻는 것이 '여러 장 찍는데 원본인가'입니다. 판화에서 원본의 기준은 유일성이 아니라 작가의 손을 거친 판과 찍기입니다. 작가가 직접 새긴 판으로, 작가가 정한 방식과 수량만큼 찍은 것이 원작입니다. 사진을 복제해 뽑아낸 인쇄물과는 다른 물건입니다. 나무를 파낸 자리가 종이에 눌린 자국으로 남기 때문에, 판화는 손으로 만져보면 표면에 요철이 있습니다. 인쇄물에는 그것이 없습니다.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김상구의 작업을 이렇게 평했습니다.

"풍부한 색채와 더불어 목판 특유의 칼맛이 선명하게 부각된다." — 중앙일보, 2021년

그리고 한 문장을 더 붙였습니다.

"그의 화면은 그림이자 동시에 시의 경지." — 중앙일보, 2021년

'칼맛'이라는 단어가 이 평의 핵심입니다. 판화에서 칼맛은 칼이 지나간 자국이 인쇄물 위에 그대로 남아 보이는 성질을 가리킵니다. 매끄럽게 지워버릴 수도 있는 흔적을 살려두는 선택이고, 손으로 판 물건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 태도입니다. 그 위에 '풍부한 색채'가 함께 언급된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색을 여러 겹 쓰면서도 칼자국이 묻히지 않는 화면을, 오광수는 그림이자 시라고 불렀습니다.

전시가 없던 시간

50년이라는 이력에서 가려지기 쉬운 대목이 있습니다. 작업을 이어가는 것과 그 작업을 보여줄 자리가 있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김상구는 서울 인사동 통인화랑에서 강행복·정승원 등 후배 작가들과 함께 그룹전 〈해학의 풍경〉에 참여했습니다. 그 전시와 관련한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은 이렇습니다.

"쉬지 않고 꾸준하게 작업해왔지만 전시하자는 곳이 없었다." — 중앙일보, 2021년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참가하고 대영박물관에 작품이 들어간 작가의 문장이라는 점에서, 이 말은 한국 미술 생태계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판화라는 장르가 전시 공간에서 차지해온 자리, 원로 작가의 신작이 놓일 지면의 크기 같은 것들이 이 한 문장 뒤에 있습니다.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그 전시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그림과는 또 다른 판화만의 독특한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귀한 자리." — 중앙일보, 2021년

'귀한 자리'라는 표현이 앞 문장과 짝을 이룹니다. 전시하자는 곳이 없었다는 말 다음에 오는 '귀한'은 겸양이 아니라 사실 진술에 가깝습니다.

후배들과, 그리고 지역 미술관에서

최근 몇 해 김상구의 이름이 놓인 자리들을 보면 한 가지 성격이 드러납니다.

2021년 7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수원 해움미술관에서 강행복·김재홍과 함께 3인전 〈판화와 회화의 조응〉이 열렸습니다. 판화와 회화를 한자리에 놓고 서로를 비춰보게 하는 구성이고, 그가 낸 작품 가운데 〈No 1197〉이 있었습니다.

통인화랑의 〈해학의 풍경〉도 후배 작가들과 함께한 자리였습니다. 강행복은 두 전시에 모두 이름이 보입니다.

충북 진천의 군립 생거판화미술관 소장품전 〈자연으로 보는 판화展〉에도 그의 목판화가 전시됐습니다. 판화가 김준권의 기증품과 함께 공개된 전시로, 미술관 소장품 263점 가운데 일부를 선보이는 자리였습니다.

원로 작가가 후배들 사이에 섞여 전시장에 서는 일은 미술계에서 늘 흔하지는 않습니다. 서열이 자리 배치를 결정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김상구의 최근 전시 목록이 후배들과의 그룹전으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은, 그가 어떤 방식으로 동료들 사이에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기록입니다.

서울의 대형 미술관이 아니라 군립 미술관의 소장품전, 개인전이 아니라 후배들과의 그룹전. 판화라는 장르가 한국에서 자기 자리를 만들어온 방식이 이 목록에 들어 있습니다. 한국 현대 판화의 지형을 따라 읽으면, 이 목록이 왜 이런 모양인지가 더 분명해집니다.

씨앗페 출품작 읽기

〈No 895〉 — 2005년, 한지에 목판화, 180x30cm

씨앗페에 들어온 김상구의 작품은 이 한 점입니다.

먼저 치수를 보십시오. 180x30cm. 세로로 긴 화면입니다. 가로세로 비율이 6대 1에 가깝고, 한 변이 180cm에 이릅니다. 판화에서 이만한 길이의 화면은 판을 다루는 일 자체가 만만치 않습니다. 나무 판의 크기, 종이를 판 위에 올려 찍을 때의 정확도, 마르는 동안의 종이 수축까지 모두 길이에 비례해 까다로워집니다.

재료는 한지입니다. 목판화를 찍는 종이로 한지를 택하는 것은 잉크를 받는 방식과 마른 뒤의 결이 서양지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판은 나무이고 종이는 한지입니다. 두 재료 모두 한국에서 오래 쓰여온 것입니다.

제작 연도는 2005년입니다. 1976년경 시작한 목판 작업의 30년째에 해당하는 해이고, 번호로는 895번입니다.

세로로 긴 화면이라 걸 수 있는 자리가 뚜렷합니다. 폭이 좁은 벽면, 계단 옆, 현관과 복도처럼 가로 공간이 부족한 자리가 이 비율에 맞습니다.

김상구, 〈No 895〉, 한지에 목판화, 180x30cm, ₩4,000,000
김상구, 〈No 895〉, 한지에 목판화, 180x30cm, ₩4,000,000

김상구 작가 페이지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미술사에서의 자리

김상구의 작품은 영국 대영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호암미술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이 네 곳의 목록을 한 줄로 읽어두시기 바랍니다. 국내 국·공립 미술관과 사립 미술관, 그리고 대영박물관. 한국 판화가의 작품이 대영박물관 소장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그 작업이 한국이라는 맥락 바깥에서도 판화로서 읽혔다는 뜻입니다.

그의 자리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945년생으로 1967년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했고, 1970년대 중반 목판화로 옮겨간 뒤 50년 넘게 그 한 가지만 해왔습니다. 1981년 제16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참가했고, 작품은 대영박물관을 비롯한 국내외 미술관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2021년에도 후배 작가들과 함께 전시장에 섰습니다.

일관성이 이 작가의 이력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성질입니다. 번호로 이어지는 제목은 그 일관성을 작품 안으로 들여놓은 형식이기도 합니다.

한국 미술에서 판화는 오래 애매한 자리에 있었습니다. 회화의 부속처럼 취급되기도 했고, 여러 장 찍힌다는 이유로 값이 낮게 매겨지기도 했습니다. 그 사정 속에서 판화만 붙들고 반세기를 보낸 작가가 남기는 것은 작품의 목록만이 아닙니다. 그 장르가 계속 가능했다는 증거 자체를 남깁니다. 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처럼 판화를 전문으로 삼는 미술관의 소장품 목록에 그의 이름이 들어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힙니다.

"전시하자는 곳이 없었다"는 문장과 대영박물관 소장이라는 사실이 한 사람의 이력에 나란히 놓인다는 것 — 이것이 한국에서 판화가로 산다는 일의 좌표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김상구가 씨앗페에 작품을 낸 이유는 자신의 사정 때문이 아닙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김상구는 그 구조에 작품으로 참여했습니다.

"쉬지 않고 꾸준하게 작업해왔지만 전시하자는 곳이 없었다"고 말한 작가가 동료 예술인을 위한 자리에 작품을 내놓았다는 사실은, 이 참여를 읽는 한 가지 단서가 됩니다. 자리가 없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를 위해 무언가를 내놓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김상구를 처음 만나는 분이라면 순서를 이렇게 잡아보시길 권합니다. 먼저 제목의 숫자를 보십시오. 895라는 번호가 붙기까지 몇 년이 지나갔는지를 헤아려보면, 이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시간을 써왔는지 짐작이 갑니다. 다음으로 재료를 보십시오. 나무 판과 한지, 그리고 칼. 마지막으로 오광수의 표현을 기억하시면 됩니다 — 칼맛.

김상구의 작품을 컬렉션의 한 자리에 둔다는 것은, 한국 목판화가 50년 동안 쌓아온 노동을 한 점 안으로 들이는 일입니다.

김상구 작가 페이지에서 작품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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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김상구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난 목판화가입니다. 1967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교육대학원을 마쳤습니다. 1970년대 중반(1976년경)부터 본격적으로 목판 작업을 시작해 50년 넘게 이어오고 있습니다.

Q. 제목이 왜 번호인가요? A. 김상구의 작품 제목은 〈No 895〉·〈No 1197〉처럼 번호로 붙습니다. 씨앗페 출품작은 895번이고, 2021년 수원 해움미술관 3인전 〈판화와 회화의 조응〉에 낸 작품은 1197번이었습니다.

Q. 작품은 어디에 소장돼 있나요? A. 영국 대영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호암미술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Q. 주요 전시 이력은? A. 1981년 제16회 상파울로 비엔날레(브라질)에 참가했습니다. 서울 인사동 통인화랑에서 강행복·정승원 등 후배 작가들과 그룹전 〈해학의 풍경〉에 참여했고, 2021년 7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수원 해움미술관에서 강행복·김재홍과 3인전 〈판화와 회화의 조응〉을 열었습니다. 충북 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 소장품전 〈자연으로 보는 판화展〉에도 작품이 전시됐습니다.

Q. 평론가들의 평가는? A.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그의 작업에 대해 "풍부한 색채와 더불어 목판 특유의 칼맛이 선명하게 부각된다", "그의 화면은 그림이자 동시에 시의 경지"라고 평했습니다(중앙일보, 2021년).

Q. 판화도 원작인가요? 여러 장 찍는데요. A. 작가가 직접 새긴 판으로, 작가가 정한 방식과 수량만큼 찍은 것이 원작입니다. 사진을 복제해 뽑아낸 인쇄물과는 다릅니다. 목판화는 파낸 자리가 종이에 눌린 자국으로 남아 표면에 요철이 생기는데, 인쇄물에는 그것이 없습니다.

Q. 180x30cm는 어디에 걸기 좋나요? A. 가로세로 비율이 6대 1에 가까운 세로로 긴 화면이라, 폭이 좁은 벽면이나 계단 옆, 현관과 복도처럼 가로 공간이 부족한 자리에 맞습니다. 넓은 벽 한가운데보다 좁고 높은 자리에서 제 비율이 살아납니다.

Q. 김상구 작품 가격대는? A. 씨앗페에 나온 〈No 895〉(2005, 한지에 목판화, 180x30cm)는 ₩4,000,000입니다.

Q. 김상구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김상구는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씨앗페에 참여했습니다.

Q. 씨앗페에 나온 김상구 작품은 몇 점인가요? A. 〈No 895〉(2005, 한지에 목판화, 180x30cm) 한 점입니다. 작가 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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