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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구 — 오지리의 쌀부대에서 반가사유상까지, 땅을 그려온 50년

작가를 만나다 · 발행 2026년 9월 17일 · 씨앗페

고향 마을 이름을 딴 오지리 연작으로 농민의 얼굴을 그려온 민중미술 화가 이종구. 쌀부대 위의 초상에서 반가사유상의 사유까지, 한 작가가 반세기 동안 옮겨온 자리를 따라 읽습니다.

이종구 — 오지리의 쌀부대에서 반가사유상까지, 땅을 그려온 50년

이종구, 〈사유-헌화 2〉, 캔버스에 아크릴릭, 55x91cm — '사유' 연작으로 옮겨 앉은 민중미술 화가의 근작
이종구, 〈사유-헌화 2〉, 캔버스에 아크릴릭, 55x91cm — '사유' 연작으로 옮겨 앉은 민중미술 화가의 근작

씨앗페에 들어온 이종구의 작품 넉 점 가운데 가장 나중의 것은 〈사유-헌화 2〉입니다. 2025년, 캔버스에 아크릴릭, 55x91cm. 제목에 붙은 '사유'라는 두 글자가 이 작가의 지금 자리를 그대로 가리킵니다.

50년 가까이 이종구를 따라다닌 수식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농민 화가, 민중미술 화가, 현실주의 화가 — 고향 마을의 이름을 딴 연작으로 한국 농촌의 얼굴을 그려온 사람에게 붙는 말들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국보 반가사유상을 화폭으로 끌어들여 '사유'와 '불이(不二)'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은 그 이동의 앞과 뒤를 함께 읽습니다. 뒤를 모르면 앞이 갑작스러워 보이고, 앞을 모르면 뒤가 얼마나 먼 길이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씨앗페에 들어온 넉 점은 그 길을 짧게 압축해 보여줍니다. 가장 이른 것이 2000년, 가장 늦은 것이 2025년. 25년의 간격을 둔 네 점이 한 작가의 화면에서 무엇이 남고 무엇이 바뀌었는지를 알려줍니다.

오지리에서 출발한 사람

이종구는 1955년 충청남도 서산 대산면 오지리에서 태어났습니다. 한국예술디지털아카이브가 출생지와 출생연도를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뒷날 그의 대표 연작 제목이 되는 그 마을 이름이, 태어난 곳의 이름이기도 했다는 사실은 이 작가를 이해하는 첫 단서입니다. 화가가 소재를 찾아 농촌으로 간 것이 아니라, 자기가 나고 자란 자리를 계속 그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1976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합니다. 그리고 1982년, 소집단 '임술년' 결성에 참여하며 창립전을 엽니다. 임술년은 1980년대 민중미술의 한 축을 이룬 그룹으로 기록되며, 이종구의 이름은 그 출발점부터 이 흐름 안에 놓입니다.

같은 시기 제도권의 평가도 함께 왔습니다. 1982년 중앙미술대전 특선, 이듬해인 1983년에는 같은 대전에서 장려상을 받습니다. 이십 대 후반의 일입니다. 이후의 수상은 긴 간격을 두고 이어집니다 — 1994년 가나미술상, 2005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선정, 2010년 인천문화재단 우현예술상. 한 자리에 오래 머무른 작가에게 붙는 이력입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작업 바깥의 자리도 있었습니다. 중앙대학교 교수와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지냈습니다. 2004년에는 한길아트에서 저서 『땅의 정신 땅의 얼굴』을 펴냈습니다. 제목이 다시 땅입니다.

작업의 문법 — 쌀부대, 얼굴, 현장

이종구의 작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야 한다면 '오지리 연작'입니다. 자신이 나고 자란 마을의 이름을 딴 이 연작에서 그는 농촌의 현실과 농민의 얼굴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이 연작을 미술사의 기억에 박아 넣은 것은 그가 고른 지지체였습니다. 쌀부대 위에 그린 농민의 초상.

캔버스가 아니라 쌀부대를 택했다는 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림을 받치는 물건이 이미 그림의 내용인 경우, 재료와 주제는 분리되지 않습니다. 농사의 결과물을 담는 부대가 농사짓는 사람의 얼굴을 받칩니다. 민중미술이 형식 실험으로 흐르지 않고 삶의 물건을 그대로 끌어들이던 한 시기의 방법이 여기 있습니다.

연작의 제목이 '농민'이나 '농촌'이 아니라 '오지리'라는 점도 같은 성격을 보여줍니다. 일반명사 대신 실제로 있는 마을의 이름을 붙이면, 그림은 농민 일반을 대표하는 상징이 아니라 특정한 장소의 특정한 사람에 대한 기록이 됩니다. 뒷날 그가 펴낸 책의 제목이 『땅의 정신 땅의 얼굴』(한길아트, 2004)이었던 것도 우연으로 읽히지 않습니다. 땅에는 정신이 있고 얼굴이 있다는 문장은, 40년치 작업을 한 줄로 옮겨 적은 것에 가깝습니다.

민중미술의 흐름 전반에서 이종구의 자리가 특별한 것은, 그가 이 문법을 1980년대에 두고 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는 대추리 평화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탄핵 촛불집회처럼 한국 현대사가 움직이는 현장을 찾아다니며 화폭에 담았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한 작품도 남겼습니다. 오지리의 농민에서 대추리로, 광장으로, 바다로 — 대상은 바뀌었지만 방식은 같습니다. 벌어지고 있는 일이 있는 자리로 가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그리는 것.

본인은 이 시기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민중미술 작가로서 그동안 싸우는 그림을 그려왔어요. 우리 사회의 불의와 비민주적인 것들, 현장을 주로 기록했는데, 이제 내면화하고 있는 거죠." — 경인일보, 2026년 5월 20일

'싸우는 그림'. 자기 작업을 스스로 그렇게 부른 작가의 말입니다. 그리고 같은 문장의 뒷부분이 다음 장의 제목이 됩니다. "이제 내면화하고 있는 거죠."

전환 — 리얼리즘을 철학으로 옮기다

2026년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사유(思惟)》는 그 이동을 한자리에 모아 보인 자리였습니다. 1980년대 민중미술의 대표 작가로 리얼리즘 회화를 이어온 사람이, 근작에서는 반가사유상 같은 불교적 모티프를 빌려 생로병사와 '불이(不二)'를 다루는 쪽으로 작업을 넓혔습니다.

왜 지금 그 방향인가에 대한 대답도 같은 인터뷰에 있습니다.

"그동안의 리얼리즘을 내면적인 철학으로 옮겨 세상을 그려봐야겠다 해서 시작했습니다. 더 죽이려고, 더 차지하려고, 더 뺏으려고…지금 인류가 지키려고 노력하고 살았던 도덕 기준이 무너지고 있는 세상입니다. 약육강식의 세상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철학적 사유가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 경인일보, 2026년 5월 20일

여기서 '사유'는 현장에서 물러나는 말이 아닙니다. 현장이 더 나빠졌기 때문에 필요해진 말입니다. 싸우는 그림을 그리던 사람이 사유를 말할 때, 그 사유는 관조가 아니라 대응입니다. 도덕 기준이 무너지고 있다는 진단이 먼저 있고, 그래서 철학적 사유가 필요하다는 처방이 뒤따릅니다. 진단과 처방의 순서가 뒤바뀌지 않았다는 점이 이 전환을 읽는 열쇠입니다.

작가는 화면에 등장하는 요소들의 뜻을 직접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화면 속 여성의 신분을 지우려고 옷을 벗겨냈어요. 국적, 민족, 직업, 신분 이런 것들을 다 없애려고 했어요. 그래서 원초적 알몸을 그린 겁니다. 여성은 중생(衆生)을, 불상은 부처의 의미로 화면에 사용됐어요. 머리 위의 불꽃은 번뇌(煩惱)입니다." — 경인일보, 2026년 5월 20일

신분을 지우는 일. 40년 전 쌀부대 위에서 농민의 얼굴을 또렷하게 새기던 작가가, 이제 얼굴에서 국적과 계급을 지웁니다. 반대 방향으로 보이지만 목적지는 겹칩니다. 그때는 이름 없이 취급되던 사람에게 얼굴을 돌려주는 일이었고, 지금은 얼굴에 붙은 딱지를 떼어내 누구나로 만드는 일입니다.

번뇌를 화염으로 놓은 이유도 작가의 말로 남아 있습니다.

"중생에게 불은 번뇌이나, 부처의 불은 그 번뇌를 태워버리는 불이죠. 불상의 불(火)은 화염의 형태지만 뒤를 에워싼 광배로 표현되는데, 번뇌의 불도 같은 모양이면서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불이(不二)로라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이 번뇌를 태워야 옆 자리 부처로 이동할 수 있는 셈이죠." — 동아일보, 2025년 11월 17일

같은 자리에서 그는 이 작업이 겨냥하는 바를 더 단순하게 말했습니다.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내면에 있는 부처를 발견하면 전쟁이나 싸움도 없어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 동아일보, 2025년 11월 17일

그러면 옛 방식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는가. 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와의 인터뷰(2026년 5월 20일)에서 나온 짧은 대답이 이 작가의 현재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예전 같았으면 그걸 그렸죠. 그런데 이미 넘어섰고."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원래 그리고 싶었던 것이 따로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옷을 벗기면 신분도 계급도 없어지잖아요. 원래는 늙은 할머니 몸을 그리고 싶었어요. 생로병사가 몸에 그대로 새겨진 사람. 그런데 3년 동안 찾았는데 아무도 안 하시더라고요."

3년. 생로병사를 그리기 위해 생로병사가 새겨진 몸을 3년 동안 찾아다녔다는 말에, 이 작가가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불교적 모티프로 옮겨간 뒤에도 그는 관념에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실물을 찾습니다. 오지리에서 농민의 얼굴을 찾던 방식과 같습니다.

씨앗페 출품작 넉 점 읽기

씨앗페에 들어온 이종구의 작품은 넉 점입니다. 제작 연도가 2000년부터 2025년까지 걸쳐 있어, 앞에서 따라온 이동이 네 개의 지점으로 찍혀 있습니다. 매체를 보면 소반 판이 한 점, 캔버스에 아크릴릭이 세 점입니다. 화면 크기는 한 변 38cm의 작은 정사각형부터 91cm에 이르는 가로 화면까지 걸쳐 있습니다. 가격은 ₩5,000,000 두 점과 ₩20,000,000 두 점으로 나뉘며, 작은 화면 두 점이 앞의 값, 큰 화면 두 점이 뒤의 값입니다. 어느 쪽을 고르든 들이는 것은 같은 작가의 같은 질문이니, 값보다 크기와 시기로 고르시길 권합니다.

〈정안수〉 — 2000년, 소반 판에 아크릴릭, 48x48cm

지지체가 소반 판입니다. 쌀부대에 농민을 그리던 작가의 재료 감각이 그대로 이어진 선택입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만들어진 면이 아니라, 누군가의 살림에서 쓰이던 물건 위에 그림이 올라갑니다. 넉 점 가운데 가장 이른 작품이고, 캔버스가 아닌 유일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소반 판이라는 지지체를 직접 보고 싶은 분께 권합니다.

이종구, 〈정안수〉, 소반 판에 아크릴릭, 48x48cm, ₩5,000,000
이종구, 〈정안수〉, 소반 판에 아크릴릭, 48x48cm, ₩5,000,000

〈간월암〉 — 2010년, 캔버스에 아크릴릭, 38x38cm

한 변 38cm의 정사각형, 넉 점 중 가장 작은 화면입니다. 마을 이름을 연작의 제목으로 삼았던 작가가, 이번에는 암자의 이름을 그대로 제목에 올렸습니다. 넉 점 가운데 두 점의 제목이 장소의 이름입니다. 작은 화면이라 서재나 복도처럼 가까이서 보는 자리에 어울립니다.

이종구, 〈간월암〉, 캔버스에 아크릴릭, 38x38cm, ₩5,000,000
이종구, 〈간월암〉, 캔버스에 아크릴릭, 38x38cm, ₩5,000,000

〈정암사 적멸보궁〉 — 2021년, 캔버스에 아크릴릭, 80x65cm

제목이 불교의 자리를 직접 가리킵니다. 2025년의 '사유' 연작으로 가는 길목에 놓인 작품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80x65cm의 세로 화면으로, 거실이나 접견 공간의 메인 자리를 감당하는 크기입니다.

이종구, 〈정암사 적멸보궁〉, 캔버스에 아크릴릭, 80x65cm, ₩20,000,000
이종구, 〈정암사 적멸보궁〉, 캔버스에 아크릴릭, 80x65cm, ₩20,000,000

〈사유-헌화 2〉 — 2025년, 캔버스에 아크릴릭, 55x91cm

제목의 '사유'가 앞서 살펴본 연작의 이름입니다. 넉 점 중 가장 최근작이자 가장 큰 화면이고, 앞 장에서 읽은 작가의 말들이 가리키는 시기의 작업입니다. 이종구의 현재를 한 점으로 들이려는 분께 권합니다.

이종구, 〈사유-헌화 2〉, 캔버스에 아크릴릭, 55x91cm, ₩20,000,000
이종구, 〈사유-헌화 2〉, 캔버스에 아크릴릭, 55x91cm, ₩20,000,000

넉 점을 나란히 놓으면 25년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살림의 물건 위에서 시작해, 고향의 암자를 거쳐, 불교적 사유의 화면으로. 이종구 작가 페이지에서 네 작품을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미술사에서의 자리

이종구를 한국 미술사의 어디에 놓아야 할지는 비교적 분명합니다. 1982년 임술년 결성에 참여해 1980년대 민중미술의 한 축을 이뤘고, 그 시기의 대표적 성과로 오지리 연작을 남겼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고, 2005년에는 같은 미술관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습니다. 1980년대 미술 운동의 참여자가 제도 미술관의 연간 대표 작가가 되기까지 걸린 20여 년이, 그 자체로 한국 미술이 민중미술을 받아들여온 속도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종구의 자리를 1980년대에만 고정하면 이 작가를 절반만 읽는 셈이 됩니다. 대추리와 촛불과 세월호를 거쳐 반가사유상으로 이어지는 선은, 한 사람이 같은 질문을 계속 다른 장소에서 던져온 기록입니다. 질문은 이것입니다 — 지금 여기서 가장 힘든 자리에 있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 사람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가.

1980년대 민중미술을 함께 지나온 작가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후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습니다. 이종구의 경우 그 방향이 '현장에서 내면으로'였다는 점, 그런데 내면으로 들어간 이유를 여전히 바깥 세상의 상태로 설명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사유를 말하면서도 근거는 '약육강식의 세상'입니다. 물러난 자리가 아니라 옮겨 앉은 자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이종구가 씨앗페에 넉 점을 낸 이유는 자신의 사정 때문이 아닙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이종구는 그 구조에 작품으로 참여했습니다.

50년 가까이 농민의 얼굴을 그려온 작가가 동료 예술인을 위해 작품을 내놓는 일은, 따로 설명을 붙일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오지리의 쌀부대 위에서 그가 하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밀려나는 사람 쪽에 서는 것.

이종구를 처음 만나는 분이라면 순서를 이렇게 잡아보시길 권합니다. 먼저 〈정안수〉의 지지체를 보십시오. 왜 캔버스가 아닌가를 묻는 순간 이 작가의 1980년대가 열립니다. 다음으로 〈간월암〉과 〈정암사 적멸보궁〉의 제목을 나란히 읽으십시오. 장소의 이름을 부르는 방식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유-헌화 2〉를 보시면 됩니다. 앞의 세 점을 보고 난 뒤라야, 이 작가가 반가사유상 앞에 선 일이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이 아니라 같은 걸음의 연장이라는 것이 보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철학적 사유가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말입니다. 그 사유가 어디로 향하는지를 보려면, 그가 그려온 얼굴들을 순서대로 보는 편이 빠릅니다.

이종구의 작품을 컬렉션의 한 자리에 둔다는 것은, 한국 민중미술이 1980년대의 쌀부대에서 오늘의 사유까지 걸어온 길을 한 점 안으로 들이는 일입니다. 씨앗페에 나온 넉 점은 그 길의 서로 다른 지점에 서 있습니다.

이종구 작가 페이지에서 작품 네 점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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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이종구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1955년 충청남도 서산 대산면 오지리에서 태어난 민중미술 화가입니다. 1976년 중앙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1982년 소집단 '임술년' 결성에 참여했습니다. 고향 마을 이름을 딴 '오지리' 연작으로 농촌의 현실과 농민의 얼굴을 그렸고, 쌀부대 위에 그린 농민 초상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Q. '임술년'은 무엇인가요? A. 1982년 결성된 소집단으로, 창립전과 함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한국 민중미술의 한 축을 이룬 그룹이며, 이종구는 결성에 참여했습니다.

Q. 왜 쌀부대에 그렸나요? A. 오지리 연작에서 이종구는 쌀부대를 지지체로 삼아 농민의 초상을 그렸습니다. 농사의 결과물을 담는 물건 위에 농사짓는 사람의 얼굴을 올리는 방식으로, 재료 자체가 주제와 붙어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Q. 최근에는 어떤 작업을 하나요? A. 반가사유상 같은 불교적 모티프를 빌려 생로병사와 '불이(不二)'를 다루는 '사유' 연작으로 작업을 넓혔습니다. 2026년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 《사유(思惟)》를 열었습니다. 본인은 "그동안의 리얼리즘을 내면적인 철학으로 옮겨 세상을 그려봐야겠다"(경인일보, 2026년 5월 20일)고 밝혔습니다.

Q. 수상 이력과 소장처는? A. 1982년 중앙미술대전 특선, 1983년 중앙미술대전 장려상, 1994년 가나미술상, 2005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2010년 인천문화재단 우현예술상을 받았습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중앙대학교 교수와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지냈고, 저서로 『땅의 정신 땅의 얼굴』(한길아트, 2004)이 있습니다.

Q. 이종구 작품 가격대는? A. 씨앗페에 나온 넉 점은 ₩5,000,000(〈정안수〉·〈간월암〉, 한 변 38~48cm의 작은 화면)과 ₩20,000,000(〈정암사 적멸보궁〉·〈사유-헌화 2〉, 65~91cm의 큰 화면) 두 구간입니다. 값보다 크기와 제작 시기로 고르시길 권합니다.

Q. 이종구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이종구는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씨앗페에 참여했습니다.

Q. 씨앗페에 나온 이종구 작품은 몇 점이고 어떤 것인가요? A. 〈정안수〉(2000, 소반 판에 아크릴릭, 48x48cm), 〈간월암〉(2010, 캔버스에 아크릴릭, 38x38cm), 〈정암사 적멸보궁〉(2021, 캔버스에 아크릴릭, 80x65cm), 〈사유-헌화 2〉(2025, 캔버스에 아크릴릭, 55x91cm)입니다. 작가 페이지에서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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