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진희의 화면에서 꽃술 하나하나는 붓질이 아니라 실입니다. 붉은 실이 휘어 꽃이 되고 초록 실이 엉켜 수풀이 됩니다. 씨앗페 출품작 여섯 점을 실제로 들여다보며 읽습니다.
홍진희 — 붉은 실로 피운 꽃, 사계절을 실로 넘긴 여섯 점

〈가을이 오는 숲〉을 처음 보면 수채화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붉은 꽃이 화면 여기저기 피어 있고, 배경은 연둣빛에서 짙은 초록으로 번져 있습니다. 그런데 꽃을 이루는 가늘고 긴 갈래들을 가까이서 보면 그것이 붓으로 그은 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실입니다. 붉은 실 한 올 한 올이 바깥으로 휘어 나가면서 꽃술이 됩니다. 어떤 갈래는 끝이 위로 말려 올라가 있고, 어떤 갈래는 화면 바깥을 향해 길게 뻗습니다.
배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록과 짙은 갈색 실이 무수히 엉켜 수풀이 되고, 그 사이로 실이 작은 고리를 만들며 뭉친 자리들이 보입니다. 물감이라면 붓이 지나간 자국이 남을 자리에, 여기서는 실이 스스로 꼬이면서 만든 매듭이 남아 있습니다.
53x32cm. 붓이 한 번도 지나가지 않은 회화입니다.
작가가 실을 고른 이유
홍진희는 자기가 쓰는 재료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실은 물감처럼 밝기를 조절할 수 있고 오브제처럼 붙이고 입체로 만들 수도 있는 양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나름대로 작품 소재를 소화하기에 적합하다" — 뉴시스, 2020년 2월 7일
이 한 문장에 두 가지 성질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물감처럼 밝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오브제처럼 붙이고 입체로 만들 수 있다는 것.
앞의 성질이 〈가을이 오는 숲〉에서 확인됩니다. 실의 색을 겹치고 밀도를 조절하면 밝기가 달라집니다. 화면 위쪽 연둣빛이 밝고 아래쪽 초록이 어두운 것은 물감을 진하게 풀어서가 아니라 실을 더 많이 겹쳤기 때문입니다.
뒤의 성질은 씨앗페 출품작 가운데 다른 두 점에서 확인됩니다.
벽에서 튀어나온 숲

〈봄숲 01〉은 부조입니다. 재료 표기가 '나무판에 실(면사), 와이어'입니다.
화면은 세로로 곧게 뻗은 실 다발로 가득합니다. 아래쪽은 짙은 초록에 가깝게 어둡고 위로 올라갈수록 연둣빛과 옅은 크림색으로 밝아집니다. 실들이 살짝 비스듬히 기울어 있어서 바람이 한 방향으로 지나간 풀밭처럼 보입니다.
그 사이사이에 짧고 흰 마디들이 박혀 있습니다. 실보다 굵고 단단해 보이며, 실 다발 앞으로 돌출해 빛을 받습니다. 와이어입니다. 실은 늘어지고 휘지만 와이어는 자기 형태를 유지하므로, 화면에서 유일하게 앞으로 나오는 요소가 됩니다.
캔버스 작품이 평면 안에서 깊이를 만든다면, 이 부조는 실제로 벽에서 떨어져 나옵니다. 30x20cm의 작은 판 위에서 회화와 입체의 경계가 흐려집니다. 작가가 말한 "오브제처럼 붙이고 입체로 만들 수도 있는" 성질이 그대로 작품이 된 경우입니다.
씨앗페에 나온 여섯 점 가운데 이 부조는 〈봄숲 01〉·〈봄숲 02〉 두 점뿐입니다. 나머지는 평면입니다.
사계절이 다 있다
여섯 점의 제목을 계절 순서로 놓아 보면 이 출품이 어떻게 구성됐는지가 보입니다.
- 봄 — 〈봄숲 01〉, 〈봄숲 02〉 (2022)
- 여름 — 〈늦여름 숲〉 (2023)
- 가을 — 〈가을이 오는 숲〉 (2021)
- 겨울 — 〈눈밭01〉, 〈눈밭02〉 (2024)
네 계절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한 작가가 씨앗페에 낸 여섯 점이 우연히 사계절을 채우기는 어렵습니다. 봄과 겨울에 각각 짝을 이루는 두 점씩을 두고 여름과 가을에 한 점씩을 둔 배치이므로, 여섯 점을 함께 걸면 그 자체로 한 해가 됩니다.
제목의 표현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그냥 '가을 숲'이 아니라 〈가을이 오는 숲〉이고, '여름 숲'이 아니라 〈늦여름 숲〉입니다. 계절의 한복판이 아니라 계절이 넘어가는 자리를 고르는 제목들입니다. 실로 하는 작업이 오랜 시간의 축적을 요구한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한 순간을 포착하는 매체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담기에 어울리는 매체입니다.
겨울 두 점의 제목이 '숲'이 아니라 〈눈밭01〉·〈눈밭02〉인 것도 차이입니다. 나무가 서 있는 자리가 아니라 눈이 덮인 평면으로 바뀌었습니다.
용인에서 이어진 개인전
홍진희의 최근 개인전들은 한 도시에 모여 있습니다.
- 2020년 '당신이 그리워질 때' — 갤러리가비, 서울
- 2023년 '여름 숲에서' — 동백문고갤러리, 용인
- 2024년 '숲, 순환과 치유' — 벗이미술관, 용인
- 2025년 '더불어 숲' — 갤러리오르, 용인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세 해 연속으로 용인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장소는 매번 달랐습니다. 동백문고갤러리, 벗이미술관, 갤러리오르. 한 도시 안에서 서로 다른 성격의 공간을 차례로 거친 셈입니다.
전시 제목도 방향이 있습니다. '여름 숲에서'가 계절을 가리켰다면, '숲, 순환과 치유'는 숲이 하는 일을 가리키고, '더불어 숲'은 숲의 구성 방식을 가리킵니다. 대상에서 기능으로, 다시 관계로 옮겨가는 세 제목입니다.
단체전은 더 넓게 퍼져 있습니다. 2023년 제주국제컨벤션센터의 '아트페스타 제주', 2024년 파주 갤러리끼의 '아트경기 런 페스티벌', 2025년 서울 이글락아트스페이스의 '50인의 미리 봄봄'.
사무실 휴게실에 걸린 그림
홍진희의 이력 가운데 갤러리 바깥에서 벌어진 일이 있습니다.
2021년 경기문화재단의 '아트경기' 공공기관 미술품 임대·전시 사업에 선정작가 15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뽑혀, 경기주택도시공사 등에 작품이 전시됐습니다. 그리고 2026년 6월에는 경기신용보증재단 휴게실에 홍진희의 작품이 걸렸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경기문화재단 선정작가로는 2019년·2021년·2026년을 포함해 여러 해에 걸쳐 활동했습니다.
휴게실이라는 장소를 한 번 생각해 볼 만합니다. 미술관은 그림을 보러 가는 곳이지만, 사무실 휴게실은 그림을 보러 가는 곳이 아닙니다. 거기 걸린 그림은 잠깐 앉아 쉬는 사람의 눈에 우연히 들어옵니다. 숲을 실로 짜 만든 화면이 그런 자리에 있다는 것은, 이 작업이 전시장의 조명 아래에서만 성립하는 종류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씨앗페 출품작 여섯 점
2021년부터 2024년까지의 작업이고, 여섯 점 모두 판매 중입니다. 가격은 ₩800,000부터 ₩3,000,000까지입니다.
〈늦여름 숲〉 — 2023년, 65.5x47cm
여섯 점 가운데 가장 큰 화면입니다.

- 65.5x47cm · ₩3,000,000
- 작품 페이지 →
〈가을이 오는 숲〉 — 2021년, cotton thread on canvas, 53x32cm
여섯 점 가운데 가장 이른 작품이자 유일하게 캔버스를 지지체로 쓴 작품입니다. 앞에서 읽은 붉은 꽃이 이 화면입니다.

- 53x32cm · cotton thread on canvas · ₩2,000,000
- 작품 페이지 →
〈눈밭01〉 — 2024년, cotton thread on korean paper, 52x42cm
여섯 점 가운데 가장 최근작이며, 지지체가 한지입니다. 〈눈밭02〉와 짝을 이룹니다.

- 52x42cm · cotton thread on korean paper · ₩1,500,000
- 작품 페이지 →
〈눈밭02〉 — 2024년, cotton thread on korean paper, 52x42cm
01과 같은 해, 같은 규격, 같은 재료입니다. 두 점을 나란히 걸도록 만들어진 짝입니다.

- 52x42cm · cotton thread on korean paper · ₩1,500,000
- 작품 페이지 →
〈봄숲 01〉 — 2022년, 나무판에 실(면사)·와이어 부조, 30x20cm
여섯 점 가운데 가장 작은 화면이자 부조 두 점 중 하나입니다. 앞에서 읽은 실 다발과 흰 와이어가 이 작품입니다.

- 30x20cm · (부조작품) 나무판에 실(면사), 와이어 · ₩800,000
- 작품 페이지 →
〈봄숲 02〉 — 2022년, 나무판에 실(면사)·와이어 부조, 30x20cm
01과 짝을 이루는 부조입니다. 두 점을 함께 걸면 봄이 한 쌍이 됩니다.

- 30x20cm · (부조작품) 나무판에 실(면사), 와이어 · ₩800,000
- 작품 페이지 →
세 가지 바탕
여섯 점의 지지체를 나란히 놓으면 이 작가가 실을 세 가지 바탕 위에 올린다는 것이 보입니다.
캔버스 — 〈가을이 오는 숲〉 한 점. 회화의 표준적인 바탕입니다. 한지 — 〈눈밭01〉·〈눈밭02〉 두 점. 흡수성이 있고 얇으며, 빛이 뒤에서 비치면 성질이 달라지는 재료입니다. 나무판 — 〈봄숲 01〉·〈봄숲 02〉 두 점. 단단해서 와이어를 세울 수 있고, 그래서 부조가 가능해집니다.
같은 실을 쓰더라도 무엇 위에 올리느냐에 따라 결과가 회화가 되기도 하고 부조가 되기도 합니다. 재료 하나를 오래 붙들고 있는 작가가 자기 재료의 가능한 형태를 계속 늘려가는 방식입니다.
처음 한 점을 들이는 분이라면 이 구분이 선택의 기준이 됩니다. 평면 회화로 걸고 싶으면 캔버스나 한지 작품을, 벽에서 조금 떨어져 나오는 물건을 원하면 나무판 부조를 고르시면 됩니다.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홍진희가 씨앗페에 여섯 점을 낸 이유는 자신이 금융 차별을 겪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2025년 개인전의 제목이 '더불어 숲'이었습니다. 숲은 한 그루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의 제목입니다. 실 한 올이 그림이 되지 못하고 수천 올이 겹쳐야 숲이 되는 작업을 해온 사람에게, 그 말은 비유가 아니라 작업 방식의 설명에 가깝습니다. 동료를 위한 자리에 여섯 점을 내놓는 일도 같은 문장 안에 있습니다.
홍진희를 처음 만나는 분이라면 순서를 이렇게 잡아보시길 권합니다. 먼저 〈가을이 오는 숲〉의 붉은 꽃술을 화면 가까이서 보십시오. 그것이 붓질이 아니라 실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다음으로 〈봄숲 01〉의 흰 와이어를 보십시오. 실은 늘어지고 와이어는 서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섯 점의 제목을 계절 순서로 읽어보십시오. 봄, 늦여름, 가을이 오는 때, 눈밭. 한 해가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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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홍진희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실(cotton thread)을 재료로 '숲'을 그리는 회화 작업을 이어온 작가입니다. 물감 대신 실의 색과 밀도를 겹쳐 밝기와 형태를 만들며, 평면 회화뿐 아니라 나무판 위의 부조 작업도 함께 합니다.
Q. 왜 실로 그리나요? A. 작가 본인의 설명이 있습니다. "실은 물감처럼 밝기를 조절할 수 있고 오브제처럼 붙이고 입체로 만들 수도 있는 양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나름대로 작품 소재를 소화하기에 적합하다"(뉴시스, 2020년 2월 7일). 물감의 성질과 오브제의 성질을 한 재료가 함께 갖는다는 뜻입니다.
Q. 최근 개인전은 어디서 열렸나요? A. 2023년 '여름 숲에서'(동백문고갤러리, 용인), 2024년 '숲, 순환과 치유'(벗이미술관, 용인), 2025년 '더불어 숲'(갤러리오르, 용인)으로 세 해 연속 용인에서 열렸습니다. 2020년에는 서울 갤러리가비에서 '당신이 그리워질 때'를 열었습니다.
Q. 공공기관에도 작품이 걸리나요? A. 2021년 경기문화재단 '아트경기'의 공공기관 미술품 임대·전시 사업에 선정작가 15인 중 한 사람으로 뽑혀 경기주택도시공사 등에 작품이 전시됐습니다. 2026년 6월에는 경기신용보증재단 휴게실에 작품이 걸렸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경기문화재단 선정작가로는 2019년·2021년·2026년을 포함해 여러 해 활동했습니다.
Q. 부조 작품은 평면 작품과 어떻게 다른가요? A. 〈봄숲 01〉·〈봄숲 02〉는 나무판에 실(면사)과 와이어를 함께 쓴 부조입니다. 실은 휘고 늘어지지만 와이어는 형태를 유지하므로, 짧은 흰 마디들이 실 다발 앞으로 돌출해 빛을 받습니다. 평면 회화가 화면 안에서 깊이를 만든다면 이 두 점은 실제로 벽에서 떨어져 나옵니다.
Q. 홍진희 작품 가격대는? A. 씨앗페에 나온 여섯 점은 ₩800,000(부조 〈봄숲 01〉·〈봄숲 02〉), ₩1,500,000(한지 작품 〈눈밭01〉·〈눈밭02〉), ₩2,000,000(〈가을이 오는 숲〉), ₩3,000,000(〈늦여름 숲〉)입니다.
Q. 홍진희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홍진희는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씨앗페에 참여했습니다.
Q. 씨앗페에 나온 홍진희 작품은 몇 점인가요? A. 여섯 점이며 사계절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봄 두 점(〈봄숲 01〉·〈봄숲 02〉, 2022), 여름 한 점(〈늦여름 숲〉, 2023), 가을 한 점(〈가을이 오는 숲〉, 2021), 겨울 두 점(〈눈밭01〉·〈눈밭02〉, 2024)입니다. 작가 페이지에서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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