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온의 화면에는 집이 있습니다. 벽돌로 지은 집이 아니라 종이를 접어 세운 집입니다. 대구를 기반으로 포항·울산·부산을 오가며 작업해 온 1984년생 작가와 씨앗페 출품작 여덟 점을 읽습니다.
정서온 — 종이를 접어 세운 집, 흑연가루로 지은 방

〈형태놀이 #15〉에는 집이 두 채 서 있습니다.
지붕이 뾰족한 흰 집입니다. 그런데 벽돌이나 나무로 지은 집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한 장의 종이를 세로로 접어 세워 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지붕의 능선이 접힌 자국 그대로이고, 옆면에 생긴 회색 그림자가 종이의 두께만큼 얇습니다.
집이 선 자리는 청록색 바닥이고, 그 뒤는 노란 벽입니다. 화면 왼쪽 아래에는 흰 공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오른쪽으로는 대각선 하나가 지나가며 회색과 짙은 청록의 구역을 갈라 놓습니다.
표면은 매끄럽지 않습니다. 장지 위에 흑연가루를 얹어 만든 화면이라, 색면이 고르게 칠해진 대신 미세한 입자의 결이 남아 있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색이 '칠해진' 것이 아니라 '가라앉은' 것처럼 보입니다.
집이되 집이 아닌 것
정서온의 작업을 한 낱말로 요약해야 한다면 '집'입니다. 집이라는 형상을 매개로 공간과 사물,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탐구한다는 것이 여러 매체가 공통으로 전하는 이 작가의 주제입니다.
그런데 화면에 실제로 놓이는 집의 모양이 문제입니다. 〈형태놀이 #15〉의 두 채는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있는 집이 아닙니다. 지붕과 벽이라는 최소한의 기호만 남긴 입체이고, 문도 창도 없습니다. 크기를 가늠할 단서도 없어서, 손바닥에 올려놓는 물건인지 사람 키만 한 구조물인지 알 수 없습니다.
집의 기호만 남기고 집의 기능을 모두 덜어내면 무엇이 남는가 — 정서온의 화면은 그 질문 쪽에 서 있습니다. 실제 주거를 그리는 작업이 아니라, '집'이라는 말이 우리 머릿속에 불러오는 형태 자체를 다루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연작의 제목이 '형태놀이'입니다.
방 안의 사물들
2026년작 〈Play in the blue room #6〉에는 집 대신 도형이 놓입니다.

화면 가운데에 낮은 단이 쌓여 있습니다. 아래에서부터 분홍 상자, 그 위에 노란 판, 그 위에 민트색 판. 판 위에는 파란 정육면체가 놓이고 그 위로 흰 원뿔이 얹혀 있습니다. 옆에는 노란 블록 위에 흰 구가 하나 앉아 있습니다. 배경은 검은 사각형이고, 그 위와 옆으로 노란 면이 보입니다. 바닥은 청록색입니다.
바닥에 흩어진 두 물건이 눈에 띕니다. 왼쪽 아래에는 연필처럼 가느다란 흰 막대가 비스듬히 놓여 있고, 오른쪽에는 흰 철사가 반원 모양으로 휘어 서 있습니다.
이 화면은 미술 학교의 석고 데생대를 닮았습니다. 원뿔과 구와 정육면체는 형태를 익히기 위해 놓는 기본 도형이고, 흰 철사는 선이 공간 안에서 어떻게 휘는지를 보여주는 물건입니다. 그러나 정서온의 화면에서 이 도형들은 연습의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등장인물입니다. 각자 자기 단 위에 올라서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습니다.
〈형태놀이 #15〉의 두 집과 이 화면의 도형들을 나란히 놓으면 공통점이 보입니다. 둘 다 무엇인가가 놓여 있고, 놓인 것들 사이에 거리가 있습니다. 정서온의 다른 연작 제목이 〈너와 나 사이〉인 것도 같은 축입니다. 관계를 그리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두 개를 놓고 그 사이를 비우는 것입니다.
대구에서, 여러 도시로
정서온은 1984년생으로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합니다.
작업이 대구 안에만 머물지는 않았습니다. 2024년 10월 15일부터 23일까지 포항 문화예술팩토리 4층 아트갤러리(포항시 북구 삼호로 36)에서 개인전 **'2024 이동하는 세계'(WORLDS ON THE MOVE)**를 열었습니다. 같은 해 7월 18일부터 31일까지는 대구 남구 앞산갤러리에서 김세한과 함께 2인전 **'낮과 밤'**을 열었습니다. 한 해에 포항과 대구에서 각각 전시를 연 셈입니다.
2025년에는 울산으로도 갔습니다. 1월부터 2월 1일까지 갤러리 지앤(울산)에서 열린 그룹전 '2025 신진세력'(Roaring Young Painters Open House 新進勢力 2025)에 참여했습니다. 같은 해 대구예술발전소의 그룹전 **'불꽃에서 피어난 정원'**에는 빈집 프로젝트의 설치 작업으로 참여했습니다.
빈집이라는 소재가 이 작가의 주제와 맞물린다는 점을 지나칠 수 없습니다. 화면 위에서 집의 기호를 다루던 작업이, 실제로 비어 있는 집 안으로 들어간 경우입니다.
부산에서는 팀으로 움직였습니다. '부산 커넥티드' 신진작가 공모에 당선됐을 때 팀명은 **'간간(間間)'**이었고, 정서온과 윤미현 두 사람이 함께한 팀이었습니다. '사이 간(間)'을 두 번 쓴 이름입니다. 〈너와 나 사이〉라는 작품 제목과 같은 글자입니다.
전광판 위의 집
정서온의 작업 가운데 미술관 밖으로 나간 것도 있습니다.
아트랩범어(ArtLab:범어) 입주예술인 자격으로 미디어아트쇼 **'나의 확장, 로컬'**에 참여해, 대구 동성로 스파크랜드 외부 전광판에 '집'을 주제로 한 작품을 송출했습니다. 2022년부터 2023년에 걸친 일입니다.
장지 위에 흑연가루를 얹어 만드는 정적인 화면과, 번화가 건물 외벽의 전광판은 성격이 정반대입니다. 하나는 가까이 다가가야 결이 보이는 표면이고, 다른 하나는 멀리서 지나가며 보는 빛입니다. 같은 주제를 이 두 조건에 모두 올려놓았다는 것은, '집'이라는 형상이 매체에 상관없이 작동한다는 판단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보다 앞선 2022년에는 포항 갤러리M에서 열린 청년작가발굴 프로젝트 그룹전에 대구 기반 청년작가로 참여했습니다.
씨앗페 출품작 여덟 점
여덟 점 중 여섯 점이 장지 위에 흑연가루와 안료로 그린 작품이고, 두 점만 캔버스에 아크릴·펜·오일스틱입니다. 2023년부터 2026년까지의 작업이며, 전부 판매 중입니다.
〈형태놀이 #15〉 — 2023년, 장지 위에 흑연가루·안료, 65.2x50cm
여덟 점 가운데 두 번째로 큰 화면입니다. 앞에서 읽은 두 채의 흰 집이 이 작품입니다.

- 65.2x50cm · 장지 위에 흑연가루, 안료 · ₩1,3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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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 in the blue room #6〉 — 2026년, 장지에 흑연가루·안료, 50x65cm
여덟 점 가운데 가장 큰 화면이자 가장 최근작입니다. 앞에서 읽은 도형들의 방이 이 작품입니다.

- 50x65cm · 장지에 흑연가루, 안료 · ₩1,5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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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사이 #1 Between you and me〉 — 2023년, 장지 위에 흑연가루·안료, 32x40cm
제목이 관계를 직접 가리킵니다. #2와 짝을 이룹니다.

- 32x40cm · 장지 위에 흑연가루, 안료 · ₩6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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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사이 #2 Between you and me〉 — 2023년, 장지 위에 흑연가루·안료, 32x40cm
#1과 같은 해, 같은 규격, 같은 재료입니다. 두 점을 나란히 걸도록 만들어진 짝입니다.

- 32x40cm · 장지 위에 흑연가루, 안료 · ₩6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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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형태 #1〉 — 2025년, 장지 위에 흑연가루·안료, 40x32cm
〈너와 나 사이〉와 같은 크기를 세로로 세운 화면입니다. 제목의 '형태'가 〈형태놀이〉 연작과 이어집니다.

- 40x32cm · 장지 위에 흑연가루, 안료 · ₩6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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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형태 #2〉 — 2025년, 장지 위에 흑연가루·안료, 40x32cm
#1과 짝을 이루는 두 번째 점입니다.

- 40x32cm · 장지 위에 흑연가루, 안료 · ₩6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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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형태-흩어진 하나 (02/50)〉 — 2026년, 캔버스에 아크릴·펜·오일스틱, 20x20cm
여덟 점 가운데 가장 작은 화면이고, 장지가 아닌 캔버스를 쓴 두 점 중 하나입니다. 제목에 붙은 번호가 이 작품이 더 큰 묶음의 일부임을 알려줍니다.

- 20x20cm · 캔버스에 아크릴, 펜, 오일스틱 · ₩3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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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형태-흩어진 하나 (03/50)〉 — 2026년, 캔버스에 아크릴·펜·오일스틱, 20x20cm
같은 묶음의 세 번째 번호입니다. 02와 함께 들이면 번호가 이어집니다.

- 20x20cm · 캔버스에 아크릴, 펜, 오일스틱 · ₩3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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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와 흑연가루라는 선택
여덟 점의 재료 표기를 나란히 놓으면 이 작가의 재료 감각이 보입니다.
장지 위에 흑연가루, 안료 — 여섯 점.
장지는 한국화에서 쓰는 두꺼운 종이이고, 흑연가루는 연필심을 갈아 만든 가루입니다. 연필로 선을 긋는 대신 가루를 종이에 얹어 문지르면 선이 아니라 면이 생깁니다. 정서온의 색면이 칠해진 것이 아니라 가라앉은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색은 종이 표면 위에 올라앉는 것이 아니라 종이 안으로 스며듭니다.
이 선택은 화면의 온도를 정합니다. 유화나 아크릴로 같은 도형을 그리면 색이 앞으로 나오면서 화면이 단단해지지만, 장지와 흑연가루로 그리면 같은 도형이 뒤로 물러나면서 부드러워집니다. 집을 그리되 그 집이 견고한 건축물로 보이지 않는 이유의 절반은 재료가 만들었습니다.
나머지 두 점은 다릅니다. 20x20cm 캔버스에 아크릴과 펜과 오일스틱. 작은 정사각형에 세 가지 재료가 함께 올라가는 이 조합은 장지 작업과는 다른 밀도를 만듭니다. 한 작가를 두 방식으로 함께 들이고 싶은 분께는 장지 한 점과 캔버스 한 점을 짝지어 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정서온이 씨앗페에 여덟 점을 낸 이유는 자신이 금융 차별을 겪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간간(間間)'이라는 팀 이름으로 공모에 나서고, 빈집 프로젝트에 설치로 참여하고, 번화가 전광판에 집을 띄운 작가입니다. 혼자 완결하는 작업만 해온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있는 자리로 계속 나가본 사람입니다. 동료를 위한 자리에 여덟 점을 내놓는 일도 그 연장으로 읽힙니다.
정서온을 처음 만나는 분이라면 순서를 이렇게 잡아보시길 권합니다. 먼저 〈형태놀이 #15〉의 집 두 채가 종이를 접어 세운 모양이라는 것을 확인하십시오. 다음으로 〈너와 나 사이〉 두 점의 제목을 읽으십시오. 마지막으로 〈Play in the blue room #6〉의 바닥에 놓인 흰 철사를 보시면 됩니다. 도형들이 단 위에 올라간 뒤에도 바닥에 무엇인가가 남아 있다는 점이, 이 작가가 '사이'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말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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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정서온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1984년생으로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입니다. '집'이라는 형상을 매개로 공간과 사물,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Q. 최근 개인전은 언제 어디서 열렸나요? A. 2024년 10월 15일부터 23일까지 포항 문화예술팩토리 4층 아트갤러리(포항시 북구 삼호로 36)에서 개인전 '2024 이동하는 세계'(WORLDS ON THE MOVE)를 열었습니다. 같은 해 7월 18일부터 31일까지는 대구 남구 앞산갤러리에서 김세한과 2인전 '낮과 밤'을 열었습니다.
Q. '간간(間間)'은 무엇인가요? A. '부산 커넥티드' 신진작가 공모에 당선된 2인 팀의 이름입니다. 정서온과 윤미현 두 작가가 함께했습니다.
Q. 장지에 흑연가루로 그린다는 것은 어떤 작업인가요? A. 장지는 한국화에 쓰는 두꺼운 종이이고, 흑연가루는 연필심을 갈아 만든 가루입니다. 선을 긋는 대신 가루를 종이에 얹어 면을 만드는 방식이라, 색이 표면 위에 올라앉기보다 종이 안으로 스며든 것처럼 보입니다. 씨앗페 출품작 여덟 점 중 여섯 점이 이 재료입니다.
Q. 미술관 바깥 작업도 하나요? A. 아트랩범어(ArtLab:범어) 입주예술인 자격으로 미디어아트쇼 '나의 확장, 로컬'에 참여해 대구 동성로 스파크랜드 외부 전광판에 '집'을 주제로 한 작품을 송출했습니다(2022~2023). 2025년 대구예술발전소 그룹전 '불꽃에서 피어난 정원'에는 빈집 프로젝트의 설치 작업으로 참여했습니다.
Q. 정서온 작품 가격대는? A. 씨앗페에 나온 여덟 점은 ₩300,000(20x20cm 캔버스 작품 두 점), ₩600,000(32x40cm 장지 작품 네 점), ₩1,300,000(〈형태놀이 #15〉), ₩1,500,000(〈Play in the blue room #6〉)입니다.
Q. 정서온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정서온은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씨앗페에 참여했습니다.
Q. 씨앗페에 나온 정서온 작품은 몇 점인가요? A. 여덟 점입니다. 장지 위에 흑연가루·안료로 그린 여섯 점(〈형태놀이 #15〉, 〈너와 나 사이〉 #1·#2, 〈마음의 형태〉 #1·#2, 〈Play in the blue room #6〉)과 캔버스 작품 두 점(〈마음의 형태-흩어진 하나〉 02/50·03/50)입니다. 작가 페이지에서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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