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콘텐츠로 이동

이은주 — 반닫이를 벽에 걸다, 형광 아크릴 다리를 달고

작가를 만나다 · 발행 2026년 9월 18일 · 씨앗페

평양 반닫이의 백동 장석이 형광 노랑 선으로, 나무 다리가 투명 아크릴 판으로 바뀝니다. 한때 실물 반닫이를 수집했다가 공간이 없어 비워낸 작가가 그 가구를 회화로 다시 소유하는 방식 — 이은주의 BAN 연작을 작가 본인의 글과 화면으로 읽습니다.

이은주 — 반닫이를 벽에 걸다, 형광 아크릴 다리를 달고

이은주, 〈BAN #15-1〉, 캔버스에 아크릴과 아크릴 패널, 65.1 x 62.0cm — 코발트블루 바탕에 은빛 장석이 놓인 반닫이 정면, 아래로 형광 노랑 아크릴 다리가 캔버스 밖으로 뻗어 있다
이은주, 〈BAN #15-1〉, 캔버스에 아크릴과 아크릴 패널, 65.1 x 62.0cm — 코발트블루 바탕에 은빛 장석이 놓인 반닫이 정면, 아래로 형광 노랑 아크릴 다리가 캔버스 밖으로 뻗어 있다

그림이 끝나는 자리에서 다리가 하나 더 나옵니다.

〈BAN #15-1〉의 캔버스 아래쪽에는 형광 노랑 아크릴 패널이 붙어 있습니다. 가구의 다리 모양으로 잘린, 빛이 통하는 판입니다. 그림은 벽에 걸리는데 그 그림에는 다리가 달려 있습니다. 이은주가 반닫이를 다루는 방식이 이 한 군데에 다 들어 있습니다.

수집했다가 비워낸 사람

이은주는 씨앗페에 제출한 작가 노트에서 이 작업이 어디서 왔는지를 직접 밝혔습니다.

"이 작업은 과거 내가 반복해온 소비와 수집, 비움과 전환의 사유적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한때 실물 반닫이를 열정적으로 수집했으나, 공간의 한계로 인해 결국 비워낼 수밖에 없었던 경험이 있다. 소유의 욕망과 내려놓음의 현실. 그 비움의 허무함을 이미지라는 매개를 통해 다시 소유하는 행위는 단순한 미학적 변주를 넘어, 일종의 '전환된 수집'이 된다." — 작가가 씨앗페에 제출한 작업 노트

그러니까 이 연작은 옛 가구를 소재로 고른 그림이 아닙니다. 가지고 있다가 놓아준 물건을 그림으로 다시 가지는 일입니다. 실물 반닫이는 부피를 차지하지만 벽에 걸린 반닫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형광 아크릴 다리는 그 사실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드러냅니다 — 이것은 가구의 다리가 아니라 가구의 다리를 흉내 낸 얇은 판이라고.

작가가 자기 삶을 설명하는 방식도 같은 구조입니다.

"소비와 트렌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서도 본질적인 것을 갈망하는 내 모습은 끝없는 모순이다." — 작가가 씨앗페에 제출한 작업 노트

그리고 이어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왜 나는 이토록 변화를 쫓으면서도 옛것에 끌리는가?"

작가는 그 답을 "불안정한 현대적 삶 속에서 영속성과 안정감을 찾으려는 본능"으로 짐작해 둡니다. 확정하지 않고 짐작으로 남겨둔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모순을 해소한 사람의 글이 아니라 모순 안에 계속 서 있는 사람의 글이기 때문입니다.

작업의 문법 — 장석은 남기고, 색은 바꾼다

화면을 보면 작가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꿨는지가 또렷합니다.

지킨 것은 구조입니다. 반닫이 정면의 좌우 대칭, 위아래를 가르는 수평선(반만 여닫는 가구라 '반닫이'입니다), 모서리를 감싸는 ㄱ자 장석, 마름모 국화정, 앞바탕에 매달린 손잡이 고리 두 개. 〈BAN #15-1〉에는 이 요소가 하나도 빠짐없이 들어 있습니다. 실물 가구의 도면을 옮겨 놓은 것처럼 정확합니다.

바꾼 것은 색과 재료의 감각입니다. 백동 장석 자리에는 은빛 면이 들어가고, 그 위로 형광 노랑 선이 지나갑니다. 바탕은 짙은 코발트블루. 화면을 가로지르는 수평선은 주황과 형광 노랑이 번갈아 끊기며 이어집니다. 옛 가구의 색 온도가 아니라 도시의 간판과 안전 표지의 색 온도입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문양 안쪽입니다. 중앙 장석에 새겨진 것을 들여다보면, 전통 문양의 윤곽 안에 고층 아파트 건물들이 들어 있습니다. 새와 구름과 바위가 있어야 할 자리에 창이 격자로 난 건물이 서 있습니다. 양옆 손잡이 아래에는 얼굴이 하나씩 — 눈을 감고 웃는 동그란 얼굴이 풀잎 관을 쓰고 앉아 있습니다. 작가가 노트에 쓴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시각적 이야기"는 은유가 아니라 화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전통 문양의 테두리 안에 지금 사는 도시가 들어앉았습니다.

작가는 각각의 작품이 "독립적인 회화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모듈(Module)'처럼 작동한다"고 씁니다. 관객이 고르고 다시 배치하는 조합이 "소유와 해체, 수집과 비움"의 은유라는 것입니다. 제목이 〈BAN #15-1〉, 〈BAN #15-5〉, 〈BAN #4-1〉처럼 번호로만 붙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름이 아니라 번호이기 때문에 재배치가 가능합니다.

회화를 전공하고 디자인 업계에서 오래 일했다는 이력도 작가 본인이 밝힌 것인데, 화면이 그 이력을 설명 없이 보여줍니다. 장석의 위치를 도면처럼 재는 정확성은 디자인 쪽이고, 그 위에 올린 색의 과감함은 회화 쪽입니다.

작가가 제출한 이력에 따르면 2022년부터 서울·판교·동탄 등지에서 개인전을 이어왔고, 최근 개인전 제목들은 〈반반하다:반할만한 반닫이〉, 〈왕이 될 欌인가〉, 〈The 반닫이〉처럼 말장난을 품고 있습니다. 진지한 재해석을 무겁게만 다루지 않겠다는 태도가 제목에서부터 읽힙니다.

씨앗페 출품작 3점 읽기

세 점 모두 2025년작이고, 매체는 "캔버스에 아크릴과 아크릴 패널"로 같습니다. 즉 세 점 다 아크릴 패널 다리가 달린 '벽에 거는 가구'입니다. 다른 것은 크기와 색 조합입니다.

〈BAN #15-1〉 — 65.1 x 62.0cm, ₩1,500,000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면. 코발트블루와 은색, 형광 노랑의 조합입니다. 세 점 중 문양이 가장 복잡하고, 앞서 말한 '전통 문양 안의 아파트'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다리는 형광 노랑.

이은주, 〈BAN #15-1〉, 캔버스에 아크릴과 아크릴 패널, 65.1 x 62.0cm, ₩1,500,000
이은주, 〈BAN #15-1〉, 캔버스에 아크릴과 아크릴 패널, 65.1 x 62.0cm, ₩1,500,000
  • 65.1 x 62.0cm · 캔버스에 아크릴과 아크릴 패널 · 2025 · ₩1,500,000
  • 작품 페이지 →

〈BAN #15-5〉 — 53.0 x 61.0cm, ₩1,500,000

같은 15번대지만 색이 완전히 다릅니다. 짙은 자주 바탕에 금색 면, 그 경계마다 형광 핑크 선과 패널이 들어갑니다. 중앙 문양은 모란 잎이 겹쳐 오르는 형상이고 그 아래쪽에 웃는 얼굴이 하나 들어앉아 있습니다. 상단 앞바탕 장석은 박쥐 모양으로 펼쳐집니다. 다리는 형광 핑크 투명 패널입니다. 금과 자주라는 가장 전통적인 배색에 형광 핑크를 얹었을 때 무슨 일이 생기는지를 보는 작품입니다.

이은주, 〈BAN #15-5〉, 캔버스에 아크릴과 아크릴 패널, 53.0 x 61.0cm, ₩1,500,000
이은주, 〈BAN #15-5〉, 캔버스에 아크릴과 아크릴 패널, 53.0 x 61.0cm, ₩1,500,000
  • 53.0 x 61.0cm · 캔버스에 아크릴과 아크릴 패널 · 2025 · ₩1,500,000
  • 작품 페이지 →

〈BAN #4-1〉 — 33.2 x 29.1cm, ₩450,000

세 점 중 가장 작고, 문양도 가장 간결합니다. 보라 바탕에 금색 면 네 장, 중앙에 둥근 앞바탕과 아래로 내려온 자물쇠 형태, 파란 손잡이 고리. 다리는 맑은 파란 아크릴입니다. 장식을 덜어내자 반닫이의 골격만 남았고, 그래서 이 작가가 무엇을 기하학으로 보고 있는지가 가장 잘 보입니다. 처음 한 점을 들이려는 분께 권합니다.

이은주, 〈BAN #4-1〉, 캔버스에 아크릴과 아크릴 패널, 33.2 x 29.1cm, ₩450,000
이은주, 〈BAN #4-1〉, 캔버스에 아크릴과 아크릴 패널, 33.2 x 29.1cm, ₩450,000
  • 33.2 x 29.1cm · 캔버스에 아크릴과 아크릴 패널 · 2025 · ₩450,000
  • 작품 페이지 →

세 점을 나란히 걸면 같은 가구가 세 번 다른 색으로 나타납니다. 작가가 말한 '모듈'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이은주 작가 페이지에서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이은주가 씨앗페에 세 점을 낸 이유는 자신이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비워낸 것을 다시 이미지로 소유하는 작업을 해온 사람이, 그 이미지를 다른 사람의 자리를 만드는 데 내놓았습니다. 수집과 비움 사이에서 움직여온 작가에게는 자연스러운 한 수로 보입니다.

이은주 작가 페이지에서 세 작품 보기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함께 읽으면 좋은 글들을 소개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이은주 작가는 어떤 작업을 하나요? A. 전통 평양 반닫이의 구조와 장석을 현대적 색과 재료로 재해석하는 회화 작업을 합니다. 작가 본인의 설명에 따르면 "캔버스 위에 아크릴로 제작한 다리를 더해 '벽에 걸 수 있는 가구'로 전환된 작업"이며,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특징입니다.

Q. '반닫이'가 무엇인가요? A. 앞면 위쪽 절반만 여닫도록 만든 전통 수납 가구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반(半)닫이'입니다. 이은주의 화면에서 위아래를 가르는 수평선이 바로 그 여닫는 경계선이고, 좌우 대칭의 금속 장석과 손잡이 고리는 실물 가구의 구조를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Q. 왜 형광색을 쓰나요? A. 작가는 작업 노트에서 "화려한 표면과 강렬한 색감, 간결한 형태로 현대적 감각을 반영하면서도 오래된 것들의 본질적 가치를 재해석한다"고 밝혔습니다. 도시의 속도에 민감하게 반응해온 자신과 정반대 정서를 가진 옛 가구, 그 둘을 한 화면에 두는 방식이 색의 대비입니다.

Q. 작품에 달린 다리는 실제로 무엇인가요? A. 아크릴 패널입니다. 매체 표기가 "캔버스에 아크릴과 아크릴 패널"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가구 다리 모양으로 자른 반투명 패널이 캔버스 아래에 붙어 있어, 벽에 걸면 그림 밑으로 빛이 통하는 다리가 뻗어 나옵니다.

Q. 이은주 작품 가격대는? A. 씨앗페에 나온 세 점은 ₩450,000(〈BAN #4-1〉, 33.2 x 29.1cm)과 ₩1,500,000(〈BAN #15-1〉 65.1 x 62.0cm, 〈BAN #15-5〉 53.0 x 61.0cm)입니다.

Q.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이은주는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참여했습니다.

관련 매거진

씨앗페

공유하기

새 작품과 이야기, 메일로 받아보세요

새 작품 소식, 작가 이야기, 상호부조 기금 소식을 보내드립니다.

구독하기를 누르면 이메일 수집·발송(뉴스레터 목적)에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돼요. 개인정보처리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