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모비의 화면은 만져질 것 같습니다. 수천 개의 작은 색점이 표면에서 솟아 있고, 그 아래로 붓질이 비쳐 보입니다. 2025년 갤러리 도스 개인전과 씨앗페 출품작 여덟 점을 실제 화면을 들여다보며 읽습니다.
심모비 — 화면 위에 세운 색점의 숲, 연옥이라는 이름의 작업실

〈9505 SIM_Memory〉를 정면에서 보면 화면 전체가 점입니다.
파랑·보라·노랑·분홍·연두의 작은 점이 화면을 빈틈없이 덮고 있습니다. 평평하게 찍힌 점이 아니라 표면에서 솟아오른 점입니다. 옆에서 빛이 들어오면 점마다 그림자가 생길 만큼 두껍게 얹혀 있습니다. 위쪽으로 갈수록 보라와 검푸른 점이 많아져 어두워지고,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점의 밀도가 성글어지면서 그 아래 깔린 분홍·하늘색·주황의 붓질이 드러납니다.
점의 숲 아래에 다른 그림이 있다는 뜻입니다. 45.5x37.9cm의 작은 캔버스 안에서 두 개의 층이 동시에 보입니다.
연옥이라는 이름
심모비(SIM_Moby)의 작업 전체를 묶는 말은 '연옥(Purgatory)'입니다. 천국과 지옥의 중간, 생과 사가 결정되기 이전의 장소입니다.
출발점이 되는 문장은 작가가 어릴 때 얻은 깨달음이었다고 밝혀져 있습니다.
"하나의 생명을 낳는 것은 하나의 죽음을 낳는 것과 같다." — 심모비 개인전 'SIM_Purgatory 연옥 : 회화의 윤회' 작가노트, 2025년 7월 23일
태어남과 죽음이 같은 사건의 앞뒤라면, 그 사이에 생사의 섭리가 작용하지 않는 자리를 따로 마련할 수 있는가 — 심모비의 연옥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세워진 공간입니다. 삶도 죽음도 아니어서 오히려 자유로운 대안 공간입니다.
작업 방식이 세계관을 그대로 따릅니다. 물리적 재료로 스케치를 하고, 그것을 디지털 페인팅으로 옮기고, 다시 인쇄해 물성을 부여하고, 그 인쇄물을 오려 콜라주로 재조합합니다. 작가는 이 순환을 **'회화의 윤회'**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각 단계가 앞 단계를 파괴한다는 점입니다. 디지털로 옮기는 순간 스케치는 물리적으로 소멸하고, 콜라주로 오리는 순간 인쇄물은 형태를 잃습니다. 보통의 작업 과정에서는 완성으로 향하는 축적이 일어나지만, 이 작업에서는 매 단계가 죽음이면서 동시에 다음 생입니다. 과정을 설명하는 말과 작품이 담는 세계관이 같은 구조를 갖는 흔치 않은 경우입니다.
두 화면, 두 가지 밀도
씨앗페에 들어온 여덟 점은 크게 두 계열입니다. 〈SIM_Memory〉는 캔버스에 아크릴로 채색한 작품이고, 나머지 일곱 점은 모두 '믹스미디어 이후 아크릴 스틱 콜라주, 아크릴 채색'이라는 재료 표기를 답니다.
콜라주 계열 한 점을 직접 보면 그 표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9404 SIM_Visibility〉는 화면이 위아래로 뚜렷하게 나뉩니다.
위쪽 3분의 2는 세로로 길게 선 수많은 색 조각이 커튼처럼 촘촘히 늘어서 있습니다. 조각마다 빨강·파랑·노랑·초록의 작은 색편이 끊겨 있어, 멀리서 보면 바랜 격자무늬가 어른거리고 가까이서 보면 끊어진 색점의 행렬입니다. 조각과 조각 사이에 아주 가느다란 흰 틈이 보입니다.
아래쪽 3분의 1은 완전히 다릅니다. 파랑·주황·노랑·초록의 굵은 붓질이 물결처럼 휘돌고, 그 위에 동그란 점들이 줄지어 박혀 있습니다. 위쪽이 세로로 서 있다면 아래쪽은 가로로 흐릅니다.
한 화면 안에서 두 가지 시간이 만납니다. 위쪽은 이미 완성됐던 이미지가 잘려 다시 세워진 자리이고, 아래쪽은 붓이 지나간 자리입니다. 작가가 말하는 '해체 뒤의 재결합'이 무엇을 가리키는지가 이 경계선에서 눈에 보입니다.
앞서 본 〈9505 SIM_Memory〉와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더 분명해집니다. 〈SIM_Memory〉는 점이 화면 전체를 덮어 아래층을 거의 다 가리고, 〈SIM_Visibility〉는 위아래를 갈라 두 방식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두 점을 함께 들이면 같은 손이 만든 서로 다른 밀도를 나란히 볼 수 있습니다.
2025년 7월, 갤러리 도스
심모비의 연옥 세계관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2025년 7월이었습니다.
개인전 'SIM_Purgatory 연옥 : 회화의 윤회'가 2025년 7월 23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 도스에서 열렸습니다. 갤러리 도스의 2025년 하반기 '오감의 투영' 기획공모 선정작가전이었습니다.
기획공모 선정이라는 형식이 중요합니다. 초대전이 갤러리가 이미 아는 작가를 부르는 방식이라면, 기획공모는 제출된 계획서가 심사를 통과해야 열리는 자리입니다. 연옥이라는 다소 낯선 세계관과 디지털·인쇄·콜라주를 오가는 작업 방식이 심사의 문을 통과했다는 뜻입니다.
국외 이력도 같은 시기에 이어졌습니다. 2023년 이탈리아 플로렌스 컨템퍼러리 갤러리의 **<50 Artists To Watch>**에 선정됐고, 2024년에는 일본 카메야마 트리엔날레 출전작가로 참여했습니다. 2022년에는 제58회 대종상영화제 홍보대사를 맡기도 했습니다.
NFT를 지나온 작가
심모비의 이력에는 미술계 바깥에서 들어온 통로가 하나 더 있습니다. NFT입니다.
2022년,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NFT를 통해 한국에서 전시 참여를 할 수 있게 되어 뜻 깊고 창조적 예술과 창조적 기술의 융합으로 탄생한 NFT 시장이 작가와 팬 분들 사이 빠르고 적극적인 소통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 아이티비즈, 2022년 6월 27일
이어지는 말이 더 구체적입니다.
"NFT 시장 확대를 계기로 해외 거주 작가들의 국내 활동이 한층 더 활발해졌으면 좋겠다" — 아이티비즈, 2022년 6월 27일
'해외 거주 작가들의 국내 활동'이라는 표현에 이 발언의 자리가 들어 있습니다. 작품을 물리적으로 옮기지 않고도 전시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렸다는 것, 그것이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단계를 거쳐 다시 물성으로 돌아오는 심모비의 작업 방식과, 물리적 이동 없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에 대한 이 발언은 같은 방향을 봅니다. 화면이 어디에 있든 이미지는 도착한다는 감각입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작품은 결국 인쇄되고 오려지고 아크릴 스틱으로 마감되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두께를 가진 물건으로 돌아옵니다.
씨앗페 출품작 여덟 점
전부 45.5cm 안팎의 작은 화면입니다. 2024년부터 2026년까지의 작업이고, 세 점은 이미 판매가 끝났습니다.
〈9505 SIM_Memory〉 — 2025년,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45.5x37.9cm
여덟 점 중 유일하게 콜라주 없이 캔버스에 아크릴만으로 그린 작품이자, 가장 작은 화면입니다. 앞에서 읽은 점의 숲이 이 작품입니다.

- 45.5x37.9cm ·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 ₩5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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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04 SIM_Visibility〉 — 2024년, 믹스미디어 이후 아크릴 스틱 콜라주, 아크릴 채색, 45.5x53cm
여덟 점 가운데 가장 이른 작품입니다. 앞에서 읽은 위아래 분할이 이 화면입니다.

- 45.5x53cm · 믹스미디어 이후 아크릴 스틱 콜라주, 아크릴 채색 · ₩8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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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05 SIM_Visibility〉 — 2025년, 믹스미디어 이후 아크릴 스틱 콜라주, 아크릴 채색, 45.5x53cm
번호가 이어지는 연작 가운데 한 점입니다.

- 45.5x53cm · 믹스미디어 이후 아크릴 스틱 콜라주, 아크릴 채색 · ₩8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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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07 SIM_Visibility〉 — 2025년, 믹스미디어 이후 아크릴 스틱 콜라주, 아크릴 채색, 45.5x53cm
같은 해 같은 규격의 연작입니다.

- 45.5x53cm · 믹스미디어 이후 아크릴 스틱 콜라주, 아크릴 채색 · ₩8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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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10 SIM_Visibility〉 — 2026년, 믹스미디어 이후 아크릴 스틱 콜라주, 아크릴 채색, 45.5x53cm
여덟 점 가운데 가장 최근작입니다.

- 45.5x53cm · 믹스미디어 이후 아크릴 스틱 콜라주, 아크릴 채색 · ₩8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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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06 SIM_Visibility〉 — 2025년 · 판매 완료

- 45.5x53cm · 믹스미디어 이후 아크릴 스틱 콜라주, 아크릴 채색 · 판매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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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08 SIM_Visibility〉 — 판매 완료

- 45.5x53cm · 믹스미디어 이후 아크릴 스틱 콜라주, 아크릴 채색 · 판매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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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09 SIM_Visibility〉 — 판매 완료

- 45.5x53cm · 믹스미디어 이후 아크릴 스틱 콜라주, 아크릴 채색 · 판매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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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붙은 네 자리 숫자
심모비의 작품 제목은 네 자리 숫자로 시작합니다. 9404, 9405, 9406, 9407, 9408, 9409, 9410, 그리고 9505.
여덟 점 가운데 일곱 점이 94로 시작하고 한 점만 95로 시작합니다. 94로 시작하는 일곱 점은 전부 'SIM_Visibility'이고, 95로 시작하는 한 점만 'SIM_Memory'입니다. 숫자의 앞 두 자리가 연작을, 뒤 두 자리가 그 안의 순번을 가리키는 방식으로 읽힙니다.
작가가 자기 작품에 이름 대신 번호를 붙이는 방식은 작업을 개별 사건이 아니라 이어지는 목록으로 다루겠다는 뜻입니다. 연옥이 '거쳐 가는 자리'라면, 번호가 붙은 화면들도 완결이 아니라 통과 지점입니다.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심모비가 씨앗페에 여덟 점을 낸 이유는 자신이 금융 차별을 겪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여덟 점 가운데 세 점이 이미 판매됐다는 사실은 이 작가의 화면이 실제로 사람을 붙든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심모비를 처음 만나는 분이라면 순서를 이렇게 잡아보시길 권합니다. 먼저 〈9505 SIM_Memory〉를 화면 가까이서 보십시오. 점이 평평한 무늬가 아니라 솟아오른 물건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다음으로 〈9404 SIM_Visibility〉의 위아래 경계를 보십시오. 잘려 다시 세워진 이미지와 붓이 지나간 자리가 맞닿아 있습니다. 그 경계선이 '회화의 윤회'라는 말이 가리키는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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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심모비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천국과 지옥의 중간, 생과 사가 결정되기 이전의 장소인 '연옥(Purgatory)'을 작업의 세계관으로 삼는 작가입니다. 스케치 → 디지털 페인팅 → 인쇄 → 콜라주 재조합의 순환 과정을 '회화의 윤회'라고 부릅니다. SIM_Moby라는 이름으로도 표기합니다.
Q. '회화의 윤회'가 무슨 뜻인가요? A. 물리적 재료로 스케치를 하고, 그것을 디지털 페인팅으로 옮기고, 다시 인쇄해 물성을 주고, 그 인쇄물을 오려 콜라주로 재조합하는 순환을 가리킵니다. 각 단계가 앞 단계를 해체하면서 다음 단계를 낳는 구조라 작가가 '윤회'라는 말을 썼습니다.
Q. 최근 개인전은 언제 어디서 열렸나요? A. 개인전 'SIM_Purgatory 연옥 : 회화의 윤회'가 2025년 7월 23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 도스에서 열렸습니다. 갤러리 도스의 2025년 하반기 '오감의 투영' 기획공모 선정작가전이었습니다.
Q. 국외 이력은? A. 2023년 이탈리아 플로렌스 컨템퍼러리 갤러리의 <50 Artists To Watch>에 선정됐고, 2024년 일본 카메야마 트리엔날레 출전작가로 참여했습니다. 2022년에는 제58회 대종상영화제 홍보대사를 맡았습니다.
Q. '믹스미디어 이후 아크릴 스틱 콜라주'는 어떤 재료인가요? A. 씨앗페 출품작 여덟 점 중 일곱 점의 재료 표기입니다. 실제 화면에서는 세로로 길게 선 색 조각들이 촘촘히 늘어서 커튼 같은 층을 이루고, 그 아래로 굵은 붓질과 솟아오른 점들이 보입니다. 나머지 한 점 〈9505 SIM_Memory〉는 캔버스에 아크릴로만 채색한 작품입니다.
Q. 심모비 작품 가격대는? A. 씨앗페에 나온 여덟 점 가운데 판매 중인 다섯 점은 ₩500,000(〈9505 SIM_Memory〉)과 ₩800,000(〈SIM_Visibility〉 연작 네 점)입니다. 〈9406〉·〈9408〉·〈9409〉는 판매가 끝났습니다.
Q. 심모비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심모비는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씨앗페에 참여했습니다.
Q. 씨앗페에 나온 심모비 작품은 몇 점인가요? A. 여덟 점입니다. 〈SIM_Visibility〉 연작 일곱 점(9404·9405·9406·9407·9408·9409·9410)과 〈9505 SIM_Memory〉 한 점이며, 모두 45.5cm 안팎의 작은 화면입니다. 작가 페이지에서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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