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종묘공원에서 「입김」과 함께 아방궁 프로젝트를 벌였고, 같은 해 봉화 산골로 들어갔습니다. 여성독립운동가와 바리데기의 서사를 복원해온 화가 류준화의 40년을 따라 읽습니다.
류준화 — 종묘를 아방궁이라 부른 사람, 지워진 여성을 다시 그리다

1999년, 류준화에게 두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졌습니다. 여성미술연구회 「입김」의 회원으로 종묘공원 아방궁 프로젝트에 참여한 일입니다. 조선 왕조의 위패를 모신 공간, 한국에서 가장 남성적인 계보가 보관된 자리를 여성들이 '아방궁'이라 고쳐 부른 작업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정반대 방향이었습니다. 같은 해 그는 경북 봉화군 명호면 풍호리, 비나리마을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거기 있습니다.
한 해에 일어난 두 일이 서로 어긋나 보인다면, 그건 이 작가를 절반만 본 것입니다. 종묘에서 한 일도 산골에서 하는 일도 방향은 같습니다. 남이 정해놓은 자리 바깥에 자기 자리를 만드는 것.
씨앗페에 들어온 류준화의 작품은 두 점입니다. 〈녹색발〉(2015)과 〈책의 무게〉(2023). 여덟 해의 간격을 둔 두 점이, 그 사이 이 작가가 어디로 걸어갔는지를 보여줍니다.
1963년 안동에서, 1986년 미술로
류준화는 1963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 기록과 전남일보가 함께 그렇게 적고 있습니다.
1986년 경북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서양화과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졸업하던 1986년에 이미 단체전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컨슈머타임스와 에너지경제, 국제뉴스가 공통으로 전하는 그의 이력은 지금까지 단체전 130여 회, 개인전 20회입니다. 40년 가까이 거의 해마다 여러 차례 전시장에 나왔다는 뜻입니다.
이력의 밀도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력이 한 방향을 향해 쌓였다는 점입니다. 개인전 제목을 시간 순서로 늘어놓으면 그 방향이 눈에 들어옵니다.
- 《그녀의 침묵》 — 2001, 인사미술공간
- 《소녀야화》 — 2007, 학고재아트센터
- 《따뜻한 강》 — 2009, 가나아트센터 미루
- 《대지의 꽃》 — 2012, 관훈갤러리
- 《바다로 가는 강》 — 2015, 자하미술관
- 《소녀, 꽃을 바치다》 — 2017, 금오공대갤러리, 구미
그녀, 소녀, 강, 꽃, 대지, 바다. 20년치 개인전 제목에 남성 명사가 하나도 없습니다. 첫 제목이 《그녀의 침묵》이었고, 그 뒤로 이 작가가 해온 일은 그 침묵에 자꾸 말을 붙이는 일이었습니다.
「입김」과 아방궁 — 1999년의 사건
류준화의 이름이 한국 여성주의 미술사에 놓이는 자리는 「입김」입니다. 여성미술연구회 「입김」의 회원으로 1999년 종묘공원 아방궁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씨앗페 사내 자료와 웹진 『Zine Seminar』의 입김 인터뷰가 함께 확인합니다.
아방궁이라는 이름 자체가 이 프로젝트의 방법입니다. 진시황의 궁궐 이름으로 알려진 그 단어를 여성의 자궁을 가리키는 말로 다시 읽고, 왕조의 위패가 모셔진 종묘 옆에 놓았습니다. 개인 작업이 아니라 집단의 작업이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한 사람의 화폭 안에서 벌어지는 상징의 전복이 아니라, 여러 명이 실제 장소로 나가서 벌인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씨앗페 작가 소개는 이 시도를 "한국 여성주의 미술사에서 가장 상징적이고 저항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고 적습니다. 평가의 무게를 떠나 분명한 것은 하나입니다. 이 작가는 전시장에서만 작업한 적이 없습니다.
민중미술의 흐름을 읽어온 분이라면, 1980~90년대 한국 미술이 거리와 광장으로 나가던 그 흐름 안에 「입김」의 자리도 함께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보실 겁니다. 다만 「입김」이 겨눈 것은 국가 권력만이 아니라, 그 권력이 기대고 있던 성별의 질서이기도 했습니다.
산골로 간 이유
같은 1999년, 류준화는 봉화 비나리마을에 정착합니다. 컨슈머타임스와 에너지경제, 경북일보가 공통으로 전하는 사실이고, 그는 그곳 명호 산골미술관에서 정기적으로 전시를 열어왔습니다.
미술계의 지도로 보면 서울에서 봉화는 아주 먼 자리입니다. 화랑과 미술관과 비평이 모여 있는 곳에서 멀어지는 선택이니까요. 그런데 이 작가의 작업이 처음부터 '중심에서 밀려난 자리'를 다뤄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이동은 이력의 단절이 아니라 이력의 연장으로 읽힙니다. 게다가 그는 그 뒤로도 개인전 20회와 단체전 130여 회를 이어갔습니다. 물러난 것이 아니라 근거지를 옮긴 것입니다.
산골미술관이라는 형태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사람이 그림을 보러 오는 곳에 그림을 걸어두는 대신, 그림이 있는 곳으로 사람이 오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종묘에서 하던 일과 성질이 같습니다 — 미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미술계가 정하도록 두지 않는 것.
2021년 10월 15일 컨슈머타임스 인터뷰에서 그는 작업의 한 모티프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식탁이기도 하고, 책상, 선반이기도 한 테이블은 마치 제단 같아서 함께 살아가고, 존중하며 버티고,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나누는 탁자 위의 화분처럼 서로 감사하자"
이 문장 안에 이 작가의 문법이 거의 다 들어 있습니다. 밥을 먹는 상, 글을 쓰는 상, 물건을 얹는 선반이 모두 같은 하나의 테이블이고, 그것이 제단이라고 했습니다. 성스러운 것을 일상 바깥에서 찾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종묘를 아방궁이라 부른 사람이 밥상을 제단이라 부르는 것은 같은 일입니다. 어느 쪽이든 '어디에 신성이 있느냐'를 다시 정하는 문장이니까요.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버티고'입니다. 함께 살아가고, 존중하며 버티고. 봉화에서 20년 넘게 작업해온 사람의 동사로 읽으면 이 단어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바리데기와 여성독립운동가 — 복원의 작업
류준화의 최근 작업은 두 개의 이름으로 요약됩니다. 바리데기, 그리고 여성독립운동가.
바리데기는 버려진 딸이 저승까지 가서 약수를 구해 부모를 살리는 무가(巫歌)의 주인공입니다. 태어나자마자 딸이라는 이유로 버려졌고, 그런데도 끝내 살리는 쪽의 일을 합니다. 한국 신화에서 여성 주체가 가장 멀리까지 걸어가는 이야기이고, 동시에 그 여성이 왜 버려졌는지를 설명하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여성독립운동가는 같은 구조가 역사에서 반복된 자리입니다. 류준화의 연작 《33인 여성독립운동가에게 바치다》는 그 이름들을 다시 그립니다. 이 전시는 서울여담재에서 열려 광복절 기간까지 무료로 개방됐다고 아르코예술기록원 자료와 디스커버리뉴스, 뉴스1이 전합니다.
숫자 33이 이 연작의 제목에 들어간 것은 그 자체로 한 문장입니다.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은 남성이었고, 그 숫자를 그대로 가져와 여성독립운동가 33인으로 채운 제목이니까요. 빈칸을 지적하는 대신 빈칸을 메우는 방식입니다.
이 작업은 지금도 이어집니다. 2026년 광주 이강하미술관에서 열린 단체전 《결연한 기록들》은 3·1만세운동 107주년을 기념해 전남도립미술관·학고재·윤석남스튜디오가 공동으로 협력한 자리였고, 류준화는 윤석남·김희상과 함께 3인전으로 참여했습니다. 광주매일신문과 전남일보가 이 전시를 보도했습니다.
작업은 공공 소장으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남미술관이 《윤형숙과 제자들》(2023)을, 서울시립미술관이 《대지의 꽃》(2012)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2012년에는 헥사곤에서 『한국현대미술선 012 류준화』가 나왔습니다.
씨앗페 출품작 두 점 읽기
씨앗페에 들어온 류준화의 작품은 두 점입니다. 2015년작과 2023년작으로, 여덟 해가 벌어져 있습니다. 매체는 둘 다 캔버스 회화지만 세부가 다릅니다. 한 점은 아크릴에 콘테와 석회를 함께 썼고, 한 점은 아크릴만 썼습니다.
〈녹색발〉 — 2015년, 캔버스위에 아크릴, 콘테, 석회, 60.6x72.7cm
재료 목록이 눈에 띕니다. 아크릴 물감에 콘테와 석회가 함께 올라갔습니다. 석회는 회화의 안료라기보다 벽에 바르는 재료에 가깝고, 콘테는 선을 긋는 도구입니다. 칠하는 것과 긋는 것과 바르는 것이 한 화면에 함께 있는 셈입니다. 두 점 가운데 큰 화면이고, 《바다로 가는 강》(자하미술관)이 열린 해의 작업이기도 합니다.

- 60.6x72.7cm · 캔버스위에 아크릴, 콘테, 석회 · ₩5,000,000
- 작품 페이지 →
〈책의 무게〉 — 2023년, 캔버스에 아크릴, 38x45.5cm
제목이 사물의 이름이 아니라 사물의 무게입니다. 책이 아니라 책의 무게. 앞서 읽은 인터뷰에서 그가 테이블을 두고 "식탁이기도 하고, 책상, 선반이기도 한"이라고 말했던 것과 함께 놓이는 제목입니다. 책상 위에 놓인 것과 그것이 누르는 힘을 같이 보는 시선입니다. 두 점 중 작은 화면이라 서재나 책상 곁처럼 가까이서 보는 자리에 어울립니다.

- 38x45.5cm · 캔버스에 아크릴 · ₩2,800,000
- 작품 페이지 →
두 점을 나란히 놓으면 봉화에서의 시간이 보입니다. 류준화 작가 페이지에서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미술사에서의 자리
류준화를 어디에 놓아야 할지는 「입김」이라는 좌표가 알려줍니다. 1999년 종묘공원 아방궁 프로젝트에 참여한 여성미술연구회의 회원이고, 그 뒤로 여성의 서사를 복원하는 작업을 30년 가까이 이어왔습니다.
이 작가의 이력에서 눈여겨볼 지점은 전환이 아니라 지속입니다. 2001년 《그녀의 침묵》에서 2026년 《결연한 기록들》까지, 질문의 대상이 바뀐 적은 있어도 질문 자체가 바뀐 적은 없습니다. 누구의 이야기가 기록에서 빠져 있는가, 그 사람은 어떻게 생겼는가.
방법은 두 갈래로 갈라져 있습니다. 하나는 신화입니다 — 바리데기처럼 이미 이야기 안에 있지만 제대로 읽히지 않은 여성을 다시 읽는 것. 다른 하나는 역사입니다 — 여성독립운동가처럼 실제로 있었지만 기록에서 밀려난 사람을 다시 그리는 것. 신화와 역사는 보통 반대말로 쓰이지만, 이 작가의 작업에서는 같은 일의 두 재료입니다. 둘 다 '전해지는 이야기'이고, 둘 다 누가 전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윤석남·김희상과 함께 선 2026년의 3인전, 전남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의 소장, 헥사곤에서 나온 작가론 한 권. 이런 이력이 20년에 걸쳐 쌓였다는 것은, 개인의 문제제기로 시작한 작업이 공적 기록으로 옮겨 앉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류준화는 그 구조에 작품 두 점으로 참여했습니다.
1999년에 여럿이 모여 종묘공원으로 나갔던 사람에게, 공동의 일에 자기 작품을 얹는 일은 새로운 경험이 아닐 것입니다. 「입김」이라는 이름 자체가 혼자 내쉬는 숨이 아니라 여럿이 모아 부는 숨을 가리킵니다.
류준화를 처음 만나는 분이라면 이렇게 보시길 권합니다. 먼저 〈책의 무게〉의 제목을 오래 보십시오. 사물이 아니라 사물이 누르는 힘을 제목으로 삼는 감각이 이 작가의 출발점입니다. 그다음 〈녹색발〉의 재료 목록을 읽으십시오. 아크릴과 콘테와 석회. 한 화면에 세 가지 다른 손놀림이 겹쳐 있다는 사실이, 이 작가가 하나의 매끈한 결론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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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류준화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1963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화가입니다. 1986년 경북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를, 1990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했습니다. 여성미술연구회 「입김」 회원으로 1999년 종묘공원 아방궁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여성독립운동가와 바리데기 신화를 소재로 가부장제 역사관에 가려진 여성의 서사를 복원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Q. 「입김」과 아방궁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A. 「입김」은 류준화가 회원으로 활동한 여성미술연구회입니다. 1999년 종묘공원에서 아방궁 프로젝트를 벌였습니다. 씨앗페 작가 소개는 이 시도를 한국 여성주의 미술사에서 가장 상징적이고 저항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 작업으로 소개합니다.
Q. 어디에서 작업하나요? A. 1999년부터 경북 봉화군 명호면 풍호리 비나리마을에 정착해 작업하고 있으며, 명호 산골미술관에서 정기적으로 전시를 열어왔습니다.
Q. 전시 이력과 소장처는? A. 1986년 단체전으로 활동을 시작한 뒤 단체전 130여 회, 개인전 20회를 열었습니다. 주요 개인전으로 《그녀의 침묵》(2001, 인사미술공간), 《소녀야화》(2007, 학고재아트센터), 《따뜻한 강》(2009, 가나아트센터 미루), 《대지의 꽃》(2012, 관훈갤러리), 《바다로 가는 강》(2015, 자하미술관), 《소녀, 꽃을 바치다》(2017, 금오공대갤러리)가 있고, 《33인 여성독립운동가에게 바치다》는 서울여담재에서 열렸습니다. 2026년에는 광주 이강하미술관 《결연한 기록들》에 윤석남·김희상과 3인전으로 참여했습니다. 전남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고, 저서로 『한국현대미술선 012 류준화』(헥사곤, 2012)가 있습니다.
Q. 류준화 작품 가격대는? A. 씨앗페에 나온 두 점은 〈녹색발〉(2015, 60.6x72.7cm) ₩5,000,000, 〈책의 무게〉(2023, 38x45.5cm) ₩2,800,000입니다.
Q. 류준화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류준화는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씨앗페에 참여했습니다.
Q. 씨앗페에 나온 류준화 작품은 몇 점인가요? A. 두 점입니다. 〈녹색발〉(2015, 캔버스위에 아크릴·콘테·석회, 60.6x72.7cm)과 〈책의 무게〉(2023, 캔버스에 아크릴, 38x45.5cm)입니다. 작가 페이지에서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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