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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수 — 탈과 장승에서 바람까지, 형상을 놓지 않은 조각가

작가를 만나다 · 발행 2026년 9월 17일 · 씨앗페

1980년 '현실과 발언' 창립회원으로 출발해 아픔의 인간상을 새기고, 이후 신화와 샤먼으로 형식을 넓힌 조각가 심정수. 2019년 김세중조각상 본상 수상자의 작업을 따라 읽습니다.

심정수 — 탈과 장승에서 바람까지, 형상을 놓지 않은 조각가

심정수, 〈춤사위〉, 브론즈, 48x65x25cm — '현실과 발언' 창립회원 조각가의 1983년 작업
심정수, 〈춤사위〉, 브론즈, 48x65x25cm — '현실과 발언' 창립회원 조각가의 1983년 작업

씨앗페에 들어온 심정수의 작품은 한 점입니다. 제목은 〈춤사위〉. 1983년, 브론즈, 48x65x25cm.

제작 연도를 먼저 보시기 바랍니다. 1983년. 그가 '현실과 발언' 창립전에 참여한 1980년으로부터 3년 뒤이고, 첫 개인전을 연 1981년의 바로 다음다음 해입니다. 뒷날 2019년 김세중조각상 본상 심사가 그의 1980년대를 두고 '격동의 시대를 증언하는 아픔의 인간상'이라고 정리하게 되는, 그 시기 한복판의 작업입니다.

제목은 전통 춤의 동작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시대를 증언하던 시기의 조각에 전통 연희의 어휘가 제목으로 붙어 있다는 것 — 이 겹침이 심정수라는 조각가를 읽는 첫 실마리입니다.

1942년생, 서울대 조소과

심정수는 1942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1960년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7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했습니다. 1982년에는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을 마쳤습니다.

이력의 앞부분은 제도권 안에서의 인정으로 채워집니다. 1966년 신인예술상을 받았고, 1967년에는 서울대학교 개교 20주년 기념 미술전 조소 부문에서 금상을 받았습니다. 1967년부터 1969년까지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 곧 국전에 세 차례 입상했습니다. 졸업 전후의 몇 해 동안 받을 수 있는 상을 차례로 받은 셈입니다.

이 대목이 중요한 이유는 그 다음에 일어난 일 때문입니다. 국전에서 인정받은 조각가가 1980년에 '현실과 발언'의 창립전에 섰습니다.

1980년, 동산방화랑

'현실과 발언'은 한국 민중미술운동을 이끈 소집단입니다. 1980년 동산방화랑에서 열린 창립전에 심정수가 참여했고, 그는 이 그룹의 창립회원입니다.

1980년이라는 연도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따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해 미술 쪽에서 '현실'과 '발언'이라는 두 단어를 나란히 붙여 단체 이름으로 삼았다는 사실 자체가,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 했는지를 말합니다.

조각가가 이 흐름에 참여한다는 것은 회화보다 여러 겹 까다로운 일입니다. 조각은 만드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이 크고, 완성된 뒤에도 놓을 자리가 필요합니다. 그림 한 장이 손에서 손으로 옮겨 다니는 방식으로 유통되던 시기에, 무게와 부피를 가진 물건으로 같은 일을 하려면 다른 결심이 듭니다.

작가 본인은 그 시기를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1980년대에는 과거 미술의 편협한 문제를 극복하고, 독재 체제 아래 인간의 고뇌와 근본이라는 당시 가장 중요했던 주제를 파고들었다." — 서울경제, 2019년 6월 17일

작업의 문법 — 재료, 형상, 그리고 전통의 물건들

심정수의 작업을 재료 쪽에서 보면 목록이 뚜렷합니다. 청동과 화강암, 대리석. 셋 다 오래가는 재료입니다. 브론즈는 주형에 부어 굳히는 방식이고, 화강암과 대리석은 깎아내는 방식입니다. 더하는 공정과 덜어내는 공정을 모두 다뤄온 조각가라는 뜻입니다.

주제 쪽에서 보면 인간과 자연입니다. 추상과 구상 사이를 오가되 형상을 완전히 놓지는 않는 자리에 그의 작업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조각가를 다른 조각가들과 구별 짓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그가 청년 시절부터 붙들어온 대상 목록입니다. 탈, 벅수, 장승, 솟대, 목어, 허수아비, 농기구. 2019년 김세중조각상 본상 선정 이유가 명시한 목록입니다. 그는 이것들을 현대적으로 조형화해 왔습니다.

이 목록을 한 번 뜯어볼 만합니다. 일곱 가지 모두 미술관에 놓으려고 만들어진 물건이 아닙니다. 탈은 쓰고 춤추는 물건이고, 벅수와 장승과 솟대는 마을 어귀에 세워 경계를 표시하고 액을 막는 물건입니다. 목어는 절에서 두드려 소리를 내는 물건이고, 허수아비는 논에서 새를 쫓는 물건이며, 농기구는 땅을 다루는 도구입니다.

즉 전부 쓰임을 가진 조형물입니다. 감상 대상이 아니라 일하는 물건이었고, 그 일에 맞춰 형태가 정해진 것들입니다. 조각가가 이 목록을 평생의 참조점으로 삼는다는 것은, 조각의 기원을 미술사가 아니라 생활사에서 찾겠다는 선택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 목록은 1980년대의 주제와 충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맞물립니다. 독재 체제 아래 인간의 고뇌를 다루는 조각가가 마을 어귀의 장승을 참조한다면, 그 장승은 지키고 막는 물건으로서 그 자리에 있습니다.

1990년대 이후 — 바람, 신화, 샤먼

1990년대부터 심정수의 작업은 형식을 넓힙니다. 신화와 전설과 샤먼을 주제로 삼으며 추상조각까지 나아갔습니다.

그가 이 확장을 스스로 설명한 문장이 있습니다.

"형식이나 재료, 방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자 애썼고 바람 같은 자연현상을 생명의 원천으로 삼아 문명에 찌든 인간 정신, 잃어버린 생명의 풍요를 예술로 회복하고자 한다." — 서울경제, 2019년 6월 17일

'바람 같은 자연현상을 생명의 원천으로 삼아'라는 대목이 눈에 띕니다. 2007년 서울 가람화랑에서 연 개인전의 제목이 《바람》이었습니다. 이 단어가 그의 이력에 한 번 스친 것이 아니라 전시 제목으로 자리 잡았다는 뜻입니다.

개인전의 제목들을 나란히 놓으면 관심의 이동이 보입니다. 1981년 문화예술진흥원 미술회관에서의 첫 개인전, 1995년 가나화랑의 《서해안》, 2003년 인사아트센터의 《아, 고구려》, 2007년 가람화랑의 《바람》, 2008년 일민미술관의 《PHANTOM REAL》. 바다에서 고대의 나라로, 다시 바람으로, 그리고 영어 제목으로.

1991년에는 가나미술상 창작 부문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의 작업 — 광장에 서는 조각

심정수의 이력에는 전시장 바깥의 목록이 따로 있습니다. 공공미술입니다.

세종대왕, 안중근, 박경리. 그가 만든 동상과 흉상의 주인공들입니다. 한국예술디지털아카이브가 명기한 목록은 더 구체적입니다 — 심산 김창숙 동상, 매헌 윤봉길 의사 동상, 왈우 강우규 의사 동상, 악성 우륵 선생 동상, 박경리 선생 동상, 안중근 의사 흉상.

이 목록을 읽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력으로 읽는 것입니다. 국가와 지자체가 세우는 기념 조형물을 여러 차례 맡았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신뢰의 기록입니다.

다른 하나는 앞 장의 목록과 이어 읽는 것입니다. 탈과 벅수와 장승과 솟대. 마을 어귀에 서서 무언가를 지키고 표시하던 물건들. 동상 역시 광장이나 학교 마당에 서서 무언가를 기억하게 하는 물건입니다. 놓이는 자리와 하는 일이 겹칩니다. 미술관 안에 들어가 감상되는 조각과, 바깥에 서서 기능하는 조각. 심정수는 양쪽을 모두 해왔습니다.

씨앗페 출품작 읽기

〈춤사위〉 — 1983년, 브론즈, 48x65x25cm

씨앗페에 들어온 심정수의 작품은 이 한 점입니다.

제작 연도가 1983년입니다. '현실과 발언' 창립전으로부터 3년, 첫 개인전으로부터 2년 뒤이고, 그의 1980년대가 '격동의 시대를 증언하는 아픔의 인간상'으로 요약되는 바로 그 시기입니다. 40년이 넘은 작업이 지금 다시 시장에 나왔다는 것은, 이 작가의 가장 뜨거웠던 시기의 물건을 만날 기회라는 뜻입니다.

재료는 브론즈입니다. 주형에 부어 굳히는 방식이라, 밀랍이나 흙으로 만든 원형을 뜨는 공정이 먼저 있습니다. 조각가의 손자국이 원형 단계에서 금속으로 옮겨 앉는 재료입니다.

치수는 48x65x25cm입니다. 세 축이 모두 적힌 입체의 치수이고, 폭보다 높이가 큽니다. 실내에 놓을 수 있는 크기로, 좌대나 콘솔 위 또는 낮은 선반 위가 자리입니다. 조각은 회화와 달리 보는 각도가 여러 개이므로, 벽에 붙이는 자리보다 사방에서 돌아볼 수 있는 자리가 낫습니다.

제목은 〈춤사위〉. 전통 춤의 동작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탈과 장승과 목어를 참조점으로 삼아온 조각가의 어휘 안에 있는 제목입니다.

심정수, 〈춤사위〉, 브론즈, 48x65x25cm, ₩15,000,000
심정수, 〈춤사위〉, 브론즈, 48x65x25cm, ₩15,000,000

심정수 작가 페이지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미술사에서의 자리

심정수의 좌표는 비교적 뚜렷합니다.

1980년 '현실과 발언' 창립회원. 한국 민중미술운동의 출발점에 조각가로 서 있었다는 사실이 첫 좌표입니다. 민중미술의 흐름을 회화 중심으로 읽어온 분이라면, 같은 시기 조각 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이 작가의 이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좌표는 2019년 제33회 김세중조각상 본상입니다. 시상식은 그해 6월 24일 서울 효창동 김세중미술관 대강당에서 열렸습니다. 선정 이유가 짚은 것은 1980년대의 아픔의 인간상, 1990년대부터의 신화·전설·샤먼으로의 확장, 그리고 청년 시절부터 이어온 전통 유산의 현대적 조형화였습니다. 즉 한 시기가 아니라 40년의 궤적 전체가 평가 대상이었습니다.

세 번째 좌표는 지금도 현역이라는 사실입니다. 2020년에는 경주엑스포 솔거미술관 특별기획전 《우리 미의 특성을 찾는 3인의 여정》에 김경인·박대성과 함께 참여했습니다. 6월 29일부터 9월 27일까지 열린 3인전입니다. 2026년에는 제3회 서울조각페스티벌의 아트디렉터 초청작가로 선정됐습니다. 70대 이상 원로조각가 11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8월 29일부터 9월 4일까지 열린송현녹지광장에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전시장을 벗어난 자리도 있습니다. 신세계사이먼 프리미엄 아울렛이 크라운해태제과 아트밸리와 협업해 연 '야외 조각 전시 페스타' 시즌2에 그의 작품이 나갔습니다. 여주·파주·부산·시흥 네 개 점에 걸쳐 총 83점이 놓인 전시입니다. 미술관에 가지 않는 사람들 앞에 조각을 세우는 방식으로, 앞서 본 공공미술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내려뜨린 손〉(1989)과 〈일어서는 여인〉(1990) 두 점입니다. 2006년에는 중국 상하이 아트페어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심정수가 씨앗페에 작품을 낸 이유는 자신의 사정 때문이 아닙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심정수는 그 구조에 작품으로 참여했습니다.

1980년에 '현실과 발언'이라는 이름 아래 모였던 사람이 40여 년 뒤 동료 예술인을 위한 자리에 작품을 내놓는 일은, 별도의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앞뒤가 이어집니다. 그때도 지금도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같습니다.

그가 2020년에 한 말이 이 자리에 놓을 만합니다.

"예술은 정신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작품에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지금까지 노력하고 있다." — 프레시안, 2020년 11월 4일

같은 자리에서 그는 한국 미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말했습니다.

"한국적인 정서와 아름다움, 우리 예술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있어야 한국미술의 자생력을 키워낼 수 있다." — 프레시안, 2020년 11월 4일

'자생력'이라는 단어를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살아갈 힘을 기른다는 뜻입니다.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이 하려는 일과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심정수를 처음 만나는 분이라면 순서를 이렇게 잡아보시길 권합니다. 먼저 〈춤사위〉의 제작 연도 1983년을 기억하십시오. 그의 1980년대가 어떤 시기였는지를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다릅니다. 다음으로 탈·벅수·장승·솟대·목어·허수아비·농기구라는 목록을 떠올리십시오. 이 조각가가 어디에서 형태를 가져오는지가 그 목록에 들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브론즈라는 재료를 생각하십시오. 오래가는 재료입니다. 40년 전의 작업이 지금 여기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심정수 작가 페이지에서 작품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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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심정수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1942년 서울에서 태어난 조각가입니다. 1967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1982년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을 마쳤습니다. 1980년 '현실과 발언' 창립전에 참여한 창립회원이며, 청동·화강암·대리석으로 인간과 자연을 주제로 한 형상 조각을 만들어 왔습니다.

Q. '현실과 발언'은 무엇인가요? A. 한국 민중미술운동을 이끈 소집단으로, 1980년 동산방화랑에서 창립전을 열었습니다. 심정수는 그 창립회원입니다.

Q. 어떤 주제를 다뤄왔나요? A. 1980년대에는 격동의 시대를 증언하는 아픔의 인간상을 제작했고, 1990년대부터는 신화·전설·샤먼을 주제로 추상조각까지 형식을 넓혔습니다. 청년 시절부터 탈·벅수·장승·솟대·목어·허수아비·농기구 같은 전통 유산을 현대적으로 조형화해 왔습니다. 이는 2019년 김세중조각상 본상 선정 이유가 명시한 내용입니다.

Q. 수상 이력은? A. 1966년 신인예술상, 1967년 서울대학교 개교 20주년 기념 미술전 조소 부문 금상, 1991년 가나미술상 창작 부문, 2019년 제33회 김세중조각상 본상을 받았습니다. 1967년부터 1969년까지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세 차례 입상했습니다.

Q. 공공미술 작업도 했나요? A. 세종대왕·안중근·박경리 등의 동상과 흉상을 비롯해 다수의 공공미술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한국예술디지털아카이브는 심산 김창숙 동상, 매헌 윤봉길 의사 동상, 왈우 강우규 의사 동상, 악성 우륵 선생 동상, 박경리 선생 동상, 안중근 의사 흉상 등을 명기하고 있습니다.

Q. 작품은 어디에 소장돼 있나요? A. 서울시립미술관이 〈내려뜨린 손〉(1989)과 〈일어서는 여인〉(1990)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Q. 심정수 작품 가격대는? A. 씨앗페에 나온 〈춤사위〉(1983, 브론즈, 48x65x25cm)는 ₩15,000,000입니다.

Q. 심정수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심정수는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씨앗페에 참여했습니다.

Q. 씨앗페에 나온 심정수 작품은 몇 점인가요? A. 〈춤사위〉(1983, 브론즈, 48x65x25cm) 한 점입니다. 작가 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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