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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규철 — 미술이 질문일 수 있다면, 방은 몇 개나 필요한가

작가를 만나다 · 발행 2026년 9월 17일 · 씨앗페

『계간미술』 기자에서 조각가로, 다시 글 쓰는 미술가로. '방' 연작을 반복 변주해온 안규철의 40년을 따라 읽습니다. 미술을 답이 아니라 질문으로 놓아온 작가의 자리와 씨앗페 출품작 〈64개의 방〉을 함께 안내합니다.

안규철 — 미술이 질문일 수 있다면, 방은 몇 개나 필요한가

안규철, 〈64개의 방〉, 종이에 실크스크린, 46x64.6cm — '방' 연작의 제목을 그대로 단 2015년 판화
안규철, 〈64개의 방〉, 종이에 실크스크린, 46x64.6cm — '방' 연작의 제목을 그대로 단 2015년 판화

씨앗페에 들어온 안규철의 작품은 한 점입니다. 제목이 〈64개의 방〉. 2015년, 종이에 실크스크린, 46x64.6cm.

제목을 먼저 보시길 권합니다. 이 작가의 이력에는 같은 계열의 제목이 여러 번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2004년 삼성미술관 로댕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의 이름이 《49개의 방》이었고,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현대차 시리즈 전시에는 '64개의 방'이 놓였습니다. 2023년 청주시립미술관에서는 '56개의 방'이 언급됐습니다. 숫자만 바뀌고 단어는 그대로입니다.

한 작가가 20년 가까이 같은 명사를 붙들고 숫자만 갈아 끼운다면, 그 명사가 그 사람의 질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글은 안규철이 왜 '방'이라는 말을 놓지 않는지, 그리고 그가 말하는 '질문으로서의 미술'이 무엇인지를 따라갑니다.

기자였던 조각가

안규철은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1977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조각가의 평범한 출발입니다.

그다음이 평범하지 않습니다. 1980년부터 1987년까지 그는 『계간미술』 기자로 일했습니다. 7년입니다. 미술을 만드는 자리가 아니라 미술에 대해 묻고 쓰는 자리에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을 통째로 넣었다는 뜻입니다. 뒷날 이 작가가 오브제만큼이나 많은 글을 남기게 되는 배경이 여기 있습니다.

1985년에는 '현실과 발언'에 참여했습니다. 1980년대 한국 미술에서 이 이름은 민중미술의 흐름을 여는 자리에 놓입니다. 기자였던 사람이 그 안에 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미술을 작품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과 미술이 맺는 관계의 문제로 보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1987년, 그는 프랑스로 떠납니다. 이듬해인 1988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국립미술학교에 입학해 학부와 연구과정을 마치고 1995년 졸업했습니다. 서른셋에 나가 마흔에 학교를 마친 셈입니다. 그리고 1997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이력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게 됩니다 — 조각을 배우고, 미술을 쓰고, 미술 운동에 참여하고, 다시 유학해 조형을 공부하고, 가르쳤다. 어느 한 자리에 붙박이지 않은 사람의 연표입니다.

이 연표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1987년입니다. '현실과 발언'에 참여한 지 2년 만에 그는 한국을 떠났습니다. 1980년대 한국 미술 운동이 가장 뜨거웠던 구간의 한복판에서, 그는 자리를 옮겨 다시 학생이 됩니다. 서른둘에 학교로 돌아가 마흔에 졸업한 사람의 선택을 손쉽게 해석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뒷날 그의 작업이 구호나 선언의 형태가 아니라 사물과 언어를 매개로 한 질문의 형태를 띠게 되는 것과, 이 7년의 공백기가 무관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작업의 문법 — 답이 아니라 질문

안규철 본인이 자기 작업을 정의한 문장이 있습니다.

"미술이 질문일 수 있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습니다. 세계와 삶에 관한 질문의 방법으로서의 미술, 즉 사물과 나와 사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질문하는 것이 제가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하고 있는 본질적인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이 능동적인 관찰자가 되게 하고 생각의 주체가 되도록 자극하고 격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 위클리cnbnews, 2025년 8월

이 문장에서 중요한 것은 앞이 아니라 뒤입니다. 질문으로서의 미술이라는 말은 흔합니다. 그가 덧붙인 조건이 드뭅니다 — 관객이 능동적인 관찰자가 되고, 생각의 주체가 되도록. 작품이 질문을 품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보는 사람이 그 질문을 자기 것으로 받아 가야 완성된다는 뜻입니다.

7년간 미술 기자로 일한 사람의 습관이 여기 들어 있다고 읽어도 무리는 없습니다. 기자의 일이란 답을 내놓는 일이 아니라 물을 자리를 찾아내는 일이고, 좋은 기사는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도록 재료를 놓아 줍니다. 작품 앞에서 관객을 "생각의 주체"로 만들겠다는 말은 그 직업 윤리를 미술 쪽으로 옮겨 놓은 문장처럼 들립니다.

'방'이라는 단어가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서 읽힙니다. 방은 들어가야 알 수 있는 공간입니다. 밖에서 보고 끝나는 조각과 달리, 방은 관객을 안으로 넣습니다. 49개, 56개, 64개 — 숫자가 늘어난다는 것은 관객이 통과해야 할 질문이 늘어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연작은 건축적 규모의 설치로 확장되며 반복 변주돼왔습니다.

2025년 부산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의 제목은 아예 《열두 개의 질문》(2025년 8월 22일~10월 19일)이었습니다. 이 전시에 나온 '두 개의 의자'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광화문에 나가보면 깃발을 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가 사는 모습이 꼭 이런 상태가 아닐까, 이것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그 고민을 은유적인 방식으로 순화해서 이런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 위클리cnbnews, 2025년 8월

'현실과 발언'에 참여했던 사람의 말투가 40년 뒤에도 남아 있습니다. 출발점은 여전히 광장이고, 다만 그것을 화면에 직접 옮기는 대신 은유로 순화해 사물의 형태로 바꿉니다. 거리에서 오브제로 가는 이 경로가 안규철의 방법입니다.

매일 쓰는 사람

안규철의 이름 옆에는 책이 여러 권 붙습니다. 『사물의 뒷모습』(2021), 『안규철의 질문들』(2024), 『그림자를 말하는 사람』(2025). 2021년 부산 국제갤러리에서 연 개인전의 제목도 《사물의 뒷모습》이었습니다. 전시와 책이 같은 이름을 나눠 가집니다.

글이 그에게 어떤 일인지는 본인의 설명이 가장 정확합니다.

"연주자가 하루 연습을 거르면 본인이 알고, 일주일을 거르면 관객이 안다고 하잖아요. 글도 그래요. 며칠만 손을 놓아도 막막해요. 그래서 매일 몇 줄이라도 씁니다. 그래야 다음 날에도 쓸 수 있거든요." — 엘르코리아

글을 영감의 일이 아니라 연습의 일로 다루는 태도입니다.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작업실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젊을 땐 교외에 큰 작업실을 가진 사람이 부러웠어요. 돌이켜보면 이렇게 혼자 방해받지 않고 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더라고요. 후배 작가들이 이런 공간조차 부러워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 하루를 허투루 보낼 수 없어요."

후배 작가들이 이 공간조차 부러워할 수 있다는 문장에 주목해 주십시오. 자기 조건을 남의 조건과 나란히 놓고 보는 시선입니다.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이 작가가 씨앗페에 작품을 낸 일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리고 한국경제에 실린 한 문장이 그의 목표를 가장 간결하게 요약합니다.

"아침이 오면 해가 뜨는 것처럼 당연한 일을 하는 미술가가 됨으로써 특별한 미술가가 될 수 있을지를 알아보려 한다." — 한국경제

특별해지기 위해 특별한 것을 하는 대신, 당연한 것을 계속함으로써 특별해질 수 있는지 시험해보겠다는 말입니다. 매일 몇 줄씩 쓴다는 앞의 말과 정확히 같은 내용입니다.

씨앗페 출품작 읽기

〈64개의 방〉 — 2015년, 종이에 실크스크린, 46x64.6cm

씨앗페에 들어온 안규철의 작품입니다. 제목과 연도가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5 《안규철 -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2015년 9월 15일~2016년 5월 22일, 서울관) 시기와 겹칩니다. '방' 연작의 이름을 그대로 단, 종이 위의 실크스크린입니다.

설치 작업을 주로 해온 작가의 작품을 개인이 소장하기란 대개 어렵습니다. 건축적 규모로 확장된 '방' 연작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판화라는 형식은 그 규모의 작업을 종이 한 장의 크기로 옮겨 놓습니다. 46x64.6cm면 서재나 복도, 작업 책상 앞처럼 가까이서 보는 자리에 걸 수 있는 크기입니다.

안규철, 〈64개의 방〉, 종이에 실크스크린, 46x64.6cm, ₩1,000,000
안규철, 〈64개의 방〉, 종이에 실크스크린, 46x64.6cm, ₩1,000,000

이 한 점을 고를 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안규철의 작업은 대체로 관객을 안으로 들이는 형식을 취해왔습니다. 방에 들어가야 방을 알 수 있고, 질문은 받아 가야 질문이 됩니다. 그런 작가의 판화 한 장을 집이나 사무실에 건다는 것은, 매일 지나다니는 자리에 질문 하나를 세워 두는 일에 가깝습니다. 전시장에서는 몇 시간 머물다 나오지만 벽에 걸린 그림 앞은 몇 해를 지나다니게 됩니다.

안규철 작가 페이지에서 현재 나와 있는 작품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미술사에서의 자리

안규철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는 한 칸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1985년 '현실과 발언'에 참여했으니 1980년대 한국 미술 운동의 자장 안에 있고, 1988년부터 1995년까지 독일에서 공부했으니 그 시기 유럽 조형 교육의 경로 위에도 있습니다. 그리고 1997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로 재직하며 다음 세대를 가르쳤습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아트선재미술관(현 우양미술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2015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의 작가로 선정돼 서울관에서 8개월에 걸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이 이력에서 읽어야 할 것은 수상과 소장처의 목록이 아니라 일관성입니다. 미술 기자로 미술에 대해 묻던 사람이, 조각가로 사물에 대해 묻고, 교수로 학생에게 묻고, 책으로 독자에게 묻습니다. 형식은 계속 바뀌었지만 동사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 한국 미술을 이야기할 때 '현실과 발언'이라는 이름은 대개 회화와 판화, 걸개그림의 맥락에서 불립니다. 안규철의 자리가 그 안에서 조금 다른 것은, 그가 같은 문제의식을 조각과 오브제, 그리고 글이라는 통로로 옮겨 놓았다는 점입니다. 광장에서 본 것을 화면에 옮기는 대신 "은유적인 방식으로 순화해서" 사물의 형태로 바꾼다는 앞의 설명이, 이 작가가 민중미술의 문제의식과 개념적 조각 사이에 놓이는 방식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전시의 제목들도 같은 것을 가리킵니다. 《49개의 방》(2004)에서 《사물의 뒷모습》(2021)을 지나 《열두 개의 질문》(2025)까지, 20년치 개인전 제목에 형용사나 감탄사가 거의 없습니다. 사물, 방, 질문, 뒷모습, 그림자 — 전부 눈에 보이지 않거나 보이지 않는 쪽을 가리키는 명사들입니다.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안규철이 씨앗페에 작품을 낸 이유는 자신의 사정 때문이 아닙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후배 작가들이 이런 공간조차 부러워할 수도 있잖아요"라고 말한 작가가 그 구조에 작품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은, 따로 해설을 붙일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자기 작업실의 조건을 후배의 조건과 나란히 놓고 보는 사람이라면, 동료 예술인의 대출 조건을 자기 문제로 보는 것도 같은 시선의 연장입니다.

또 하나 짚어 둘 것이 있습니다. 씨앗페의 이 구조에서 작가는 도움을 받는 쪽이 아니라 내놓는 쪽입니다. 금융 차별 문제는 한국 예술인 전체가 겪는 구조의 문제이고, 출품 작가들은 그 구조를 바꾸기 위해 자기 작품을 건 사람들입니다. 안규철의 〈64개의 방〉도 그렇게 이 갤러리에 들어왔습니다.

안규철을 처음 만나는 분이라면 제목부터 읽으시길 권합니다. 《49개의 방》, '64개의 방', '56개의 방', 《열두 개의 질문》 — 이 작가의 제목은 거의 언제나 셀 수 있는 명사입니다. 몇 개의 방, 몇 개의 질문. 숫자를 붙인다는 것은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는 뜻이고,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라는 뜻입니다.

"미술이 질문일 수 있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습니다."

작가의 말입니다. 씨앗페에 나온 〈64개의 방〉은 그 질문이 종이 위로 옮겨 앉은 한 장입니다.

안규철 작가 페이지에서 작품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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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안규철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난 미술가입니다. 1977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1980년부터 1987년까지 『계간미술』 기자로 일했습니다. 1985년 '현실과 발언'에 참여했고, 1987년 프랑스로 떠난 뒤 이듬해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국립미술학교에 입학해 1995년 졸업했습니다. 1997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Q. '방' 연작은 무엇인가요? A. 49개의 방, 64개의 방, 56개의 방처럼 같은 단어에 숫자만 바꿔 붙인 연작으로, 건축적 규모의 설치로 확장되며 반복 변주돼왔습니다. 2004년 삼성미술관 로댕갤러리 개인전 《49개의 방》,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64개의 방'이 그 흐름 위에 있습니다.

Q. 대표 전시는 무엇인가요? A.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5 《안규철 -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2015년 9월 15일~2016년 5월 22일, 서울관), 부산 국제갤러리 개인전 《사물의 뒷모습》(2021)과 《열두 개의 질문》(2025년 8월 22일~10월 19일), 삼성미술관 로댕갤러리 《49개의 방》(2004)이 있습니다.

Q. 안규철 작가의 책은 어떤 것이 있나요? A. 『사물의 뒷모습』(2021), 『안규철의 질문들』(2024), 『그림자를 말하는 사람』(2025)이 있습니다. 본인은 "매일 몇 줄이라도 씁니다. 그래야 다음 날에도 쓸 수 있거든요"(엘르코리아)라고 밝혔습니다.

Q. 작품은 어디에 소장돼 있나요? A.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아트선재미술관(현 우양미술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Q. 씨앗페에 나온 안규철 작품은 무엇인가요? A. 〈64개의 방〉(2015, 종이에 실크스크린, 46x64.6cm), 가격은 ₩1,000,000입니다. 작가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Q. 안규철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안규철은 자신이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씨앗페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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