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발언' 창립 동인 손장섭(1941–2021). 조선총독부와 역사의 창을 그리던 화가가 왜 고목과 갯벌로 옮겨갔는지, 그가 남긴 말과 씨앗페 출품작 두 점으로 따라 읽습니다.
손장섭 — 나무는 역사의 목격자다, 한자리에 서서 다 보았으니까

손장섭이 남긴 말 가운데 가장 자주 인용되는 한 줄은 이것입니다.
"나무는 역사의 목격자이자 민중" — 연합뉴스, 2017년 5월 12일
1980년대에 〈조선총독부〉와 〈역사의 창〉 같은 역사화 대작을 그린 사람이 한 말입니다. 총독부 건물을 그리던 화가가 나무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하면 흔히 '은퇴한 투사가 자연으로 돌아갔다'는 식의 이야기가 붙습니다. 손장섭의 경우 그 해석은 틀립니다. 그가 나무를 그린 이유는 나무가 조용해서가 아니라, 나무가 한자리에서 다 보았기 때문입니다.
씨앗페에 들어온 손장섭의 작품은 두 점입니다. 〈서해 갯벌〉(2008)과 〈겨울항구〉(2010). 둘 다 역사화가 아니라 자연과 바다를 그린 화면이고, 둘 다 그 전환 이후의 작업입니다.
완도에서 광화문까지
손장섭은 1941년 전라남도 완도 고금도에서 태어났습니다. 1961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스무 살의 그가 대학에 들어가기 직전,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뜨거운 한 해가 지나갑니다.
그 자리에 그가 있었다는 사실은 본인의 말로 남아 있습니다.
"4·19 때에는 시청앞 데모대에 휩쓸려 그 속에서 스케치를 했고, 6·29 때에는 신학철, 주재환 같은 이들과 함께 최루탄 맞아가며 싸웠지요. 그렇게 얻어낸 민주주의였습니다." — 뉴스1
4·19에서 6·29까지가 한 문장 안에 들어 있습니다. 1960년과 1987년 사이의 27년을 그는 같은 자리에서 보냈다는 뜻입니다. 데모대 속에서 스케치를 했다는 대목도 그냥 지나칠 말이 아닙니다. 구경하러 간 것도, 싸우러만 간 것도 아니고, 싸우는 자리에서 그렸습니다. 이 사람의 작업이 무엇인지가 그 한마디에 이미 들어 있습니다.
1978년에는 동아일보사에 재직하던 중 《동아미술제》 창설에 참여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자리와 미술 제도를 만드는 자리에 함께 있었던 셈입니다. 화가가 자기 그림을 걸 자리를 스스로 만드는 일에 손을 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뒷날 그가 민족미술협의회 초대 대표를 맡게 되는 것도 이 이력의 연장선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작품을 그리는 사람과 판을 짜는 사람이 이 화가에게는 분리돼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980년, 창립전과 함께 출발한 '현실과 발언'의 창립 동인이 됩니다. 1980년대 한국 민중미술을 여는 이름입니다. 1986년에는 민족미술협의회 초대 대표를 맡았습니다. 미술 운동의 출발점과 그 운동이 조직으로 자리 잡는 국면 양쪽에 그의 이름이 있습니다.
전시장의 불을 꺼버리던 시절
그 시기가 어떠했는지는 본인의 증언이 가장 구체적입니다.
"철저하게 군부독재의 탄압이 이뤄지던 시절이었어요. 당시 한국문화예술진흥원(문예진흥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신)에서 전시를 하는데 작품이 불손하다며 전시장 불을 꺼 버리고 작품들을 철거하려 했죠. 촛불을 켜고서라도 전시를 하려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아 동산방화랑에서 전시를 열었는데 거기서도 전시를 제대로 못한 겁니다." — 뉴스1
작품을 압수하는 것도, 작가를 잡아가는 것도 아니고, 전시장의 불을 껐다는 대목이 이 시기의 성격을 정확히 보여줍니다.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이 검열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림은 그대로 걸려 있는데 아무도 못 보게 하는 것.
검열이 그림을 읽는 방식에 대해서도 그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군부독재 정권 눈에 우리가 예쁠 턱이 있나요. 그러니 멀쩡한 시골 풍경을 두고 김일성 생가를 그린 거라고…. 그렇게 엉뚱하게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거죠." — 뉴스1
시골 풍경을 그려도 문제가 되던 시절이었다는 증언입니다. 이 문장은 뒤에서 그가 풍경으로 옮겨가는 대목을 읽을 때 다시 떠올릴 만합니다. 그에게 풍경은 애초에 안전한 도피처가 아니었습니다.
작업의 문법 — 역사화에서 신목으로
1980년대의 손장섭은 역사화를 그렸습니다. 〈조선총독부〉, 〈역사의 창〉 같은 대작들이 그 시기의 결과물입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그의 작업은 신목(神木)과 산야, 바다를 그린 풍경화 연작으로 확장됩니다.
이 전환을 본인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자연은 현실에서 유리된 대상이 아닙니다. 민중의 삶이 펼쳐지는 터전이자 역사가 배어있는 현장이죠. 나무만 해도 곧 삶이고 역사입니다. 한자리를 지키며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지켜봤을 테니까요." — 연합뉴스, 2017년 5월 12일
핵심은 마지막 문장입니다. 한자리를 지키며 지켜봤다. 나무가 역사인 이유는 나무가 오래 살아서가 아니라,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떠나고 건물은 헐리지만 나무는 남아서 그 자리에서 벌어진 일을 전부 봅니다. 목격자의 조건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자리를 뜨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작가의 역사화와 풍경화는 서로 다른 시기의 서로 다른 작업이 아닙니다. 〈역사의 창〉이 역사를 창 안에 넣어 보여주는 그림이라면, 신목 연작은 역사를 본 자를 그린 그림입니다. 대상이 사건에서 증인으로 옮겨갔을 뿐입니다.
무엇이 그를 나무 앞에 세우는지도 말로 남아 있습니다.
"오래된 나무에서는 뿌리에서 올라오는 강렬한 기운이 전해진다", "신비로운 기운을 풍기는 나무가 있다면 어디든 가서 그리고 싶다" — 연합뉴스, 2017년 5월 12일
어디든 가서 그리고 싶다는 말은 나이 일흔을 넘긴 화가의 말입니다. 4·19 때 데모대 속에서 스케치하던 사람이, 반세기 뒤에도 그릴 것이 있는 자리로 직접 가겠다고 말합니다. 방법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신목'이라는 말도 짚어 둘 만합니다. 신령스러운 나무라는 뜻이지만, 손장섭이 이 말을 쓸 때 그것은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시간의 단위에 가깝습니다. 한 그루의 나무가 서 있던 햇수만큼의 일이 그 자리에서 벌어졌고, 나무는 그것을 전부 몸으로 받았습니다. 사람의 얼굴에 세월이 새겨지듯 나무의 몸에도 새겨집니다. 역사화를 그리던 손이 나무로 향한 것은 소재를 바꾼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을 다른 몸에서 찾아낸 일입니다.
2017년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손장섭: 역사, 그 물질적 흔적으로서의 회화》는 그 두 축을 한자리에 모은 자리였습니다. 1960년작 〈사월의 함성〉 같은 역사화와 고목 그림 등 38점이 6월 18일까지 걸렸습니다. 1960년의 그림과 2010년대의 나무가 같은 전시장에 나란히 놓였다는 것이, 이 작가를 읽는 가장 좋은 요약일지 모릅니다.
씨앗페 출품작 두 점 읽기
씨앗페에 들어온 손장섭의 작품은 두 점입니다. 2008년과 2010년, 둘 다 역사화 이후 자연과 바다로 옮겨간 뒤의 작업이고, 매체가 서로 다릅니다. 한 점은 캔버스에 아크릴릭, 한 점은 종이에 유채입니다.
〈서해 갯벌〉 — 2008년, 캔버스에 아크릴릭, 64x64cm
한 변 64cm의 정사각형입니다. 제목이 가리키는 것은 서해의 갯벌입니다. 앞에서 읽은 작가의 말을 그대로 적용해 보면, 갯벌 역시 "민중의 삶이 펼쳐지는 터전"에 해당합니다. 나무가 한자리에서 지켜보는 존재라면 갯벌은 사람이 들어가 일하는 자리입니다.

- 64x64cm · 캔버스에 아크릴릭 · ₩6,000,000
- 작품 페이지 →
〈겨울항구〉 — 2010년, 종이에 유채
두 점 가운데 나중의 작업이고, 매체가 종이에 유채입니다. 캔버스가 아닌 종이에 유채를 올린 화면은 같은 작가의 캔버스 작업과 표면의 성질이 다릅니다. 제목은 항구, 그것도 겨울의 항구입니다. 완도 고금도에서 태어난 화가의 화면에 바다가 거듭 등장하는 것을 우연으로만 읽기는 어렵습니다.
크기는 현재 확인 중입니다. 실물 규격이 필요하신 분은 작품 페이지의 문의 기능을 이용해 주십시오.

- 종이에 유채 · 크기 확인 중 · ₩15,000,000
- 작품 페이지 →
두 점의 값이 다른 것은 크기와 매체, 제작 시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을 고르든 들어오는 것은 같은 화가가 같은 시선으로 바다를 본 화면이니, 놓을 자리와 화면의 성질로 고르시길 권합니다. 캔버스의 아크릴릭과 종이의 유채는 빛을 받는 방식이 서로 다릅니다.
두 점을 나란히 놓으면 갯벌과 항구입니다. 바다와 맞닿은 두 자리이고, 둘 다 사람이 일해서 먹고사는 자리입니다. 손장섭 작가 페이지에서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미술사에서의 자리
손장섭의 자리는 1980년 '현실과 발언'의 창립 동인이라는 사실에서 시작합니다. 한국 민중미술이 하나의 흐름으로 형태를 갖추는 그 자리에 그가 있었고, 1986년에는 민족미술협의회 초대 대표를 맡아 운동이 조직으로 이어지는 국면을 떠맡았습니다.
평가도 뒤따랐습니다. 1991년 한국민족미술협회 민족미술상, 1998년 제10회 이중섭미술상과 금호미술상을 받았습니다. 1998년 한 해에 두 상이 겹친 것은, 1990년대에 그가 옮겨간 풍경 연작이 이미 독자적인 성취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다만 손장섭을 '민중미술 1세대'라는 한 칸에만 넣으면 이 작가의 절반이 빠집니다. 1980년대에 역사화를 그린 사람은 여럿이지만, 그중에서 자연을 '현실에서 유리된 대상이 아니'라고 정의하고 나무를 목격자의 자리에 앉힌 사람은 손장섭입니다. 민중미술이 흔히 사람의 얼굴과 사건의 장면으로 기억되는 흐름이라면, 그는 그 흐름 안에서 증인이라는 항목을 새로 만든 셈입니다.
2021년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4·19의 시청 앞에서 시작해 신목 앞에서 끝난 60년입니다. 그사이 한국 미술은 민중미술을 배척했다가 받아들였고, 미술관은 그 흐름을 전시로 정리했습니다. 손장섭은 그 변화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를 작업으로 통과한 몇 안 되는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지금, 씨앗페에서
손장섭의 작품이 씨앗페에 나와 있는 이유는 이 작가가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연대자들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가고,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전시장의 불이 꺼지던 시절을 통과한 화가의 그림이 동료 예술인의 대출 재원을 만드는 자리에 놓인다는 것은, 이 갤러리가 무엇을 하려는 곳인지를 설명하는 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때는 못 보게 하는 것이 문제였고, 지금은 만들 수 없게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작업을 이어갈 돈을 빌릴 수 없는 예술인에게는 재료비와 작업실 임대료가 곧 전시장의 스위치입니다.
손장섭을 처음 만나는 분께는 순서를 이렇게 권합니다. 먼저 "나무는 역사의 목격자이자 민중"이라는 한 줄을 읽으십시오. 그다음 〈서해 갯벌〉과 〈겨울항구〉의 제목을 나란히 놓으십시오. 갯벌과 항구, 둘 다 사람이 드나들며 일하는 자리입니다. 화면에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아도, 이 화가가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는 제목에서 이미 시작됩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함께 읽으면 좋은 글들을 소개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손장섭 작가는 어떤 작가인가요? A. 1941년 전라남도 완도 고금도에서 태어나 2021년 별세한 화가입니다. 1961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고, 1980년 창립전과 함께 출발한 '현실과 발언'의 창립 동인입니다. 1980년대에는 〈조선총독부〉·〈역사의 창〉 같은 역사화 대작을 그렸고, 1990년대 이후로는 신목(神木)과 산야·바다를 그린 풍경화 연작으로 작업을 확장했습니다.
Q. '현실과 발언'은 무엇인가요? A. 1980년 창립전과 함께 활동을 시작한 그룹으로, 한국 민중미술을 여는 자리에 놓입니다. 손장섭은 그 창립 동인이며, 1986년에는 민족미술협의회 초대 대표를 맡았습니다.
Q. 왜 역사화에서 나무와 풍경으로 옮겨갔나요? A. 본인은 "자연은 현실에서 유리된 대상이 아닙니다. 민중의 삶이 펼쳐지는 터전이자 역사가 배어있는 현장이죠. 나무만 해도 곧 삶이고 역사입니다. 한자리를 지키며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지켜봤을 테니까요"(연합뉴스, 2017년 5월 12일)라고 설명했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그는 "나무는 역사의 목격자이자 민중"이라고도 말했습니다.
Q. 수상 이력은 어떻게 되나요? A. 1991년 한국민족미술협회 민족미술상, 1998년 제10회 이중섭미술상과 금호미술상을 받았습니다. 1978년에는 동아일보사 재직 중 《동아미술제》 창설에 참여했습니다.
Q. 대표 전시는 무엇인가요? A. 2017년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 《손장섭: 역사, 그 물질적 흔적으로서의 회화》를 열었습니다. 1960년작 〈사월의 함성〉 등 역사화와 고목 그림을 포함해 38점이 6월 18일까지 전시됐습니다.
Q. 씨앗페에 나온 손장섭 작품은 몇 점이고 어떤 것인가요? A. 두 점입니다. 〈서해 갯벌〉(2008, 캔버스에 아크릴릭, 64x64cm, ₩6,000,000)과 〈겨울항구〉(2010, 종이에 유채, 크기 확인 중, ₩15,000,000)입니다. 작가 페이지에서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Q. 손장섭 작품을 사면 어디로 수익이 가나요? A. 작품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에게 직접 갑니다.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기금에 적립되어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의 저금리 대출 재원이 됩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낸 작가들은 그 차별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작품을 내놓은 연대자로 참여했습니다.
관련 매거진
씨앗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