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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골목·시장·집을 그린 씨앗페 출품작 읽기 — 같은 도시가 유채·먹·수채·사진 위에서 달라지는 열네 가지 방식

미술 산책 · 발행 2026년 10월 4일 · 씨앗페

도시 풍경도 열네 점을 나란히 놓으면 같은 도시가 열네 가지로 서 있습니다. 사과 값이 적힌 낮의 골목, 불빛 하나로 줄어든 밤의 골목, 지붕 위로 번지는 시장의 노을, 얽힌 주황 선으로만 남은 시장 사람들, 굴뚝만 남은 공장 터, 서울과 평양의 교차로를 접어 만든 문양까지. 씨앗페 온라인 갤러리의 작품으로 재료와 시선이 도시를 어떻게 바꾸는지 읽습니다.

도시·골목·시장·집을 그린 씨앗페 출품작 읽기 — 같은 도시가 유채·먹·수채·사진 위에서 달라지는 열네 가지 방식

신학철, 〈골목길〉, 유채 캔버스, 53x45.5cm — 연한 파랑과 분홍빛 길 왼쪽에 '사과 7개 1000'이라고 적힌 노란 팻말의 과일 수레가 서고, 그 앞에 검은 옷의 상인과 등을 보인 손님이 마주 서 있다
신학철, 〈골목길〉, 유채 캔버스, 53x45.5cm — 연한 파랑과 분홍빛 길 왼쪽에 '사과 7개 1000'이라고 적힌 노란 팻말의 과일 수레가 서고, 그 앞에 검은 옷의 상인과 등을 보인 손님이 마주 서 있다

도시 풍경은 한 장씩 보면 모두 길이고 건물이고 지붕입니다. 열네 점을 나란히 놓으면 같은 도시가 열네 가지로 서 있습니다. 어떤 길에서는 낮의 노점이 사과 값을 내걸고, 어떤 길에서는 한밤의 불빛 하나가 골목 전체를 대신합니다. 시장이 사람도 가판도 없이 노을 진 지붕으로만 그려지기도 하고, 얽힌 주황 선으로만 남기도 합니다. 굴뚝만 남은 공장 터가 있고, 옛집 앞에 선 사람이 있고, 서울과 평양으로 드나드는 교차로를 모아 접은 문양이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풍경화를 "자연 풍경이나 도시의 환경 등 집 밖의 경치를 그린 그림"으로 풀이합니다. 씨앗페 온라인 갤러리에는 유채와 아크릴로 그린 풍경만이 아니라 먹과 수채, 사진과 디지털 프린트로 도시를 다룬 작품이 함께 걸려 있습니다. 이 글은 그 가운데 열네 점을 골라, 재료와 시선이 바뀔 때 같은 소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읽습니다. 작품 사이의 비교는 화면에 보이는 구성과 선과 색을 기준으로 합니다.

열네 점 가운데 박성완 〈대인시장놀〉은 이미 새 주인을 만났고, 나머지 열세 점은 상설 온라인 갤러리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먹과 채색의 구분이 낯설다면 한국화 기법 지도를, 유채와 아크릴과 수채는 서양화 재료·기법 지도를, 피그먼트 프린트와 디아섹은 사진 기법 지도를 곁에 두고 읽으시면 좋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산과 꽃을 읽은 글은 산을 그린 씨앗페 출품작 읽기와 꽃을 그린 씨앗페 출품작 읽기에 있습니다.

도시를 그리는 말은 풍경화와 함께 들어왔다

작품으로 들어가기 전에, 한국에서 풍경을 그린다는 일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짧게 짚어 둡니다. 아래 내용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풍경화」 항목(김현숙 집필)에 기댔습니다.

  • 20세기 초 — 일본을 통해 일점 시각에 입각한 서구 근대의 풍경화를 받아들인 뒤, 풍경화는 한국 구상회화의 주된 경향이 되었고 산수화의 근대적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항목은 적습니다.
  • 산수와 풍경의 차이 — 항목은 산수가 단순한 경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이자 의미와 정서로 충만한 이상향"인 반면, 풍경화에서 경관은 "화가에 의해 선택되고 배치되는 물체에 가깝다"고 구분합니다. 이 차이를 동양과 서양의 가치관, 자연관의 차이로 풀이합니다. 산을 이 눈으로 읽은 글은 산을 그린 씨앗페 출품작 읽기에 있습니다.
  • 1910년대와 1920년대 — 한국에서 풍경화가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이 1910년대이고, 1920년대 조선미술전람회에는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이름 없는 장소를 그린 그림이 여럿 나왔습니다. 조선미전에서 풍경화는 평균 50%가 넘었다고 합니다.
  • 1930년대 — 이인성과 김용조는 "성당, 도시의 뒷골목, 해수욕장 등 근대의 일상적 풍경을 경쾌한 색조로 표현"했다고 항목은 적습니다. 도시의 뒷골목이 풍경화의 소재로 이름을 올린 대목입니다.
  • 1950년대 — 입체파적 분할 양식으로 6·25전쟁의 상흔이 드러난 풍경을 표현하거나 고향과 전원 풍경을 반추상 양식으로 구성하는 등 모더니즘 양식의 풍경화가 성행했다고 항목은 적습니다.
  • 1980년대 이후 — 구상미술이 다시 떠오르면서 풍경화는 회화만이 아니라 사진, 판화, 비디오 영상 등 다양한 매체로 새롭게 다뤄졌다고 항목은 정리합니다.

마지막 줄이 이 글의 열네 점이 놓인 자리입니다. 같은 도시가 유채 위에서도, 먹 위에서도, 수채와 사진과 디지털 프린트 위에서도 그려집니다. 이제 그 열네 점을 길에서 시작해 시장, 터와 옛집, 도시의 전경, 집과 마을 순으로 따라갑니다.

길과 골목 — 낮의 거래, 밤의 불빛 하나

신학철 〈골목길〉 — 사과 값이 적힌 오후

글머리의 그림입니다. 화면의 왼쪽 절반을 과일 수레가 차지합니다. 노란 팻말에 '사과 7개 1000'이라고 적혀 있고, 수레 뒤에서 검은 옷의 상인이 과일을 집어 건넵니다. 수레 앞에는 흰 줄무늬 스웨터에 꽃무늬 바지를 입은 손님이 등을 보인 채 검은 봉지를 들고 서 있습니다. 길 안쪽으로는 단발머리 여자 둘과 양복 입은 남자 하나가 멀어지고, 그 너머로 전봇대와 건물이 뿌옇게 풀리다가 맨 끝에 뾰족한 첨탑 하나가 겨우 보입니다. 왼쪽 건물에는 아치형 문이 있습니다. 파랑과 분홍과 크림빛의 옅은 색이 화면 전체에 깔려 오후의 흐린 빛처럼 가라앉아 있고, 물감은 얇게 올라가 있습니다. 오른쪽 아래에는 붓으로 쓴 서명이 보입니다.

제목은 골목길이지만 화면을 끌고 가는 것은 수레와 값입니다. 가장 또렷한 색이 노란 팻말이라서, 이 길은 건물의 길이기 전에 사고파는 길로 읽힙니다. 사람이 여럿 오가고 서로 값을 주고받는 장면이라는 점을 기억해 두면, 뒤에 나올 밤의 골목들과 대비가 분명해집니다. 신학철이 사진을 오려 붙여 한국 현대사를 그려 온 화가라는 점은 신학철 글에서, 그가 속한 흐름은 민중미술이란 무엇인가에서 이어 읽으실 수 있습니다.

칡뫼 김구 〈밤골목길 ㅡ귀가〉 — 불빛 하나로 줄어든 골목

칡뫼 김구, 〈밤골목길 ㅡ귀가〉, 종이 먹 채색, 72.8x52.2cm — 어두운 건물 사이 골목 한가운데에 노랗고 하얀 불빛이 번지고, 주황 옷의 사람이 등을 보이며 걸어 들어간다
칡뫼 김구, 〈밤골목길 ㅡ귀가〉, 종이 먹 채색, 72.8x52.2cm — 어두운 건물 사이 골목 한가운데에 노랗고 하얀 불빛이 번지고, 주황 옷의 사람이 등을 보이며 걸어 들어간다

종이 위에 먹으로 그렸다고 하면 흑백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 화면은 어둠 한가운데에서 노랗고 하얀 불빛이 터집니다. 양옆으로 어두운 건물이 높이 서고 그 사이를 전선이 사선으로 가로지릅니다. 가운데 위쪽 벽면이 불빛을 받아 하얗게 타오르고, 그 아래 골목 바닥이 빛을 받아 환합니다. 길 한가운데에서 주황색 옷의 사람 하나가 등을 보이며 안쪽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오른쪽에는 흰 승합차가, 왼쪽 앞에는 차 한 대와 주황색 라바콘이 놓여 있습니다. 화면 전체에는 빨강과 파랑과 흰색, 검정의 작은 조각이 눈송이처럼 흩어져 있고, 표면은 잔 점이 쌓인 듯 오돌토돌합니다.

제목의 '귀가'가 가리키는 사람은 화면 속에 하나뿐입니다. 신학철의 낮의 길에서 여러 사람이 값을 주고받았다면, 이 골목은 한 사람이 걸어 들어가는 자리입니다. 불빛이 사람보다 훨씬 크게 그려져 있어서, 화면의 무게가 사람보다 불빛에 실립니다.

칡뫼 김구 〈밤골목길ㅡ눈길〉 — 눈이 덮은 길, 붉은 줄 하나

칡뫼 김구, 〈밤골목길ㅡ눈길〉, 한지 먹 채색, 45.4x68.7cm — 눈이 덮인 차들과 바퀴 자국이 난 길이 안쪽의 환한 불빛으로 이어지고, 가는 붉은 줄이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굽이친다
칡뫼 김구, 〈밤골목길ㅡ눈길〉, 한지 먹 채색, 45.4x68.7cm — 눈이 덮인 차들과 바퀴 자국이 난 길이 안쪽의 환한 불빛으로 이어지고, 가는 붉은 줄이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굽이친다

세로로 긴 화면입니다. 길 양쪽의 차들이 눈에 덮여 둥글고 하얀 덩어리가 되었고, 길바닥에는 바퀴 자국이 안쪽으로 이어집니다. 길이 끝나는 자리에서 불빛이 번지고, 그 빛 속에 아주 작은 사람 하나가 서 있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왼쪽 위에서 시작해 화면을 가로질러 오른쪽 아래로 굽이쳐 내려오는 가는 붉은 줄입니다. 전선인지 실인지 정해 주지 않은 채 골목 전체를 한 번에 꿰고 지나갑니다. 노랑, 초록, 파랑, 빨강, 검정, 흰색의 작은 조각들이 허공과 길 위에 흩어져 있는 것은 앞의 〈귀가〉와 같습니다.

'밤골목길'이라는 제목을 나눠 가진 두 점은 제작 연도가 2009년과 2025년으로 열여섯 해 떨어져 있습니다. 한 점은 가로로 넓고 한 점은 세로로 길며, 한 점은 밤의 차와 라바콘을, 한 점은 눈과 바퀴 자국을 그렸습니다. 두 화면 모두 길의 안쪽에 빛을 두고 그 빛 속에 작은 사람을 세웠습니다. 이 작가의 밤골목길 연작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는 칡뫼 김구 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시장 — 이름만 남은 노을, 선으로 남은 사람들

박성완 〈대인시장놀〉 — 시장 이름을 단 노을

박성완, 〈대인시장놀〉, Oil on canvas, 53x45.5cm — 분홍과 주황과 노랑의 노을 하늘 아래 파랑·보라·붉은빛 지붕과 건물이 빽빽이 쌓이고, 왼쪽에 가늘고 붉은 탑이 서 있다
박성완, 〈대인시장놀〉, Oil on canvas, 53x45.5cm — 분홍과 주황과 노랑의 노을 하늘 아래 파랑·보라·붉은빛 지붕과 건물이 빽빽이 쌓이고, 왼쪽에 가늘고 붉은 탑이 서 있다

제목에 시장의 이름이 있는데 화면에는 가판도 간판도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늘이 화면의 반을 넘게 차지합니다. 분홍과 주황과 노랑의 띠가 가로로 겹치고 그 사이로 연한 파랑과 보라의 구름이 끼어 있으며, 물감이 두껍게 올라가 붓이 지나간 방향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하늘 아래에서는 파랑, 보라, 붉은 갈색의 지붕과 건물이 덩어리로 포개지고, 왼쪽에는 가늘고 붉은 탑 하나가 솟아 있습니다. 시장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제목뿐입니다.

디지털광주문화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은 대인시장을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동의 전통시장으로 소개하며 1976년에 시장이 개설됐다고 적습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쇼핑센터가 들어서면서 상권이 위축됐다가, 2008년 광주비엔날레의 '복덕방 프로젝트'를 계기로 작업 공간을 찾는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예술야시장이 열리고 '대인예술시장'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게 됐다고 합니다. 이 화면은 그런 시장의 가판과 간판 대신 지붕과 노을을 그렸습니다. 작가의 광주는 박성완 글에서 따라갈 수 있습니다.

〈대인시장놀〉은 이미 새 주인을 만났습니다.

이은화 〈고군분투〉 — 시장 사람이 선이 될 때

이은화, 〈고군분투〉, Acrylic on canvas, 53x53cm — 정사각형 화면 전체를 주황색 선이 실타래처럼 뒤덮고, 선 사이사이로 노랑·분홍·청록·초록·파랑·빨강의 작은 칸이 비친다
이은화, 〈고군분투〉, Acrylic on canvas, 53x53cm — 정사각형 화면 전체를 주황색 선이 실타래처럼 뒤덮고, 선 사이사이로 노랑·분홍·청록·초록·파랑·빨강의 작은 칸이 비친다

앞의 화면이 시장을 지붕으로 그렸다면 이 화면은 시장 사람을 선으로 그렸습니다. 정사각형 화면 전체를 주황색 선이 실타래처럼 뒤덮고 있고, 선과 선 사이의 작은 칸마다 노랑, 분홍, 청록, 초록, 파랑, 빨강이 반짝입니다. 건물도 사람도 길도 없습니다. 주황이 가장자리까지 한 톤으로 이어져서, 칸 속의 색들이 얽힌 선 아래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처럼 보입니다.

작가는 작품 설명에서 모란시장 상인들의 내면을 담은 심리초상화라고 밝혔습니다. 처음 찾은 모란시장이 치열한 삶의 현장이면서 강한 생명력이 넘치는 공간이었고, 바쁜 상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촬영을 최소한으로 줄인 채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화면을 가득 메운 선은 끝없이 이어지는 삶의 관계망을, 그 사이의 반짝이는 색은 힘겨운 일상을 버텨 내는 사람들의 내면이 품은 빛깔을 상징한다는 설명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성남 모란시장」 항목은 이 시장이 1970년 초부터 서울의 도시 재개발로 인구가 성남으로 모여들면서 길가에 장이 서기 시작해 1974년에 본격적으로 개장했다고 적습니다. 4일과 9일로 끝나는 날마다 열리는 정기시장이고, 2015년 기준 노점이 950여 개라고 합니다. 대인시장의 노을이 시장이 놓인 동네를 보여 줬다면, 이 화면은 그 시장에 모인 사람들의 관계를 보여 줍니다. 두 화면 모두 시장의 풍경을 직접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 같고, 한쪽은 하늘로 한쪽은 선으로 돌아갔다는 점이 다릅니다. 이 작가의 작업은 이은화 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터와 옛집 — 박성완의 광주와 대구

앞서 〈대인시장놀〉을 그린 박성완의 2026년작 두 점이 상설 갤러리에 있습니다. 한 점은 광주의 공장 터, 한 점은 대구의 옛집입니다.

박성완 〈전남방직〉 — 굴뚝만 남은 터

박성완, 〈전남방직〉, 41x32cm — 회청색 하늘과 흰 구름 아래 갈색 구조물 위로 굴뚝 둘이 솟고, 아래쪽은 회청색 면이며, 화면 오른쪽에서 연두색 잎이 달린 가지가 위로 뻗는다
박성완, 〈전남방직〉, 41x32cm — 회청색 하늘과 흰 구름 아래 갈색 구조물 위로 굴뚝 둘이 솟고, 아래쪽은 회청색 면이며, 화면 오른쪽에서 연두색 잎이 달린 가지가 위로 뻗는다

하늘이 위쪽 3분의 1 남짓을 덮습니다. 회청색 바탕에 흰 구름이 두꺼운 붓질로 얹혀 있습니다. 그 아래 화면 가운데에서 오른쪽으로 치우친 자리에 녹슨 빛의 갈색 구조물이 서고, 구조물 위로 굴뚝 둘이 솟습니다. 그 왼쪽에는 붉은 굴뚝이 하나 더 보이고, 낮은 붉은 지붕들이 그 사이를 잇습니다. 화면 아래쪽 절반 가까이는 회청색의 납작한 면으로 넓게 비어 있고, 오른쪽에서는 연두색 새잎이 달린 가는 가지들이 아래에서 위로 뻗어 오릅니다. 사람은 없습니다.

작가는 작품 설명에서 "광주의 전남방직 터에 남은 화력발전소 굴뚝의 모습"이라고 적었습니다. 서울신문은 2021년 9월 7일 기사(최치봉 기자)에서 광주 북구 임동의 옛 전남방직과 일신방직 부지 개발 협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고 전하며, 시가 1934년 일신방직 공장 건설 당시 철골구조로 지은 화력발전소와 고가수조, 제1·2보일러실을 보존하기로 했다고 적었습니다. 같은 기사는 전남방직이 2017년 말 가동을 중단했다고 밝힙니다. KBS 광주는 2021년 11월 11일 뉴스(김호 기자)에서 이 화력발전소를 1930년대 중반 세워진 철골구조 시설로 소개하고, 광주시가 해방 이전 시설물 네 곳의 원형 보존을 이미 결정한 데 더해 열 개 건축물을 우선 보존 대상으로 정했다고 전했습니다. 개발과 보존 사이에 놓인 터에서 굴뚝을 골라 그린 이 화면은 사람 없이 굴뚝과 새잎만 같은 하늘 아래 남겨 둡니다.

박성완 〈전태일옛집해와〉 — 담벼락에 비스듬히 드는 오후

박성완, 〈전태일옛집해와〉, 60x72cm — 파란 하늘 아래 벽돌 문양의 낮은 벽과 초록 문, 그 앞에 보라색 윗옷의 사람이 서 있고, 오른쪽 아래로 분홍과 주황의 긴 띠가 비스듬히 뻗으며 왼쪽 아래에는 청록빛 그늘이 깔린다
박성완, 〈전태일옛집해와〉, 60x72cm — 파란 하늘 아래 벽돌 문양의 낮은 벽과 초록 문, 그 앞에 보라색 윗옷의 사람이 서 있고, 오른쪽 아래로 분홍과 주황의 긴 띠가 비스듬히 뻗으며 왼쪽 아래에는 청록빛 그늘이 깔린다

세로로 선 화면입니다. 위쪽 오른편은 선명한 파란 하늘이고, 왼쪽 위에는 주황빛 잎이 남은 가지가 얽혀 있습니다. 하늘 아래로 갈색 지붕이 가로로 얹혀 있고, 그 밑의 담에는 구멍 뚫린 벽돌 문양이 줄지어 있으며, 담 한쪽에 초록색 문이 서 있습니다. 문 앞에서 보라색 윗옷에 하늘색 바지를 입은 사람이 얼굴 쪽으로 손을 올리고 있습니다. 오른쪽은 흰 벽이고, 그 아래에서는 분홍과 주황의 긴 띠가 오른쪽 아래로 비스듬히 뻗으며, 왼쪽 아래 바닥은 청록빛 그늘이 넓게 덮습니다. 굵은 붓질이 면을 쌓아서 담과 땅의 결이 거칠게 살아 있습니다.

작가는 작품 설명에서 대구의 전태일 옛집에 가족과 함께 방문했고, 그곳이 전태일이 학교를 다니며 가장 행복했던 시간의 기억이 있는 곳이라고 적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전태일을 "해방 이후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며 분신한 노동운동가"로 정의하고, 1948년 8월 26일 대구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1954년 가족이 서울로 이주했다고 적습니다. 같은 항목은 그가 1970년대 이후 한국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고 정리합니다. 앞의 〈전남방직〉이 굴뚝과 새잎만 하늘 아래 남겨 두었다면, 이 화면은 한 사람이 옛집 앞에 서 있는 오후를 햇빛과 그림자의 색으로 채웠습니다. 광주의 굴뚝과 대구의 옛집, 두 점 모두 2026년작입니다.

도시의 전경 — 빛줄기, 지붕 더미, 탑 하나, 도로의 문양

김주희 〈동대문〉 — 색을 섞지 않고 겹친 거리

김주희, 〈동대문〉, Oil on canvas, 90.9x72.7cm — 청명한 하늘색 아래 파랑과 보라의 고층 건물이 쌓이고, 가운데에 노란 면과 아치 입구, 앞쪽 도로는 분홍·노랑·흰색 빛줄기로 번진다
김주희, 〈동대문〉, Oil on canvas, 90.9x72.7cm — 청명한 하늘색 아래 파랑과 보라의 고층 건물이 쌓이고, 가운데에 노란 면과 아치 입구, 앞쪽 도로는 분홍·노랑·흰색 빛줄기로 번진다

화면 위쪽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색이고, 그 아래로 파랑과 보라와 흰색의 고층 건물이 계단처럼 쌓여 올라갑니다. 한가운데에는 노란 면이 비스듬히 펼쳐지고, 그 한쪽에 아치 모양의 입구가 뚫려 있으며, 노란 면 위로는 흰 선으로 그은 지붕의 처마가 겹으로 얹혀 있습니다. 아치 오른쪽 옆에는 작은 붉은 구조물이 보입니다. 앞쪽 도로에서는 버스와 승용차가 분홍, 노랑, 흰색, 파랑의 빛줄기로 번져 화면 아래로 휘어 흐르고, 오른쪽 아래에는 횡단보도의 흰 줄이 있습니다.

작가는 작품 설명에서 기억의 순간을 겹쳐 그리는 방식으로 작업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동하면서 시간차를 두고 찍은 사진을 그림으로 옮긴 것이고, 빛나는 추억을 더 밝고 현란하게 표현하려고 일부러 색을 혼합하지 않는다고도 적었습니다. 도판의 차량 궤적이 한 대가 아니라 여러 순간이 겹쳐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 설명과 나란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서울 흥인지문」 항목은 흥인지문을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동쪽 문으로 일명 동대문이라 하고, 중앙에 홍예를 틀어 출입구로 삼았으며 도성의 여덟 성문 가운데 옹성을 갖춘 것은 이 문뿐이라고 설명합니다. 1397년에 도성을 쌓을 때 짓기 시작해 이듬해 세워졌고, 1869년에 전반적인 개축이 있었으며, 1963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1398년에 처음 세워진 성문이 있는 자리는, 제목이 동대문인 이 화면에서 현란한 색 한복판의 노란 면과 아치 입구로 읽힙니다. 이 작가의 오버랩 작업은 김주희 글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박재동 〈도시풍경〉 — 땅이 없는 지붕 더미

박재동, 〈도시풍경〉, 수채화, 34.5x24cm — 흰 종이 위에 갈색·회색·보라의 작은 건물들이 땅 없이 모여 있고, 가운데에 파란 줄이 있는 키 큰 건물이 서며, 맨 위 왼쪽에 회보라색 능선이 흐리게 놓인다
박재동, 〈도시풍경〉, 수채화, 34.5x24cm — 흰 종이 위에 갈색·회색·보라의 작은 건물들이 땅 없이 모여 있고, 가운데에 파란 줄이 있는 키 큰 건물이 서며, 맨 위 왼쪽에 회보라색 능선이 흐리게 놓인다

종이의 흰색이 화면 대부분입니다. 위쪽 왼편에 회보라색 능선이 물기를 머금은 채 흐리게 놓였고, 그 아래로 갈색과 회색과 황토빛의 작은 건물이 덩어리로 모여 있습니다. 창은 검은 점과 타원으로만 찍혔습니다. 가운데에서는 키 큰 건물 하나가 왼쪽 가장자리에 파란 세로 띠를 두르고 서 있고, 오른쪽에서는 연한 주황빛의 뾰족한 형체가 위로 솟습니다. 건물들 아래는 칠하지 않아서, 지붕과 벽이 땅 없이 종이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른쪽 아래에 손으로 쓴 날짜와 서명이 있습니다.

앞의 〈동대문〉이 도시를 색과 빛으로 가득 채웠다면, 이 수채는 칠하지 않는 것으로 도시를 그렸습니다. 작가 소개에 따르면 박재동은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과 함께 만평 〈한겨레그림판〉을 8년간 연재했습니다. 이 작가의 풍경은 박재동 글에서 이어집니다.

라인석 〈서울타워로부터〉 — 탑 하나만 남은 서울

라인석, 〈서울타워로부터〉, Pigment based inkjet on touched paper, 77.5x107.5cm — 흰 여백 안의 단색 하늘색 바탕 한가운데에 붉은 띠가 감긴 첨탑과 전망대, 기둥만 흐릿하게 서 있다
라인석, 〈서울타워로부터〉, Pigment based inkjet on touched paper, 77.5x107.5cm — 흰 여백 안의 단색 하늘색 바탕 한가운데에 붉은 띠가 감긴 첨탑과 전망대, 기둥만 흐릿하게 서 있다

화면에는 탑 하나뿐입니다. 흰 여백으로 둘러싸인 하늘색 바탕 한가운데에 붉은 띠가 감긴 가는 첨탑이 서고, 그 아래로 층층이 접힌 전망대와 곧은 기둥이 내려갑니다. 도시를 이루는 건물도 길도 없이 하늘색이 사방을 채웠고, 탑의 윤곽은 초점이 살짝 풀린 듯 부드럽게 번집니다. 하늘 바탕에는 가로 방향의 잔결이 이어져 인화지 표면이 만져진 듯 보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남산서울타워」 항목에 따르면 이 탑은 1969년 8월 세 민영방송국이 종합전파시설 및 관광전망대 시설허가를 받아 1975년 8월 완공했고, 준공 3개월 뒤 체신부가 인수해 보안상 일반에 공개하지 않다가 1980년 10월부터 공개했습니다. 탑 자체의 높이는 236.7m이고 2005년에 타워층을 N서울타워로 고쳐 불렀으며, 서울시는 2018년 이 탑을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했습니다. 완공하고도 몇 해 동안 올라가 볼 수 없던 탑이 도시의 상징이 되었다는 이력을 안고, 이 화면은 서울을 탑 하나와 하늘색 한 면으로 줄였습니다. 이 작가가 사진 표면을 어떻게 만지는지는 라인석 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 77.5x107.5cm · Pigment based inkjet on touched paper, 하얀색 원목액자 · 2019 · ₩5,000,000
  • 작품 페이지 →

신건우 〈TOKYO CITY 4〉 — 불 켜진 창과 꺼진 창

신건우, 〈TOKYO CITY 4〉, 캔버스에 아크릴, 61x72cm — 회색 아파트 외벽에 발코니 난간이 층층이 지나가고, 하얀 창과 검은 창이 번갈아 놓이며, 맨 아래 노란 벽의 매점 앞에 붉은 윗옷과 파란 윗옷의 두 사람이 서 있다
신건우, 〈TOKYO CITY 4〉, 캔버스에 아크릴, 61x72cm — 회색 아파트 외벽에 발코니 난간이 층층이 지나가고, 하얀 창과 검은 창이 번갈아 놓이며, 맨 아래 노란 벽의 매점 앞에 붉은 윗옷과 파란 윗옷의 두 사람이 서 있다

서울의 풍경을 따라온 눈에 도쿄의 연작 한 점이 들어옵니다. 세로로 선 화면의 위쪽 대부분을 회색 아파트 외벽이 채웁니다. 검은 난간이 층마다 가로로 지나가고, 창은 하얗게 불이 켜진 것과 검게 꺼진 것이 규칙 없이 번갈아 놓입니다. 건물 아래쪽에서야 사람이 보입니다. 노란 벽 앞의 매점 창구에서 붉은 윗옷의 사람과 파란 윗옷의 사람이 창구를 향해 나란히 서 있고, 매점 옆의 하얀 입간판이 비스듬히 기울었습니다. 페인트를 칠한 듯 평평한 면과 가는 검은 선으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질감보다 면의 대비가 먼저 보입니다.

작가는 작품 설명에서 도시는 볼 때마다 다르게 보이고, 도시를 산책하며 마주한 풍경이 캔버스 안에서 실제와 허구의 경계를 오간다고 적었습니다. 이 작품은 그렇게 산책하며 마주한 도쿄의 풍경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앞의 〈동대문〉이 색과 빛줄기로 도시를 흔들었다면, 이 화면은 도시를 면과 선으로 고정해 두었습니다. 같은 연작과 작가의 이력은 신건우 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김태균 〈Ornament #3-1〉 — 두 도시의 교차로가 문양이 될 때

김태균, 〈Ornament #3-1〉, 디지털 프린트, 디아섹, 100x100cm — 흰 바탕에 회색 가는 선이 방사형으로 겹겹이 얽혀 눈송이 같은 원형 문양을 이루고, 가장자리에 열두 개의 마름모꼴 매듭이 둘러 있다
김태균, 〈Ornament #3-1〉, 디지털 프린트, 디아섹, 100x100cm — 흰 바탕에 회색 가는 선이 방사형으로 겹겹이 얽혀 눈송이 같은 원형 문양을 이루고, 가장자리에 열두 개의 마름모꼴 매듭이 둘러 있다

앞의 화면들이 도시를 건물과 길로 그렸다면 이 화면은 도시를 문양으로 접었습니다. 정사각형 흰 바탕 한가운데에서 회색 가는 선이 방사형으로 퍼지며 눈송이 같은 원을 이룹니다. 선은 겹겹이 얽혀 안쪽일수록 촘촘하고, 가장자리에는 열두 개의 마름모꼴 매듭이 같은 간격으로 둘러 있으며, 그 바깥으로 가는 선이 가시처럼 뻗어 나갑니다. 좌우와 위아래가 거울처럼 같아 보여서 길인지 덩굴인지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작가는 작품 설명에서 이 작업을 서울과 평양, 두 도시로 진입하는 각각의 입체 교차로를 수집해 새로운 문양으로 재구성한 사진 콜라주라고 소개했습니다. 서로의 길과 길이 만나고 맞대어 만들어 내는 이 문양의 형태가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에 대한 예술적 해석이자 새로운 미래에 대한 시적 은유라는 설명입니다. 도시를 그리는 일이 이 작품에서는 도로를 모아 무늬로 짜는 일이 됩니다. 같은 해의 짝 〈Ornament #3〉과 작가의 이야기는 김태균 글에서 볼 수 있습니다.

  • 100x100cm · 디지털 프린트, 디아섹 · 2013 · 에디션 5/10 · ₩4,000,000
  • 작품 페이지 →

집과 마을 — 언덕 위의 지붕들

김규학 〈바람과 빛-54〉 — 해 저무는 언덕 동네

김규학, 〈바람과 빛-54〉, 캔버스에 유화, 80x61cm — 회청색 하늘 아래 낮은 능선을 배경으로 하얀 벽과 기와·함석 지붕이 촘촘히 얽힌 언덕 동네가 펼쳐진다
김규학, 〈바람과 빛-54〉, 캔버스에 유화, 80x61cm — 회청색 하늘 아래 낮은 능선을 배경으로 하얀 벽과 기와·함석 지붕이 촘촘히 얽힌 언덕 동네가 펼쳐진다

시선이 높은 자리에서 아래로 내려옵니다. 옅은 회청색 하늘에는 흰 구름 몇 점이 떠 있고, 그 아래로 어두운 능선이 낮게 이어집니다. 능선 앞에서 하얀 벽과 붉은 기와, 함석 지붕이 촘촘히 맞물려 언덕을 덮고 있습니다. 전봇대가 곳곳에 서고, 오른쪽에는 잎이 무성한 나무 한 그루가 하얗게 서 있습니다. 지붕과 벽의 면은 평평하게 칠해져 사진 같은 인상을 주고, 하늘에는 긁힌 듯한 흰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작가는 작품 설명에서 이 그림을 "해질 녘 산등성이 언덕 배기 허름한 동네, 허물어질 것 같은 기와 지붕과 담 벼락, 풍화된 삶의 흔적처럼 마음속에 침잠되어 있는 오래전 달동네 같은 사람 사는 곳"이라고 적었고, 그 위로 어둑어둑 해가 저문다고 했습니다. 작가 소개에 따르면 김규학은 도시의 풍경을 회화 언어로 재해석해 온 인천 기반의 작가입니다. 앞의 〈대인시장놀〉이 노을 진 지붕을 멀리서 보았다면, 이 화면은 같은 지붕을 한 겹씩 세어 내려갑니다. 이 작가의 풍경은 김규학 글에서 이어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손은영 〈언덕위의 집〉 — 색을 입힌 사진 속 골목

손은영, 〈언덕위의 집〉, Archival pigment print, 60x50cm — 내려가는 돌계단 너머로 노랑·보라·연두·붉은 벽돌색 집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붉은 기와와 청회색 지붕이 겹치며, 오른쪽 앞에 청록색 기둥 둘이 선다
손은영, 〈언덕위의 집〉, Archival pigment print, 60x50cm — 내려가는 돌계단 너머로 노랑·보라·연두·붉은 벽돌색 집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붉은 기와와 청회색 지붕이 겹치며, 오른쪽 앞에 청록색 기둥 둘이 선다

맨 아래에서는 돌계단이 화면 안쪽으로 내려갑니다. 계단 너머로 지붕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노랑, 연보라, 연두, 붉은 벽돌색의 집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서 있고, 붉은 기와와 청회색 지붕이 층층이 겹칩니다. 오른쪽 앞에는 청록빛 기둥 둘이 화면을 눌러 서고, 왼쪽에는 회청색 벽이 세로로 길게 닫습니다. 사람은 없고, 집마다 창이 작게 뚫려 있습니다. 앞의 〈바람과 빛-54〉가 낡은 동네를 회청색으로 가라앉혔다면, 이 화면은 언덕 위 동네라는 점은 같은데 색은 정반대로 환합니다.

작가는 집 연작을 설명하면서 《밤의 집》과 《기억의 집》이 집을 정물처럼 근접한 거리에서 바라봤다면 《그 집에 산다》는 집들이 함께 어울려 모여 있는 골목을 중심으로 바라보고자 했다고 적었습니다. 같은 설명에 따르면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촬영한 다양한 형태의 집들에 마치 도색하듯 색을 입히고, 낡거나 헌 물건을 고치듯 새롭게 표현하려 했으며, 사람의 온기와 친밀도를 느낄 수 있도록 따뜻한 색조를 많이 썼다고 합니다. 사진으로 남은 골목이 색을 입고 다시 그림처럼 서 있는 셈입니다. 작가의 집 연작은 손은영 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열네 점을 나란히 놓고 보면

작품바탕과 재료도시의 어느 자리먼저 보이는 것
신학철 〈골목길〉유채 캔버스낮의 길, 과일 노점노란 팻말의 '사과 7개 1000'
칡뫼 김구 〈밤골목길 ㅡ귀가〉종이, 먹 채색밤 골목한복판의 불빛과 걸어 들어가는 사람
칡뫼 김구 〈밤골목길ㅡ눈길〉한지, 먹 채색눈 덮인 골목가로지르는 붉은 줄
박성완 〈대인시장놀〉유채(Oil on canvas)시장이 놓인 동네의 하늘노을 하늘과 지붕 덩어리
이은화 〈고군분투〉아크릴(Acrylic on canvas)시장 사람들얽힌 주황 선과 작은 색 칸
박성완 〈전남방직〉—공장 터굴뚝 둘과 새잎
박성완 〈전태일옛집해와〉—옛집 앞초록 문 앞의 사람과 비스듬한 색 띠
김주희 〈동대문〉유채(Oil on canvas)성문과 큰길색을 섞지 않은 차량의 빛줄기
박재동 〈도시풍경〉수채화지붕 더미칠하지 않은 종이의 흰 바탕
라인석 〈서울타워로부터〉피그먼트 잉크젯, 만진 종이탑 하나하늘색 한 면과 붉은 띠 첨탑
신건우 〈TOKYO CITY 4〉캔버스, 아크릴아파트 외벽과 매점불 켜진 창과 꺼진 창
김태균 〈Ornament #3-1〉디지털 프린트, 디아섹서울과 평양의 교차로방사형으로 얽힌 가는 선
김규학 〈바람과 빛-54〉캔버스, 유화언덕 위 동네하얀 벽과 기와·함석 지붕
손은영 〈언덕위의 집〉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계단 너머 골목의 집들파스텔빛 벽과 청록 기둥

표를 가로로 읽으면 같은 도시가 어디서 시작되는지 보입니다. 신학철은 길에서, 김구는 밤의 불빛에서, 박성완은 하늘과 굴뚝과 담벼락에서, 이은화는 시장 사람의 관계에서, 라인석은 탑 하나에서 도시를 불러냅니다. 먹과 한지는 불빛과 눈을 남겼고, 유채와 아크릴은 면과 빛줄기를, 수채는 칠하지 않은 자리를, 프린트는 문양과 색칠한 사진을 남겼습니다.

열네 점 앞에서 먼저 볼 것

  1. 사람이 있는가. 신학철의 길에는 사람이 여럿이고 거래가 있습니다. 김구의 두 골목에는 걸어 들어가는 사람, 멀리 선 사람이 하나씩이고, 박성완의 〈전태일옛집해와〉와 신건우의 매점 앞에도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대인시장놀〉, 〈고군분투〉, 〈전남방직〉, 〈도시풍경〉, 〈서울타워로부터〉, 〈Ornament #3-1〉, 〈바람과 빛-54〉, 〈언덕위의 집〉에서는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2. 제목의 이름이 화면에 어떻게 들어 있는가. 〈대인시장놀〉은 시장의 이름을 달고 노을을 그렸고, 〈서울타워로부터〉는 탑 하나로 서울을 대신하며, 〈Ornament #3-1〉은 두 도시의 도로를 문양으로 바꿉니다. 이름이 가리키는 장소와 화면이 보여 주는 것 사이의 거리가 작품마다 다릅니다.
  3. 빛이 어디서 오는가. 김구의 불빛은 골목 안쪽에서 번지고, 박성완의 노을은 하늘 전체에서 내려오며, 김주희의 빛은 차량의 궤적이 되고, 신건우의 빛은 창마다 켜진 것과 꺼진 것으로 나뉩니다.
  4. 어디에 서서 보는가. 신학철과 김구는 길 한복판 눈높이에 서 있습니다. 김규학과 손은영은 높은 자리에서 지붕 더미를 바라봅니다.

작품을 걸 자리를 고르는 요령은 미술품 보관과 관리에 정리해 두었고, 박성완의 다른 작품을 사건과 기록의 눈으로 읽은 글은 기억을 화면으로 옮기는 방법, 여러 화가의 회화를 한꺼번에 읽고 싶다면 씨앗페의 회화로 이어집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함께한 연대자들이고, 상설 온라인 갤러리 작품의 판매 수익은 상호부조 기금이 되어 저금리 대출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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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풍경화란 무엇인가요? A.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풍경화를 "자연 풍경이나 도시의 환경 등 집 밖의 경치를 그린 그림"으로 정의합니다. 한국에는 20세기 초 일본을 통해 일점 시각에 입각한 서구 근대 풍경화가 들어왔고, 이후 풍경화가 한국 구상회화의 주된 경향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Q. 산수화와 풍경화는 어떻게 다른가요? A. 대백과사전은 산수가 단순한 경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이자 의미와 정서로 충만한 이상향인 반면, 풍경화에서 경관은 화가에 의해 선택되고 배치되는 물체에 가깝다고 구분합니다. 이 차이를 동양과 서양의 가치관, 자연관의 차이로 풀이합니다.

Q. 한국 근대 풍경화에서 도시의 골목은 어떻게 다뤄졌나요? A. 대백과사전은 1930년대에 이인성과 김용조가 성당, 도시의 뒷골목, 해수욕장 등 근대의 일상적 풍경을 경쾌한 색조로 표현했다고 적습니다. 1950년대에는 전쟁으로 파괴된 풍경과 심상이 입체파적 분할법으로 표현되었고, 1980년대 이후 구상미술이 다시 떠오르며 사진과 판화, 영상 같은 다양한 매체로 풍경이 다뤄졌다고 정리합니다.

Q. 씨앗페 온라인 갤러리에서 지금 만날 수 있는 도시·골목 그림은 무엇인가요? A. 이 글에 소개한 열네 점 가운데 박성완 〈대인시장놀〉을 뺀 열세 점입니다. 신학철 〈골목길〉, 칡뫼 김구 〈밤골목길 ㅡ귀가〉와 〈밤골목길ㅡ눈길〉, 이은화 〈고군분투〉, 박성완 〈전남방직〉과 〈전태일옛집해와〉, 김주희 〈동대문〉, 박재동 〈도시풍경〉, 라인석 〈서울타워로부터〉, 신건우 〈TOKYO CITY 4〉, 김태균 〈Ornament #3-1〉, 김규학 〈바람과 빛-54〉, 손은영 〈언덕위의 집〉입니다. 박성완 〈대인시장놀〉은 이미 새 주인을 만났습니다.

Q. 흥인지문(동대문)은 어떤 문인가요? A. 대백과사전은 서울 종로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축조된 한양도성의 동쪽 성곽문으로,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고 적습니다. 1397년 도성을 쌓을 때 짓기 시작해 이듬해 세워졌고 1869년 전반적인 개축이 있었으며, 도성의 여덟 성문 가운데 옹성을 갖춘 것은 이 문뿐이라고 합니다. 씨앗페에서는 김주희의 〈동대문〉이 이 문이 있는 거리를 그렸습니다.

Q. 서울타워는 언제 지어졌나요? A. 대백과사전의 「남산서울타워」 항목에 따르면 1969년 8월 세 민영방송국이 시설허가를 받아 1975년 8월 완공했습니다. 준공 3개월 뒤 체신부가 인수해 일반에 공개하지 않다가 1980년 10월부터 공개했고, 2005년 타워층을 N서울타워로 고쳐 불렀습니다. 라인석의 〈서울타워로부터〉가 이 탑을 하늘색 한 면 위의 첨탑으로 담았습니다.

Q. 모란시장은 어떤 시장인가요? A. 대백과사전은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성남동에 있는 정기시장으로 소개합니다. 1970년 초부터 서울의 도시 재개발로 성남으로 모여든 인구와 함께 길가에 장이 서기 시작해 1974년에 본격적으로 개장했고, 1990년 지금의 장터로 옮겼다고 합니다. 이은화의 〈고군분투〉는 이 시장 상인들의 내면을 그린 심리초상화입니다.

Q. 박성완의 〈전남방직〉은 어떤 곳을 그렸나요? A. 작가는 광주의 전남방직 터에 남은 화력발전소 굴뚝의 모습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서울신문은 2021년 9월 7일 기사에서 광주시가 1934년 일신방직 공장 건설 당시 철골구조로 지은 화력발전소와 고가수조, 제1·2보일러실을 보존하기로 했고 전남방직이 2017년 말 가동을 중단했다고 전했습니다. 박성완의 광주 이야기는 박성완 글에 있습니다.

Q. 칡뫼 김구의 밤골목길 연작을 더 읽을 글이 있나요? A. 칡뫼 김구 — 먹과 한지로 그리는 분단, 그리고 밤골목길의 16년에서 연작의 이력과 이 글의 두 점을 포함한 출품작 여섯 점을 다룹니다.

참고한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 풍경화(김현숙), 성남 모란시장(이석무), 서울 흥인지문(장경호), 남산서울타워(이영택·김건유), 전태일(류제철)
  • 디지털광주문화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임성진 집필 「대인시장」
  • 서울신문, 최치봉 기자, 「근대 산업 유산 전남방직, 개발이냐 보전이냐…개발방안 협의 착수」, 2021년 9월 7일 — 원문
  • KBS 뉴스9(광주), 김호 기자, 「전방·일신방직 절반 보존…복합 상업지역 추진」, 2021년 11월 11일 —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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