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그린 그림도 열두 점을 나란히 놓으면 산이 열두 가지로 서 있습니다. 윤곽선만 세우고 속을 비운 먹의 절벽, 달걀처럼 둥근 다섯 봉우리, 칼로 파낸 바위 면, 종이의 흰색으로 남긴 구름, 제목에만 산이 있는 소나무 숲 사진까지. 씨앗페 온라인 갤러리의 작품으로 재료와 시선과 시대가 산을 어떻게 바꾸는지 읽습니다.
산을 그린 씨앗페 출품작 읽기 — 같은 산이 먹·채색·판화·수채·사진·돌에서 달라지는 열두 가지 방식

산을 그린 그림은 한 장씩 보면 모두 산입니다. 열두 장을 나란히 놓으면 산이 열두 가지로 서 있습니다. 어떤 산은 윤곽선만 세우고 속을 바탕의 흰색으로 비워 두고, 어떤 산은 달걀처럼 둥글고, 어떤 산은 칼로 파낸 바위 면이 층층이 쌓입니다. 제목에는 산이 있는데 화면에는 안개 속 소나무 숲만 서 있는 사진도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산수화를 "산과 강 등의 자연경관을 소재로 그린 동양화"로 풀이합니다. 씨앗페 온라인 갤러리에는 먹과 분채로 그린 동양화만이 아니라 목판, 수채, 사진, 돌과 아크릴로 산을 다룬 작품이 함께 걸려 있습니다. 이 글은 그 가운데 열두 점을 골라, 재료와 시선이 바뀔 때 같은 소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읽습니다. 작품 사이의 비교는 화면에 보이는 구성과 선과 색을 기준으로 합니다.
열두 점 가운데 김현철 〈산〉과 이익태 〈山〉은 이미 새 주인을 만났습니다. 나머지 열 점은 상설 온라인 갤러리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먹과 분채의 구분이 낯설다면 한국화 기법 지도를, 목판과 수채와 사진의 재료가 궁금하다면 판화 기법 지도·서양화 재료·기법 지도·사진 기법 지도를 곁에 두고 읽으시면 좋습니다.
산을 그리는 말은 시대마다 달랐다
작품으로 들어가기 전에, 산을 그리는 방식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짧게 짚어 둡니다. 아래 내용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산수화」「진경산수화」 항목에 기댔습니다.
대백과사전은 동양의 산수화가 "자연의 표현인 동시에 인간이 자연에 대해 지니고 있는 자연관의 반영"이라고 설명합니다. 자연을 죽은 물건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존재로 보았기 때문에 산수화는 기운이 생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에 놓였다고 합니다. 산을 그린다는 것은 산의 모양을 옮기는 일이면서 산을 어떤 존재로 보는가를 화면에 드러내는 일이었습니다.
시대별로 보면 이렇습니다.
- 고구려 고분벽화 — 5세기 초 덕흥리고분의 수렵도에는 사냥하는 기마인물 뒤로 "넓은 판자를 굴곡 있게 오려서 세워 놓은 듯한 산악"이 있습니다. 산은 아직 사람 뒤의 배경이었습니다.
- 조선 초기 — 안견과 그 뒤를 잇는 화가들은 "산을 웅장하게 표현하고, 인물이나 동물을 매우 작게 묘사하는 경향"을 띠었다고 대백과사전은 적습니다. 산이 커지고 사람이 작아졌습니다.
- 조선 후기의 진경산수 — 정선이 금강산과 영남 지방, 서울 근교를 직접 다니며 그린 산천이 하나의 흐름을 이룹니다. 대백과사전은 진경산수의 특색을 "실경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회화적 재구성을 통하여 경관에서 받은 감흥과 정취를 감동적으로 구현"한 데 있다고 설명합니다. 같은 항목은 정선의 금강산 화법을 예각의 바위 봉우리는 날카로운 수직의 선으로 요약하고 부드러운 흙산은 점으로 찍어 서로 대비시킨 것으로 소개합니다.
- 조선 말기부터 20세기 — 남종화가 주류가 되면서 정선 일파의 진경산수는 민화에 그 전통이 전해질 뿐이었고,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까지는 특정 명승이 아니라 생활 주변의 풍경을 그리는 사경산수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양식보다 정신적 배경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입니다.
정선의 〈금강전도〉(1734)를 해설한 대백과사전 항목(겸재정선미술관 송희경 관장 집필)은 이 그림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시로 내금강을 원형으로 배치했다고 설명합니다. 한쪽에는 미점으로 부드러운 흙산과 숲을, 나머지에는 가늘고 긴 필선을 수직으로 그어 바위산의 골기를 세웠고, 짙은 채색 없이 수묵 위주에 옅은 청색을 번지게 했습니다. 이 설명을 눈에 담아 두면 아래의 열두 점에서 무엇이 이어지고 무엇이 달라졌는지 더 잘 보입니다.
먹 — 윤곽을 세우거나 글자로 줄이거나
김현철 〈산〉 — 속을 비운 절벽

화면의 왼쪽 끝은 물을 머금은 옅은 하늘빛이 번진 자리이고, 나머지는 린넨 바탕 그대로의 흰색입니다. 그 위로 굵은 붓이 길게 끌려 올라가 절벽의 모서리가 됩니다. 절벽은 윤곽선만 서 있고 안쪽은 칠하지 않아, 바탕의 흰색이 그대로 바위가 되고 안개가 되고 허공이 됩니다. 가운데 아래쪽과 오른쪽 가장자리에는 짙은 먹을 눌러 찍은 소나무들이 층층이 가지를 뻗고, 위쪽 가운데에는 지붕으로 보이는 형태가 먹선 사이에 얹혀 있습니다. 오른쪽 가장자리에는 붉은 인장이 위아래로 찍혀 있습니다.
뉴시스는 2025년 2월 겸재정선미술관의 초대전을 전하며 김현철을 간송미술관 연구위원인 한국화가로 소개했습니다. 같은 기사에 따르면 그는 정선의 〈금강내산〉을 임모한 〈금강내산도〉(1997)를 그렸고, 사실적인 산수를 위해 같은 장소를 여러 차례 답사하며 사생에 기반했습니다. 정선이 수직의 선으로 바위산의 골기를 세웠다는 앞의 설명 곁에 〈산〉을 놓으면, 이 절벽도 위로 길게 끌어 올린 먹선으로 서 있다는 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작가가 초상과 진경을 어떻게 공부해 왔는지는 김현철 글에서 따라갑니다.
- 45.5x27.5cm · 린넨에 수묵채색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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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이미 새 주인을 만났습니다.
이익태 〈山〉 — 한 획이 봉우리가 되는 자리

바탕은 종이 섬유가 비치는 연갈색이고, 먹은 한 색뿐입니다. 화면 가운데에서 오른쪽 아래까지 굵은 획이 차지합니다. 왼쪽 아래에서 위로 길게 끌어 올린 획의 끝에 검은 덩어리가 솟고, 그 아래로 가로 획이 오른쪽으로 길게 뻗다가 끝에서 굵게 뭉칩니다. 획의 짜임은 제목의 한자 山을 떠올리게 하고, 동시에 봉우리와 능선을 떠올리게 합니다. 산을 그린 것인지 쓴 것인지 가르는 선이 화면에서 지워져 있습니다.
그 곁에는 아주 작은 것들이 있습니다. 왼쪽 아래에 모자를 쓴 사람의 형상이, 오른쪽 위에 날개를 편 새 한 마리가 먹으로 놓였습니다. 먹의 덩어리가 화면 대부분을 쓰는 만큼 이 둘은 더 작게 보입니다. 앞의 김현철 〈산〉이 윤곽만 세우고 속을 비웠다면 〈山〉은 속을 먹으로 가득 채운 쪽입니다. 같은 먹이라도 선으로 세우는 산과 덩어리로 놓는 산이 이렇게 다릅니다. 이 작가의 이력은 이익태 글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 59x33cm · 먹, 한지 ·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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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도 이미 새 주인을 만났습니다.
채색 — 산을 짓는 세 가지 방법
신광숙 〈일월오봉도 No.1〉 — 궁궐의 산을 달걀로
글머리의 그림입니다. 대백과사전은 일월오봉도(오봉병)를 "조선시대 궁궐 정전의 어좌 뒷편에 놓였던 다섯 개의 산봉우리와 해, 달, 소나무 등을 소재로 그린 병풍"이라고 정의합니다. 같은 항목은 조선 후기의 오봉병이 대체로 이런 구도를 갖는다고 정리합니다. 화면 중앙에 가장 큰 봉우리가 있고 양쪽에 작은 봉우리가 둘씩 모시듯 서며, 해와 달이 양쪽 하늘에 하나씩 뜨고, 폭포가 봉우리 사이에서 아래의 파도치는 물로 떨어지며, 소나무가 양쪽 구석에 대칭으로 서고, 화면 아랫부분을 물결무늬가 가로지릅니다. 대백과사전은 이 병풍이 "국왕의 존재를 상징하는 궁중회화"를 대표하는 그림으로 평가된다고 적습니다.
신광숙의 화면에도 이 요소들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가장 큰 봉우리가 가운데에 서고 좌우로 봉우리가 이어지며, 왼쪽 하늘에는 붉은 해가, 오른쪽 하늘에는 흰 달이 떠 있습니다. 좌우 봉우리의 어깨에는 붉은 줄기의 소나무가 한 그루씩 서고, 봉우리 사이 두 군데로 폭포가 흘러내리며, 맨 아래는 반원을 겹쳐 그린 물결무늬가 화면 폭을 가득 채웁니다. 다른 것은 산의 생김새입니다. 봉우리가 뾰족하지 않고 달걀처럼 둥글며, 표면은 구겨진 종이를 펴 놓은 듯한 결로 덮여 있어 청록빛 위에 올리브색 가는 선이 그물처럼 얽힙니다. 하늘은 무늬 없는 황토빛 한 면입니다.
작가는 작품 설명에서 산의 형태와 질감을 단순화하고, 표면에는 자연이 오랜 시간 쌓아 온 흔적을 연상시키는 질감을 더했다고 적었습니다. 임금의 자리 뒤에 놓이던 산이 가로 51.5cm의 비단 위로 옮겨 온 것입니다. 분채 작업의 맥락은 신광숙 글에서 이어 읽으실 수 있습니다.
- 51.5x32cm · 비단에 분채 · 2026 · ₩6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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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화 〈산중희호〉 — 겹겹이 쌓인 색의 봉우리

신광숙의 산이 한 색조로 정돈된 대칭이라면 김은화의 산은 색이 서로 부딪치는 무리입니다. 하늘은 연둣빛과 청록이 안개처럼 섞이고 그 위에 구리색 금속 반점이 흩뿌려져 있습니다. 먼 능선 끝에는 주홍이 얇게 걸리고, 그 아래로 남색, 보라, 청록, 회색, 분홍, 연두의 봉우리가 앞뒤로 포개집니다. 표면은 곱게 문질러 편 색이 아니라 낟알이 일어난 듯 거칠어서 봉우리마다 결이 다릅니다. 푸른 줄무늬의 폭포가 화면 왼쪽과 오른쪽에서 한 줄기씩 떨어집니다.
호랑이는 한참 뒤에 보입니다. 왼쪽 중간쯤 짙은 남색 봉우리의 옆면에, 금빛으로 칠한 작은 호랑이가 산비탈을 오르는 듯한 자세로 있습니다. 산을 먼저 보고 나서야 호랑이를 알아보게 되는 화면입니다. 작가는 작품 설명에서 산의 리듬 속에 깃든 호랑이의 생명력과 길상의 의미를 담았고, 재료 특유의 물성이 시간이 흐르며 새로운 색채로 피어나듯 인고의 끝에 맞이하는 새로운 희망을 담고자 했다고 적었습니다. 겹겹이 이어지는 산과 흐르는 물의 조화로 자연과 인간,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는 생명의 풍경을 표현했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같은 제목의 2025년작은 하늘이 짙은 분홍으로 얼룩지고, 위로 곧게 솟은 청록과 남색의 봉우리들 사이로 오른쪽 가장자리의 노란 봉우리에 붉은 선의 호랑이가 있습니다. 같은 연작이 한 해 사이에 분홍에서 서늘한 청록으로 온도를 바꾼 것입니다. 두 점은 김은화 글에서 함께 소개합니다(2025년작 보기, ₩2,000,000).
- 70x50cm · 순지에 동박, 먹, 분채 · 2026 · ₩2,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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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호 〈머물고 싶은 순간〉 — 쪼개진 면으로 선 한 봉우리

세 번째 채색은 산 하나를 크게 세웠습니다. 세로로 긴 화면 전체가 민트빛 연둣색이고, 한가운데에 푸른색과 연보라와 초록의 면으로 쪼개진 봉우리가 솟습니다. 면과 면 사이에는 짙은 초록의 가는 선이 갈라진 틈처럼 흐르고, 봉우리 중턱과 위쪽에는 흰 구름이 꽃송이처럼 부풀어 얹혀 있습니다. 봉우리 아래는 분홍과 황토가 톱니 모양으로 맞물린 지층이고, 그 위에 소용돌이 무늬의 작고 둥근 것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왼쪽 가운데로는 푸른 물줄기가 위에서 아래까지 길게 흘러내리고, 위쪽에는 얇은 회색 호가 화면을 가로질러 휩니다.
앞의 두 점이 봉우리를 여럿 놓았다면 이 화면은 봉우리 하나를 면으로 해체해 쌓았습니다. 재료란에는 분채와 함께 연필이 적혀 있어, 전통 채색 재료에 연필이 함께 쓰였음을 알려 줍니다. 신광숙의 비단 위 분채가 질감으로 시간을 말하고 김은화의 동박이 변하는 금속으로 시간을 말한다면, 이 작품은 면의 쪼개짐으로 산을 세웁니다.
- 50x72.7cm · 장지에 연필, 분채 · 2023 · ₩1,5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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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 — 칼과 판이 산을 만든다
김준권 〈산처럼〉 — 윤곽선 없이 쌓은 푸른 능선

화면의 위쪽 3분의 1은 아무것도 찍히지 않은 종이의 흰색입니다. 그 아래에서 가장 먼 봉우리가 거의 흰색에 가까운 연한 푸른색으로 솟고, 앞으로 올수록 능선이 파랑에서 진한 군청으로 짙어지다가 맨 아래는 남색에 가까운 검은 덩어리로 닫힙니다. 윤곽선은 없습니다. 색의 면이 겹치고 그 가장자리가 톱니처럼 들쭉날쭉해서 능선이 안개 속에서 떠오르는 듯 보이고, 푸른 면 안쪽에는 나뭇결 같은 얼룩이 비칩니다. 먹선으로 산을 세운 김현철과 반대로, 선 없이 면의 농도 차이만으로 산의 거리를 만든 화면입니다.
서울문화투데이는 2025년 1월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의 《김준권의 국토-판각장정》을 전하며, 색채가 있는 채묵(동양화 안료)과 무채색의 수묵(먹)을 따로, 때로는 함께 구사하는 작업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붓질이 아니라 프린팅의 압력으로 안료가 한지에 스며든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같은 기사에 실린 작가의 말에는 색이 적당히 감춰진 새벽이나 아침의 사생을 좋아한다는 대목이 있고, 〈산처럼〉의 안개 낀 듯한 푸른 농담은 그 말 곁에서 읽힙니다. 뉴시스는 2024년 4월 영암군립하정웅미술관의 《김준권-백두대간에 스미다》를 전하며 백두대간을 탐사하고 사생으로 기록한 최근 작품 56점이 걸렸다고 보도했습니다. 청주시립미술관의 소장품 목록에도 김준권의 2021년 작업 〈산의 노래〉가 재료 "종이에 목판 (채묵목판)"으로 올라 있습니다. 이 작가의 판화와 이력은 김준권 글과 농경·노동의 한국 미술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 50x45cm · 채묵목판 · 2021 · ₩4,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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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연복 〈북한산을 거닐다-2〉 — 옆으로 걷는 산

가로 165cm에 세로 38cm, 폭이 높이의 네 배를 넘는 띠 모양의 화면입니다. 회색빛 바탕에 검은 칼선이 바위 봉우리의 면을 층층이 쪼개고, 골짜기와 능선 몇 군데에 초록이 얹혀 있습니다. 가운데에서 왼쪽으로는 흰 길 같은 선이 계곡을 따라 굽이치고, 오른쪽 위 능선의 흰 띠 위에는 사람으로 보이는 작은 형상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가운데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는 굵은 검은 사선이 비탈의 면을 가릅니다.
대백과사전은 북한산이 높이 835.6m이고 백운대 등 세 봉우리가 삼각으로 우뚝 솟아 삼각산이라고도 불렸으며, 화강암이 지표에 드러나면서 험준한 암벽 봉우리를 이루었다고 설명합니다. 도판의 봉우리들도 면이 판처럼 갈라져 쌓인 모습입니다. 앞의 〈금강전도〉가 산을 위에서 내려다본 원형 구도였다면 이 화면은 산줄기를 옆으로 따라 걷듯 이어 가는 구도입니다. 제목의 "거닐다"가 화면의 비율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이 작가의 판화는 류연복 글에서 이어집니다.
- 165x38cm · 한지에 목판화 · 2013 · ₩4,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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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와 사진 — 산 앞에 선 자리
이승곤 〈오봉〉 — 나뭇가지 사이로 올려다본 바위 봉우리

하늘의 위쪽은 옅은 파랑이 번진 자리이고, 그 아래 구름은 물감을 올리지 않고 종이의 흰색으로 남긴 듯 보입니다. 오른쪽 위에는 흰 점 하나가 낮달처럼 떠 있습니다. 능선은 초록과 황토가 섞인 짧은 붓질로 덮이고, 그 위로 회백색 바위 봉우리들이 줄지어 솟습니다. 왼쪽에는 따로 떨어진 작은 봉우리가 하나 더 있습니다. 화면 앞쪽은 가늘게 그은 잎 진 가지들이 촘촘히 얽혀 있어서, 보는 사람은 나뭇가지 사이로 산을 올려다보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오른쪽 아래에는 제목과 연도, 붉은 낙관이 있습니다.
이 그림은 바위의 면과 가지의 결을 가는 선으로 얹어 산을 올려다보는 시선을 남겼습니다. 같은 작가가 계절을 바꿔 그린 〈삼각산의 봄〉과 〈삼각산의 여름〉은 이미 새 주인을 만났습니다. 삼각산은 대백과사전이 북한산의 다른 이름으로 올려 둔 이름입니다. 이 작가의 작업은 이승곤 글에서 더 볼 수 있습니다.
- 32x25cm · 종이에 수채 · 2020 · ₩6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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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오 〈겨울한라산〉 — 둥글게 누운 산등성이와 새 한 마리

하늘은 구름에 덮여 가장자리가 어둡고, 위쪽 가운데만 빛이 번져 밝습니다. 그 아래로 눈이 얇게 덮인 능선이 푸른 회색으로 길게 누워 있습니다. 봉우리는 뾰족하지 않고 넓게 둥글며, 맨 위 가운데에서 약간 왼쪽에 작은 혹처럼 솟은 정상부가 보입니다. 화면 아래쪽 산자락은 검게 가라앉았습니다. 그 한가운데, 능선 바로 위에 날개를 활짝 편 검은 새 한 마리가 떠 있습니다.
대백과사전은 한라산을 높이 1,947m로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 적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봉우리가 평평하다 하여 두무악, 높고 둥글다 하여 원산이라는 이름도 기록돼 있는데, 대백과사전은 방패형 화산체라는 지형적 특징 때문에 이런 여러 이름이 생겼다고 설명합니다. 도판의 능선이 날카롭게 솟지 않고 둥글게 누운 모양은 그 설명과 나란히 놓입니다. 작가는 작품 설명에서 낮에는 한의원에서 진료하고 새벽과 밤에 카메라를 들고 중산간 들판과 오름을 다니며 사라져 가는 화산섬 제주의 풍광을 담는다고 적었습니다. 그는 같은 글에서 제주마와 소와 까마귀가 척박한 제주 산야에 순응하며 삶을 일궈 온 제주 민초들을 상징한다고 썼습니다. 산 위의 새 한 마리가 사진에서 어떤 무게를 갖는지, 이 문장 곁에서 읽어 볼 만합니다. 더 읽을 글은 김수오 글과 한국 풍경과 민초의 기록입니다.
- 70x40cm · Pigment ink on FineArt Paper print · 2017 · ₩1,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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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호 〈2003 양산 영축산〉 — 제목에만 있는 산

산 이름이 제목에 있는데 화면에는 능선이 없습니다. 흑백 사진 한가운데에 안개가 밝게 깔려 있고, 그 속에서 줄기가 이리저리 휜 소나무들이 역광의 검은 실루엣으로 서 있습니다. 뒤쪽 나무일수록 안개에 녹아 흐려지고, 앞쪽 아래는 마른 풀과 덤불이 어둡게 가라앉았습니다. 봉우리와 능선 대신 산 안의 나무가 산을 대신 말합니다.
앞의 작품들이 산의 모양을 화면의 중심에 놓았다면, 이 사진은 산의 모양을 화면 밖에 두고 그 안의 나무를 중심에 놓았습니다. 산을 그리는 일이 반드시 봉우리를 그리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제목과 화면의 간격이 보여 줍니다. 이 작가의 사진 세계는 조문호 글에 있습니다.
- 80x58.5cm · Pigment ink on FineArt Paper print · 2026 · ₩1,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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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과 혼합재료 — 산이 물질이 될 때
이재민 〈아직도 어두운 밤2〉 — 돌산 모양이 세 번

화면이 위에서 아래로 세 층입니다. 맨 위에는 흰 안개를 밑동에 두른 회색 돌산이 구름처럼 떠 있고, 세로로 깊게 팬 골이 능선을 따라 늘어섭니다. 가운데에는 직사각형 홈이 파여 있고 그 안에 실제 돌이 놓여 아래로 진짜 그림자를 떨어뜨립니다. 맨 아래에서는 같은 모양의 돌섬이 푸른 물 위에 앉아 있고, 오른쪽 아래에는 검고 둥근 천체가 하나 떠 있습니다. 세 개의 돌은 골이 파인 모양이 서로 닮았고 크기가 다릅니다. 가운데의 손에 쥘 수 있는 돌이 위아래로 번져 산이 되는 듯한 구성입니다.
작가는 작품 설명에서 가운데 액자 틀 같은 공간에는 실제 돌을 붙이고 위아래에는 회화로 그린 돌산을 배치해 입체와 평면의 경계를 허문다고 적었습니다. 구름 속에 떠 있는 돌산, 실제 돌, 바다 위의 돌섬이 세 단계로 놓인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앞의 작품들이 모두 그리거나 찍거나 새긴 산이었다면 이 작품은 산의 재료를 화면 안에 직접 붙여 넣었습니다. 같은 제목의 〈아직도 어두운 밤1〉(작품 보기, ₩4,000,000)은 왼쪽 홈 안의 실제 돌과 오른쪽의 안개 속에 솟은 그려진 바위가 마주 서는 구성입니다. 작업 전체는 이재민 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 61x61cm · 캔버스에 돌과아크릴 · 2023 · ₩4,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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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시영 〈금강산 아리랑〉 — 세로로 솟은 일만이천 봉

가로 27cm에 세로 76cm의 길쭉한 화면입니다. 맨 위는 붉은 흙빛 하늘이고, 그 아래로 위로 곧게 솟은 뾰족한 봉우리들이 가로줄로 포개지며 아래까지 이어집니다. 봉우리마다 짙은 선이 윤곽을 두르고 안쪽에는 잔 선이 촘촘히 그어져 있으며, 표면은 흙벽처럼 울퉁불퉁하게 돋아 보입니다. 봉우리 사이사이에는 기와지붕의 건물이 군데군데 앉고 아래쪽에는 몇 채가 모여 있으며, 오른쪽 가운데에서는 청록의 물줄기가 한 가닥 굽이쳐 아래로 내려옵니다.
대백과사전은 금강산이 최고봉 비로봉 1,638m를 중심으로 동서로 갈라진 산줄기에 수많은 봉우리가 잇달아 솟아 "일만이천봉"을 이루며, 암석은 수직 절리가 뚜렷한 화강암류라 기암괴석과 수직절벽이 생겼다고 설명합니다. 계절마다 이름도 달라서 겨울에는 나뭇잎이 지고 암석이 앙상한 뼈처럼 드러난다 하여 개골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같은 대백과사전 항목은 금강전도를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한 폭의 그림 속에 담은 전경도로 풀이합니다. 정선의 〈금강전도〉가 내금강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원형으로 모았다면, 이 세로 화면은 봉우리를 아래에서 위로 빽빽이 쌓았습니다.
작가는 〈한겨레 아리랑〉(2024, 작품 보기, ₩5,000,000)에 붙인 설명에서, 백두대간 기행 후 백두산과 금강산과 지리산과 한라산이 한 줄기이듯 우리 모두 한겨레 되어 아리랑 통일 춤을 추는 형상을 담았다고 적었습니다. 작가의 말대로라면 앞서 본 한라산 사진과 이 금강산 그림도 한 줄기 위에 놓입니다. 이 작가가 아리랑이라는 한 소재로 걸어 온 길은 두시영 글에서 따라갑니다.
- 27x76cm · 캔버스에 혼합재료 · 2009 · ₩6,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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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점을 나란히 놓고 보면
| 작품 | 바탕과 재료 | 산의 윤곽 | 색 |
|---|---|---|---|
| 김현철 〈산〉 | 린넨, 수묵채색 | 길게 끌어 올린 먹선으로 세운 절벽, 안쪽은 바탕 흰색 | 먹과 왼쪽의 옅은 하늘빛 |
| 이익태 〈山〉 | 한지, 먹 | 글자와 능선을 겸한 굵은 획 | 먹 한 색 |
| 신광숙 〈일월오봉도 No.1〉 | 비단, 분채 | 달걀 모양의 둥근 봉우리 다섯 | 청록의 산, 붉은 해, 흰 달 |
| 김은화 〈산중희호〉 | 순지, 동박·먹·분채 | 겹겹이 포개진 뾰족한 봉우리 | 남색·보라·분홍·연두와 금속 반점 |
| 리호 〈머물고 싶은 순간〉 | 장지, 연필·분채 | 면으로 쪼개진 봉우리 하나 | 연둣빛 바탕에 분홍 지층 |
| 김준권 〈산처럼〉 | 채묵목판 | 윤곽선 없이 면이 겹친 능선 | 연한 푸른색에서 남색까지 |
| 류연복 〈북한산을 거닐다-2〉 | 한지, 목판화 | 칼선으로 쪼갠 바위 봉우리, 가로로 긴 화면 | 회색과 검정, 초록 몇 군데 |
| 이승곤 〈오봉〉 | 종이, 수채 | 능선 위 회백색 바위 봉우리, 앞에 잔가지 | 파랑 하늘, 초록과 황토 능선 |
| 김수오 〈겨울한라산〉 | 피그먼트 프린트 | 눈 덮인 둥근 능선 | 푸른 회색과 검정 |
| 조문호 〈2003 양산 영축산〉 | 피그먼트 프린트 | 능선 없이 안개 속 소나무 | 흑백 |
| 이재민 〈아직도 어두운 밤2〉 | 캔버스, 돌과 아크릴 | 닮은 돌산 모양이 세 번 | 회색·흰색, 푸른 물, 검은 구 |
| 두시영 〈금강산 아리랑〉 | 캔버스, 혼합재료 | 세로로 솟은 뾰족한 봉우리 | 붉은 갈색과 청록 물줄기 |
표를 가로로 읽으면 같은 산이 재료마다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입니다. 먹 두 점은 산을 선과 덩어리로 줄였고, 분채 세 점은 색으로 산을 지었으며, 판 두 점은 칼과 판으로 산을 새겼습니다. 수채는 산을 올려다본 시선을, 사진은 산 위의 새와 산 속의 소나무를 남겼고, 마지막 두 점은 돌과 혼합재료의 물성을 화면에 가져왔습니다. 산 곁에는 작은 것들이 하나씩 놓였습니다. 이익태의 사람과 새, 신광숙의 소나무, 김은화의 호랑이, 두시영의 기와지붕이 그렇습니다. 이 작은 것들 덕분에 산의 크기가 가늠됩니다.
열두 점 앞에서 먼저 볼 것
- 윤곽을 선으로 긋는가, 면으로 쌓는가. 김현철과 류연복은 선이 산을 세우고, 김준권과 리호는 면이 산을 쌓습니다.
- 산 곁에 작은 것이 놓였는가. 이익태의 사람과 새, 김은화의 호랑이, 두시영의 기와지붕, 류연복의 작은 형상들이 산의 크기를 재는 자가 됩니다.
- 비워 둔 자리가 있는가. 김현철의 절벽 안쪽, 김준권의 위쪽 흰 종이, 이승곤의 구름에서 종이나 바탕의 흰색이 하늘이자 안개로 남아 있습니다.
- 산이 몇 번 나오는가. 이재민의 화면에서는 돌 모양이 세 번 나오고, 신광숙의 화면에서는 봉우리가 다섯으로 늘어섭니다.
작품을 걸 자리를 고르는 요령은 미술품 보관과 관리에 정리해 두었고, 여러 화가의 회화를 한꺼번에 읽고 싶다면 씨앗페의 회화로 이어집니다.
씨앗페에 작품을 내놓은 작가들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함께한 연대자들이고, 상설 온라인 갤러리 작품의 판매 수익은 상호부조 기금이 되어 저금리 대출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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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산수화란 무엇인가요? A.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산수화를 "산과 강 등의 자연경관을 소재로 그린 동양화"로 정의합니다. 같은 항목은 동양의 산수화가 자연의 표현이면서 인간이 자연에 대해 지닌 자연관의 반영이라고 설명합니다.
Q. 진경산수화는 일반 산수화와 무엇이 다른가요? A. 대백과사전은 진경산수화를 조선 후기에 유행한 우리나라 산천을 소재로 그린 산수화로 풀이하고, 실경을 단순히 재현하지 않고 회화적으로 재구성해 경관에서 받은 감흥과 정취를 구현한 것이 특색이라고 설명합니다. 정선이 금강산과 영남 지방, 서울 근교를 다니며 진경산수화풍의 정형을 세웠다고 전합니다.
Q. 일월오봉도는 어떤 그림인가요? A. 조선시대 궁궐 정전의 어좌 뒤에 놓였던 병풍으로, 다섯 개의 산봉우리와 해, 달, 소나무, 폭포, 물결을 그립니다. 대백과사전은 국왕의 존재를 상징하는 궁중회화를 대표하는 그림이라고 평가합니다. 씨앗페에서는 신광숙의 〈일월오봉도 No.1〉이 이 구도를 비단 위 분채로 옮겼습니다.
Q. 채묵목판이란 무엇인가요? A. 서울문화투데이는 김준권의 작업을 색채가 있는 채묵(동양화 안료)과 무채색의 수묵(먹)을 따로, 때로는 함께 구사하는 목판화로 소개하며, 붓질이 아닌 프린팅의 압력으로 안료가 한지에 스며든다고 설명합니다. 청주시립미술관 소장품 목록에도 김준권의 2021년 작업이 종이에 목판(채묵목판)으로 올라 있습니다. 판화의 종류별 차이는 판화 기법 지도에 정리돼 있습니다.
Q. 씨앗페 온라인 갤러리에서 지금 만날 수 있는 산 그림은 무엇인가요? A. 이 글에 소개한 열두 점 가운데 김현철 〈산〉과 이익태 〈山〉을 뺀 열 점입니다. 신광숙 〈일월오봉도 No.1〉, 김은화 〈산중희호〉, 리호 〈머물고 싶은 순간〉, 김준권 〈산처럼〉, 류연복 〈북한산을 거닐다-2〉, 이승곤 〈오봉〉, 김수오 〈겨울한라산〉, 조문호 〈2003 양산 영축산〉, 이재민 〈아직도 어두운 밤2〉, 두시영 〈금강산 아리랑〉입니다. 김현철 〈산〉과 이익태 〈山〉은 이미 새 주인을 만났습니다.
Q. 김현철의 〈산〉을 더 자세히 읽을 글이 있나요? A. 김현철 — 초상과 진경 사이, 쪽빛 산수를 그리는 동양화가에서 〈산〉의 먹선과 이 작가의 이력을 다룹니다.
참고한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 산수화, 진경산수화(홍선표), 일월오봉도(이성미), 금강전도(송희경), 북한산(신원정), 한라산(김태호), 금강산(권혁재)
- 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겸재 정선 그림인 줄"…금릉김현철 '금강내산도' 깜짝」, 2025년 2월 20일 — 원문
- 뉴시스, 박상수 기자, 「김준권 목판화가 '57년만의 귀향전'…백두대간 작품 56점」, 2024년 4월 3일 — 원문(파이낸셜뉴스 게재)
-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목판화, 색을 입다…김준권 초대전 《김준권의 국토-판각장정》」, 2025년 1월 20일 — 원문
- 청주시립미술관 소장품 — 김준권 〈산의 노래〉(2021, 종이에 목판(채묵목판), 89x162.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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